오피니언 사설

이번엔 정무수석실 캐비닛 문건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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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청와대가 박근혜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실 캐비닛 문건 300여 건을 내놓은 지 나흘 만에 이번엔 정무수석실 문건이라는 걸 세상에 알렸다. 어제 오후 박수현 대변인은 긴급 기자회견을 통해 “전 정부의 정책조정실 기획비서관이 2015년 3월 2일부터 2016년 11월 1일까지 작성한 254건의 비서실장 주재 수석비서관회의 결과를 비롯해 총 1361개 문건이 정무수석실 캐비닛에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문서들 중엔 삼성 및 문화계 블랙리스트 관련 내용, 현안 관련 언론 활용 방안 등이 들어 있고 위안부 합의, 세월호, 국정 교과서 추진, 선거 등과 관련해 적법하지 않은 지시 사항이 포함돼 있다는 게 대변인이 밝힌 요지다.

새 정권이 전 정권의 미처 정리하지 못한 문서를 대량 발견해 이를 검찰 수사에 넘기는 블랙 코미디는 박 전 대통령의 비서실이 얼마나 허술하고 무능했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다. 오죽하면 김종필 전 총리가 “참모들이 어떻게 했기에 이렇게 통제력이 없느냐”고 한탄했겠는가.

정무수석실 문건은 엄중하게 내용을 분류해 대통령 기록물이라면 대통령 기록관에 이관하고, 그게 아닌 것들은 성격에 따라 수사기관에 넘기거나 주인을 찾아주는 게 정도다. 혹시 청와대가 박 전 대통령의 수사와 재판에 영향을 줄 의도로 너무 성급하거나 과도한 예단을 갖고 청와대 문건에 접근하는 것처럼 비치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번 정무수석실 문건은 전체 조사가 끝나지 않은 채 중간 상태에서 발표를 했다. 청와대 스스로 여러 법리적 검토가 필요해 문건의 제목 정도 외엔 구체적 내용을 발표할 수 없다고 했을 정도다. 그렇다면 “‘적법하지 않은 지시 사항’이 포함됐다”고 한 표현 자체가 모순되고 부적절한 느낌을 떨치기 어렵다. 청와대는 좀 더 진중해야 한다. 수사·재판에 가이드라인을 제시하거나 여론을 한쪽 방향으로 몰아가려 한다는 오해를 사지 않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