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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의 공식은 인간 초기 값으로 리셋하는 것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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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0호 24면

좋은 직장에 많은 돈, 단란한 가정까지 가졌지만 행복하지 않았다. 우울함을 떨치려 온라인에 접속해 두 번의 클릭으로 최고급 롤스로이스 자동차를 2대나 샀지만 기분은 나아지지 않았다. 자신보다 훨씬 더 성공한 친구들만 눈에 보이고, 기대에 못 미치는 스스로와 동료들을 미친 듯 몰아세웠다. 어느 날 거울 안에 있는 음울한 남자를 마주한 그는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건 내가 아냐. 더 이상 이렇게 살아선 안 돼.’

『행복을 풀다』 쓴 구글X 신규사업개발총책임자 모 가댓

구글의 비밀 프로젝트 연구 조직인 ‘구글X’의 신규사업개발총책임자(CBO)인 모 가댓(Mo Gawdat·50)은 그래서 2001년부터 행복 연구에 착수했다. 공학을 전공하고 IBM, 마이크로소프트 등에서 일한 엔지니어답게, 삶의 어떤 순간에도 행복할 수 있는 ‘공식’을 찾아내는 게 목표였다. 10년이 넘는 연구 끝에 정답에 도달했다고 생각한 순간, 비극이 닥쳤다. 2014년 대학생이던 아들 알리가 의료 사고로 세상을 떠난 것이다. 인생에서 가장 불행했던 이때, 그는 책을 쓰기 시작했다. 올해 초 미국에서 출간돼 화제를 모은 『행복을 풀다(Solve for Happy)』다. 한국어판 출간을 기념해 방한한 그를 지난 3일 만났다. 이번이 다섯 번째 한국 방문이라는 그는 “그 동안은 주로 창의성, 혁신을 주제로 강연하려고 한국에 왔지만, 이번엔 행복을 전파하기 위해 왔다”고 했다.


구글 엔지니어가 행복 전도사가 되다니.
“원래 행복을 연구한 건 나 자신을 위해서였다. 30대 초반까지 나는 승승장구했지만 늘 뭔가에 쫓기는 기분이었다. 더 많은 돈을 벌고 싶어 낮에는 회사에서 일하고 밤을 새워 ‘데이 트레이더(day trader)’로 돈을 벌었다. 하지만 늘 더 많은 것이 필요했다. 거기서 탈출하기 위해 행복 방정식을 만든 것이다. 책으로 쓰자고 결심한 것은 아들 알리의 죽음 때문이었다.”
아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난 건가.
“2014년 미국 보스턴의 노스이스턴 대학에 재학 중이던 아들이 방학을 맞아 내가 사는 두바이에 들렀다. 갑자기 복통을 호소해 지역 종합병원으로 실려갔고 맹장염이란 진단을 받았다. 그리고 수술대에 누운 지 몇 시간 만에 사망했다. 의료 사고였다. 뱃속에 이산화탄소를 불어넣는 주사기가 약간 옆으로 밀려나며 넓적다리 동맥을 찔렀고, 그 후 잇달아 발생한 일련의 실수들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진 것이다.”
어떻게 마음을 추스릴 수 있었나.
“당시 슬픔은 말로 표현하기조차 어렵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자 떠올리게 됐다. 알리는 원래 말이 없는 아이였는데 입원하기 이틀 전 나와 아내, 여동생 아야를 불러 놓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했다. 나에게는 ‘아빠가 구글에서 일하는 게 자랑스러워요. 앞으로도 계속 세상을 바꾸는 일을 해 주세요. 하지만 뇌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이지 말고 아빠의 마음이 시키는 일을 했으면 좋겠어요’ 라고 하더라. 왜 갑자기 그런 이야기를 하는지 의아했는데, 며칠 지나 행복에 대한 책을 쓰는 것이 알리가 나에게 부여한 임무라는 걸 알게 됐다. 알리의 사망 후 17일 째 되던 날 책을 쓰기 시작했다.”
엔지니어로서의 경력을 포기하고 작가로 나선 건가.
“그렇지 않다. ‘구글X’에서 내가 하는 일은 인간이 직면한 문제를 풀기 위해 세상 어디에도 없던 답을 찾아내는 것이다. 공중 풍력 터빈으로 움직이는 탄소섬유 무인 비행기, 콘텍트렌즈에 삽입할 수 있는 초소형 컴퓨터, 자율 주행 자동차 아이디어 등이 그렇게 나왔다. 불행 역시 현대인이 겪는 가장 심각한 고통 중 하나고, 이를 해결하는 나의 작업은 구글X의 정신과 통한다. 회사에서도 이런 취지를 이해하고 나의 행복 프로젝트를 지원해주고 있다.”

그의 행복 방정식은 ‘6-7-5’ 모델로 이뤄진다. 사람들을 혼돈에 빠뜨리는 6가지 인생의 큰 환상(생각·자아·지식·시간·통제·두려움)을 깨뜨리고, 판단을 어지럽히는 7가지 맹점(여과·추정·예측·기억·분류·감정·과장)을 바로잡은 후, 인생의 5가지 궁극적인 진실(지금·변화·사랑·죽음·설계)을 움켜잡아야한다는 것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그리 어려운 이야기는 아니다. 행복이란 ‘걱정과 불안이 없는 평온한 상태’를 말하고, 갓난 아이들이 보여주는 인간의 초기 상태(디폴트값)가 바로 행복이다. 하지만 성장과 함께 주변의 기대, 스스로의 욕심이 겹쳐지면서 배터리 수명은 줄어들고, 악성 코드가 깔린다. 심리적 고통을 유발하는 이 버그들을 걷어내고 인간의 초기 값으로 ‘리셋(Reset)’하는 것이 그가 말하는 행복해지는 길이다.

이미 수많은 사람이 행복해지는 법을 연구했다.
“나도 거의 모든 책을 읽었다. 하지만 대부분은 영적·종교적 신념에 치우쳐있거나 요가·명상 등의 실천을 제안하는 데 그친다. 나는 엔지니어이므로 공학적으로 접근했다. 기계가 고장 났으니 먼저 원인을 찾는다. 10년 가까이 내가 행복과 불행을 느끼는 순간을 모두 기록해 이유를 추적하고 분류하고 추세선을 그렸다. 그 과정에서 깨달은 답이 ‘우리를 불행하게 만드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생각’이라는 점이다.”  
어떤 이야기인가.
“예를 들어 남편이 늦게 퇴근해서 아무 말 없이 서재로 들어갔다. 실제로 일어난 일은 이게 전부인데 아내는 ‘저 사람은 더 이상 나를 사랑하지 않아’라고 생각하며 괴로워한다. 출근 길 택시 운전사가 불친절하다. 그럼 뇌는 즉각 ‘나를 무시하나’하며 분노하라고 부추긴다. 결국 실제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가 아니라 그 일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나를 불행하게 한다. 이것 하나만 기억한다면 인생 대부분의 시간은 불행할 이유가 없다.”  
이해는 되지만 실천은 쉽지 않다.
“일단 이렇게 해보라. 심리적 고통이 찾아올 때 스스로에게 물어라. ‘이게 진실인가?(Is it true?)’ 택시 기사는 진짜 나를 우습게 보고 있는 건가? 진실이 아니라면 더 이상 그 문제에 감정을 소모하지 말아라. 사실이라면, 바로 해결책을 찾아 움직여라. 남편에게 가서 왜 인사도 없이 서재로 들어갔는지 이유를 듣고, 대화를 나누는 거다. 인생에는 진실이면서 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도 있다. 내 아들 알리의 죽음이 그랬다. 그럴 땐 받아들이는 방법밖에 없다. 내가 무엇을 해도 알리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니, 나는 대신 더 많은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는 삶을 살기로 했다. 알리가 지금의 나를 본다 해도 자랑스러워할 수 있도록.”  
그래서 당신은 항상 행복한가.
“대부분의 시간이 평온하고 즐겁다. 가끔 불행하다고 느끼지만 매우 짧은 시간이다. 내 심리적 고통의 원인이 어디서 오는 지를 즉각 집어낼 수 있으면, 평화를 되찾을 수 있다. 과거의 기억이나 미래에 대한 불안이 괴롭힐 땐 늘 갖고 다니는 묵주를 돌리며 ‘지금 여기’로 돌아오는 연습을 한다. 혼잡한 머릿 속을 서성이는 대신 이 순간에 몰입한다면 행복할 가능성은 아주 높아진다.”  
1000만 명을 행복하게 만들겠다고 했는데.
“인간은 대개 비슷한 이유로 불행하다. 나의 모델이 대다수에게 효과가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이미 책이 20개국에 수출됐고, 동영상 강연은 수천 만 명이 봤다. 올해 초 책을 출간하고 6개월 간 회사에서 휴가를 받아 행복 전파에 몰두했다. 이제는 회사로 돌아가 새 프로젝트와 행복 프로젝트를 병행할 생각이다. 새 프로젝트가 무엇인지는 규정 상 말할 수 없다. 그저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X’라고만 해 두자.” ●

글 이영희 기자 misquick@joongang.co.kr,  사진 전호성 객원기자·한경B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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