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문 대통령 “중국, 북핵 해결에 더 역할” 요구 … 시진핑 얼굴 굳어지며 “북과 혈맹” 즉흥발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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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일 열린 문재인 정부 출범 후 첫 한·중 정상회담에서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이 언급했다고 청와대가 밝힌 ‘북한과의 혈맹’이라는 표현은 당초 원고에 없었던 즉흥발언으로 나타났다. 중국 국가주석은 과거 정상회담에서 미리 준비한 원고에 따라 발언하곤 했다는 점에서 시 주석의 즉흥발언은 매우 이례적이다.

6일 한·중 정상회담서 무슨 일이 #화성 - 14형 쏜 이틀 뒤 나온 말이라 #북 미사일 발사 두둔한 걸로 혼선 #외교가 “과거 북·중 관계 언급일뿐”

문재인 대통령

문재인 대통령

16일 서울의 외교소식통들에 따르면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에서 처음 만난 문 대통령과 시 주석의 만남은 처음에는 매우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고 한다.

하지만 문 대통령이 “북핵 문제 해결을 위한 중국의 노력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 더 많은 역할을 해달라”는 발언을 하자 갑자기 분위기가 바뀌었다고 소식통이 전했다. 시 주석은 얼굴이 다소 굳어지면서 “중국은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반박했고, “중국과 북한은 ‘소위 선혈로 응고된 관계’였음에도”라는 말을 했다고 한다. ‘선혈로 응고된(鮮血凝成的)’이라는 표현은 혈맹을 에둘러 표현할 때 중국이 쓰는 표현이다. 다른 소식통은 “회담 초반만 해도 시 주석이 문 대통령에게 호감을 표현하듯 밝은 표정이었는데, 문 대통령의 해당 발언 직후 표정이 바뀌었다고 한다. 억울해하는 느낌이었다고 들었다”고 전했다. 최근 중국 인사들과 접촉한 또 다른 소식통은 “정상회담 이후 중국에서 정상회담 관계자를 만났는데, 북·중 관계에 대한 언급은 발언 자료에 없었던 것이라고 하더라”고 말했다.

시진핑 주석

시진핑 주석

시 주석이 발언을 하게 된 맥락도 회담 직후 청와대의 설명과는 정확성에 차이가 있었다.

청와대 관계자는 브리핑에서 “시 주석이 ‘북한과 혈맹의 관계를 맺어 왔고 25년 전 한국과 수교를 맺은 뒤 많은 관계 변화가 있었지만 그 관계가 근본적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는 취지로 말했다”고 설명했다. 회담 이틀 전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급 화성-14형을 발사한 북한을 중국이 ‘혈맹’이라고 강조하면서 마치 두둔한 것처럼 보이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외교소식통은 “시 주석은 북·중 관계를 언급하며 실제로는 ‘소위’라는 단어를 앞에 붙였다고 한다”며 “과거에 북한과 ‘소위’ 그러한 특수 관계였다는 것을 부정할 수는 없고, 그럼에도 현재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려는 의미였던 것”이라고 설명했다. 브리핑 과정에서 ‘소위’라는 한 글자가 빠지면서 내용이 와전됐다는 의미다.

의미가 정확하게 전달되지 않은 바람에 지난 10일 국회 외통위에서도 논란이 있었다. 박병석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질의에서 “중국 공산당 핵심 관계자와 9일 1시간30분정도 만났는데 ‘시 주석이 지금의 북·중 관계를 혈맹 관계라고 얘기한 적이 없다’는 말을 여러 차례 강조하면서 ‘허위 보도’란 표현까지 썼다”고 전했다.

이에 당시 회담에 배석했던 강경화 외교부 장관도 “전통적인 북·중 관계가 혈맹이었다는 의미”라며 “과거 관계를 규정하는 차원에서 쓴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답변했다.

천영우(전 청와대 외교안보수석) 한반도미래포럼 대표는 “‘혈맹’이라는 민감한 단어에 과도한 의미를 부여해 중국과 북한이 마치 과거의 관계로 돌아간 것처럼 알리는 것은 한·중 관계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유지혜·박유미 기자 wisepe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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