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善政 않는 임금은 백성이 추방"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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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중(金大中.DJ)전 대통령이 21일 퇴임 후 처음 한 강연에서 맹자(孟子)의 '역성(易姓)혁명'을 언급했다. '2003 하버드 국제 학생회의'개막식에 참석, '아시아의 미래와 한반도 평화'라는 기조연설을 통해서다.

金전대통령은 "2천3백년 전 맹자는 '임금의 권력은 하늘이 백성에게 선정(善政)을 하라는 천명과 더불어 내린 것이다. 만일 임금이 선정을 하지 않고 백성을 괴롭힌다면 백성들은 임금을 추방할 권리가 있다'고 말했다"면서 "이런 주권재민 사상은 근대 서구 민주주의의 사상적 원류가 되고 있는 존 로크보다 2천년이나 앞선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의 발언은 아시아의 민주주의에 대해 말하는 과정에서 나왔다. DJ는 "서구 학자들은 아시아엔 민주주의에 대한 문화적 전통이 없기 때문에 민주주의가 자랄 수 없다고 주장해 왔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한국의 민족종교인 동학에도 '사람이 곧 하늘'이라는 말이 있고, 불교에선 '나 자신의 인권이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는 가르침이 있다"고 역설했다.

DJ의 발언은 정치권에 파장을 불러일으켰다. 한나라당 최병렬(崔秉烈)대표가 노무현 대통령을 겨냥, 정권 퇴진을 거론한 마당이다. 정치권은 자신의 발언이 정국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잘 알고 있는 DJ가 퇴임 후 첫 강연에서 이런 말을 한 데 대해 주목하고 있다.

한나라당과 민주당 구주류는 盧대통령에 대한 DJ의 엄중한 경고라고 해석했다. 한나라당 홍사덕(洪思德)총무는 "평생을 민주화 투쟁에 헌신해온 분이 현 정권과 국민에게 보내는 의미심장한 메시지"라며 "최근 내가 盧정권에 대한 정면 투쟁 방침을 밝힌 것도 같은 맥락"이라고 주장했다.

민주당 구주류인 김경천(金敬天)의원은 "세계적인 정치지도자가 우연히 그런 얘기를 할 리 없다"고, 장성원(張誠源)의원은 "어제 '대통령을 잘못 뽑았다'고 盧대통령을 공격한 崔대표의 언급과 격을 달리해 던지고 있는 경고 성격의 메시지"라고 풀이했다.

반면 신주류 정세균(丁世均)의원은 "DJ가 盧대통령을 겨냥해 그런 말을 하지는 않았을 것"이라며 "특정 현안과 관련 없는 원론적인 문제를 언급한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또 다른 한 신주류 의원은 "DJ가 현 정부에 대해 뭔가 좋지 않은 감정이 있으니까 그렇게 표현한 것 같은데 적절치도 않고, 안 하는 게 나았다"고 불만을 나타냈다.

동교동계 김옥두(金玉斗)의원은 "정치적 해석은 적당하지 않다"고 했다. 박양수(朴洋洙)의원도 "다른 의미가 담겨 있지 않을 것이며 경고도 아닐 것"이라고 말했다.

이정민.신용호 기자
사진=강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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