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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4000만원도 상여금·수당 빼면 최저임금 위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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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2018년도 최저임금이 근로자 위원 측이 제시한 시급 7530원으로 15일 결정됐다.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회의를 마친 뒤 권영덕 근로자 위원(왼쪽 둘째)이 최금주 사용자 위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2018년도 최저임금이 근로자 위원 측이 제시한 시급 7530원으로 15일 결정됐다.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회의를 마친 뒤 권영덕 근로자 위원(왼쪽 둘째)이 최금주 사용자 위원과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내년에 적용할 최저임금 결정액만 놓고 보면 노동계의 완승이다. 역대 최고치인 1060원 인상(16.4%)을 끌어냈다. 경영계는 비상이다. 최저임금위원회의 결정액(시급 7530원)을 월급으로 환산하면 157만3770원이다. 연봉으론 1888만5240원이다. 여기엔 식비, 연월차 휴가비, 유급휴가비, 야근수당, 가족수당, 통근수당, 주택수당 같은 복지 또는 변동형 수당이 제외돼 있다.

경영계, 총 인건비 관리 비상 #현재 대기업 다니는 생산직 신입 #기본급+고정수당이 월 126만원 #최저임금 맞추려면 31만원 올려야 #인건비 감당 안 되면 신규 채용 못해 #상위 직급자 임금 깎거나 내보내야

한국경영자총협회의 분석에 따르면 이런 수당을 최소 15%만 잡아도 최저임금 연봉은 2171만8026원이 된다. 여기에 상여금을 더하면 연봉 3000만원에 육박한다. 이 정도 연봉을 받는 사람이 최저임금 근로자란 얘기다. 현재 연봉 3000만원을 못 받는 근로자는 전체 근로자 4명 중 한 명꼴인 463만 명(23.6%)이다.

영세 사업장이나 자영업자가 이 돈을 주고 근로자를 채용할 수 있을까. 중소기업의 42%가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 내고, 소상공인의 27%는 월 영업이익이 100만원도 안 되는 실정(한국경영자총협회)을 고려하면 채용이 줄어들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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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기준으로 최저임금을 받지 못하는 근로자의 98.7%가 300인 미만 사업장에서, 87.3%는 30인 미만 영세사업장에서 근무한다. 임금을 감당하지 못하면 신규 채용은 고사하고 기존 근로자의 임금을 깎거나 내보내는 상황에 몰리게 된다.

인천의 휴대전화 임가공업체 대표는 “최저임금이 가파르게 올라 직원의 3분의 2가량이 임금이 같아진 상황”이라며 “상사의 임금이 부하 직원의 임금과 역전되는 것을 막고, 수익이 뻔한 상태에서 총 인건비를 관리하려면 위 직급의 임금을 깎아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일자리를 국정 최우선에 둔 정부에서 고용시장은 역으로 얼어붙는다는 얘기다. 정부가 소상공인과 영세 중소기업에 대한 인건비 지원 대책을 내놓은 이유다.

그렇다면 정부 지원에서 제외된 대기업이나 중견기업은 괜찮을까. 직원이 950여 명인 한 대기업 생산직 신입사원의 초임 연봉은 4000만원 정도다. 한데 최저임금에 산입되는 기본급과 고정수당만 보면 월 126만2640원이다. 연봉의 상당 부분이 각종 수당과 상여금으로 짜인 셈이다. 월급만 따지면 내년 최저임금에 31만1130원 모자란다. 이 회사 관계자는 “내년 최저임금에 맞춰 기본급을 올리면 수당과 상여금이 연동해 오르기 때문에 신입사원 연봉이 4500만원을 훌쩍 넘길 수 있다”며 “경영상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률, 생산성 증가율의 4.7배

내년 최저임금은 외국과 비교해도 상위권이다. 2015년 기준으로 전체 임금의 중간에 해당하는 중위임금 대비 한국은 48.4%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16위로 중상위권이다. 그러나 내년엔 중위임금 대비 최저임금 수준이 60% 후반에 이를 전망이다. 터키와 칠레 등을 제외하곤 최고 수준이다. 최저임금의 적용을 받는 근로자 비율(영향률)도 마찬가지다. 23.6%에 달하는 내년 최저임금 영향률은 OECD 회원국 중 가장 높다. 세계 최고 수준인 프랑스의 영향률조차 10.5%다.

생산성 대비 최저임금 수준을 따지면 경영계의 볼멘소리를 억지로만 여기긴 어렵다. 내년 최저임금 인상률은 국민경제생산성 증가율(2016년 기준 3.5%)의 4.7배에 달한다. 최저임금이 2001~2016년 평균 8.6%의 고율 인상을 했지만 같은 기간 생산성 증가율(4.7%)의 두 배를 넘은 경우는 없다. 그래서 “생산성을 5배나 초과하는 최저임금 인상률은 기업·경제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권혁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분석이 나온다.

◆최저임금제

저임금 근로자 보호를 목적으로 정부가 노사 간 임금 결정 과정에 개입해 일정 수준 이상의 임금을 지급하도록 강제하는 제도다. 1953년 근로기준법 제정 때 실시 근거가 마련됐지만 경제 상황을 고려해 유예하다가 88년 처음 시행됐다. 최저임금은 사용자위원 9인, 근로자위원 9인, 공익위원 9인으로 구성된 최저임금위원회가 결정한다.

◆중위임금

근로자 전체의 임금을 순위대로 일렬로 늘어놓았을 때 가운데 위치한 임금을 말한다. 따라서 평균 임금, 시간당 임금 총액과는 차이가 있다. 저임금 근로자라는 용어는 이 중위임금을 기준으로 구분한 것으로 중위임금의 3분의 2 이하를 받는 근로자를 지칭한다. 최저임금이 중위임금의 50% 정도면 적당하다고 본다.

김기찬 고용노동선임기자 wols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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