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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속도로서 2~3초만 깜빡 졸아도 100m 이상 눈 감고 운전하는 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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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지난해 7월 영동고속도로 봉평터널 입구에서 시속 91㎞로 달리던 관광버스가 서행하던 승용차를 들이받았다. 승용차는 처참히 부서졌다. 20대 여성 4명이 숨지고 버스 승객 등 30여 명이 다쳤다. 경찰 조사 결과 운전사 방모(57)씨는 숙박시설이 아닌 버스에서 쪽잠을 자고 운전대를 잡은 것으로 확인됐다.

졸음운전 얼마나 무서운가 #치사율 19%, 과속사고의 2.4배 #“연속 운전 제한해 휴식 보장해야” #유럽 하루 9시간 이상 운행 제한

이후 정부는 버스 운전과 관련해 4시간 연속 운전 시 최소 30분 휴식, 운행 종료 후 8시간 휴식 보장 등의 대책을 내놓았다. 하지만 졸음운전 사고는 끊이지 않았다. 영동고속도로에선 지난 5월 다시 대형 졸음운전 사고가 났다. 정모(50)씨가 운전하던 고속버스가 승합차를 들이받아 김모(70·여)씨 등 노인 4명이 숨지고 4명이 다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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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도로공사에 따르면 2012년부터 지난해까지 최근 5년간 고속도로에서 발생한 졸음운전 사고는 모두 2241건이다. 졸음운전 사고로 사망한 사람은 414명으로 치사율(사고 한 건당 사망자가 발생할 확률)이 18.5%다. 과속사고 치사율(7.8%)의 2.4배, 전체 교통사고 치사율(11.1%)의 1.7배 수준이다. 시속 100㎞로 달리는 고속도로에서는 2~3초만 깜빡 졸아도 일반 도로에서 100m 이상을 눈감고 운전하는 것과 같다.

졸음운전은 음주운전보다 위험할 수 있다. 미국 고속도로안전청 보고서에 따르면 18시간 동안 잠을 자지 못한 운전자는 혈중알코올농도 0.05%의 음주운전자와 상태가 비슷하고, 21시간째 깨어 있는 운전자는 알코올농도 0.08% 때 수준처럼 둔해진다. 음주운전을 하더라도 운전자가 어느 정도 의식이 있다면 브레이크를 늦게라도 밟지만 졸음운전은 브레이크를 아예 밟지 않기 때문에 충격량이 훨씬 크다.

현행 도로교통법에 따르면 졸음운전을 할 경우 30만원 이하의 벌금이나 구류에 처해진다. 하지만 적발 사례는 많지 않다. 한 경찰 관계자는 “졸음운전은 측정기가 있는 것도 아니고 졸았는지를 확인할 길이 없어 단속이 현실적으로 어렵다. 예방 위주 대책을 마련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처벌 대상이 운전자로 국한되고, 사업자는 책임을 지지 않다보니 회사가 장시간 운전을 방치·강요하는 것을 막기도 어렵다.

오주석 도로교통공단 선임연구원은 졸음운전을 근본적으로 해결하려면 “연속 운전 시간을 제한하고, 사업자들이 운전자의 피로도와 휴식시간을 감안해 운송 스케줄을 짜도록 유도해야 한다”고 말했다. 유럽연합(EU)은 버스 기사가 하루 9시간, 일주일에 56시간 이상 운행할 수 없도록 제한하고 있다. 휴식시간도 최소 연속 11시간을 보장해야 한다. 미국에서는 1일 최대 운행시간을 10시간으로 제한하고, 일주일 동안 60시간 이상 운행할 수 없게 한다.

이현 기자 lee.hyu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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