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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카범 헌법소원에 두 헌법재판관이 고개 끄덕인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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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범죄자가 '몰카범'에 대한 처벌법규가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두 명의 헌법재판관이 '일리가 있다'며 소수의견을 냈다.

'고시 3관왕' 전 공무원 유죄받자 헌법소원 #"처벌 기준 애매해 '표현·예술 자유' 침해" #헌재 6:2로 "합헌", 조용호·강일원 "위헌" #"'수치심 유발하는 신체 부위' 조항 모호"

헌법재판소는 수형자 A씨가 낸 헌법소원 사건에서 재판관 6대2 의견으로 합헌 결정했다고 9일 밝혔다. 하지만 조용호·강일원 등 두 헌법재판관은 위헌 취지의 소수의견을 냈다. 헌법재판 전문가인 이들이 성범죄자의 의견에 고개를 끄덕인 이유는 뭘까.

헌법소원을 낸 A씨는 한때 '고시 3관왕(사법·행정·입법)'으로 화제가 됐던 공무원이었다. 그는 2013년 5월 서울 여의도의 한 건물 여자 화장실에서 용변을 보는 여성의 모습을 몰래 촬영했다가 적발돼 성폭력범죄의 처벌 등에 관한 특례법(성폭력처벌법) 위반 혐의로 기소됐다.

몰래카메라 성범죄를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이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성범죄자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9일 재판관 6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중앙포토]

몰래카메라 성범죄를 처벌하는 성폭력처벌법이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며 성범죄자가 낸 헌법소원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9일 재판관 6대 2로 합헌 결정을 내렸다. [중앙포토]

그는 경찰 조사에서 “술에 취해 기억나지 않는다”며 혐의를 부인하다가 재판 중에는 반성문을 제출해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A씨에게 유죄를 선고했고, 2015년 6월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 선고 직후 A씨는 헌법소원심판을 청구했다. 자신에 대한 처벌 근거인 성폭력처벌법 조항의 개념이 막연해 표현과 예술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이유였다. 그가 문제 삼은 조항은 이렇다.

‘카메라 등을 이용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를 그 의사에 반하여 촬영하거나 그 촬영물을 반포·판매·임대 또는 공공연하게 전시·상영한 자는 5년 이하의 징역 또는 1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한다’

A씨가 위헌이라고 지목한 것은 이 중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라는 부분이었다.

조용호·강일원, "성적 수치심 유발 경계 모호"

이에 대한 다수 헌법재판관의 판단은 '문제가 없다'는 거였다.
재판관 8명 중 6명은 해당 조항이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심판 대상이 된 조항이 ‘자신의 신체를 함부로 촬영당하지 않을 자유’와 ‘사회의 건전한 성풍속 확립’을 보호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게 의견이었다. 이런 판단은 지난해 12월 해당 조항에 대한 헌법소원심판에서 합헌이라고 결정한 선례를 재확인한 것이었다.

재판관들은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타인의 신체에 관해선 피해자의 옷차림과 촬영 경위, 장소, 촬영 방식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판단해야 한다”며 “이는 건전한 상식을 가진 일반인이라면 충분히 파악할 수 있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용호·강일원 재판관의 생각은 달랐다. 해당 조항만으로는 성적 욕망이나 성적 수치심을 유발하는 행위를 판단하기에 분명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두 재판관은 결정문에 담은 반대의견에서 “성적 호기심이나 불쾌감을 불러일으키면 (처벌 대상으로) 충분한지, 아니면 더 나아가 ‘음란’의 경우처럼 사람의 존엄성과 가치를 훼손하거나 왜곡하는 정도에 이르러야 하는지 분명하지 않다”고 지적했다.

강일원(왼쪽)·조용호(오른쪽) 헌법재판관. [중앙포토]

강일원(왼쪽)·조용호(오른쪽) 헌법재판관. [중앙포토]

성적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를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도 성폭력처벌법의 내용만으로는 구분하기 어렵다고도 했다. 조용호·강일원 재판관은 “해당 조항만으로는 어떤 경우에 처벌 대상이 되는지를 알기가 매우 어려워 법관에 따라 유무죄의 판단이 달라지거나 법 집행기관이 자의적으로 해석할 가능성이 있다”며 헌법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봤다.

두 재판관의 판단이 다수 의견에 밀리기는 했지만 몰카 성범죄의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은 꾸준히 제기돼왔다. 성폭력처벌법 상의 기준을 좁게 해석하면 성범죄를 방관할 수 있고, 반대로 기준을 넓게 잡으면 표현의 자유를 과도하게 침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몰카 범죄 유·무죄 판단 재판부마다 제각각

몰카 범죄에 대한 기준이 처음 마련된 건 2008년 대법원 판결을 통해서다. 당시 마을버스 안에서 18세 여성 청소년의 다리를 촬영한 혐의로 기소된 초등학교 교사에게 대법원은 유죄를 확정했다. 대법원은 “피해자의 옷차림, 노출의 정도, 촬영자의 의도, 촬영 장소와 각도, 특정 신체부위의 부각 여부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고 판단 기준을 정리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몰카 사건을 맡은 재판부마다 판단이 제각각이었다. 전신을 찍은 사진은 무죄를, 다리나 가슴 등 특정 부분을 강조했다면 유죄로 보는 식이다. 계절에 따른 옷차림과 노출의 정도에 따라서도 판결이 달라지곤 했다.

지난해 1월 아파트 엘리베이터 안까지 따라가 몰래 여성의 상반신을 찍어 기소된 남성에게 대법원은 유죄를 선고한 원심을 깨고 무죄 취지로 사건을 고등법원에 돌려보냈다. 사진 속 여성의 모습이 얼굴과 손 외에는 신체 노출이 없다는 이유였다. 당시 대법원은 “피해자와 같은 연령대의 일반적인 여성의 관점에서 해당 사진이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신체’에 해당한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이번에 A씨의 청구를 기각한 헌재는 "'성적 욕망 또는 수치심을 유발할 수 있는 다른 사람의 신체'는 구체적, 개별적, 상대적으로 판단할 수밖에 없는 개념"이라며 "사회와 시대의 문화, 풍속 및 가치관의 변화에 따라 수시로 변화하는 개념"이라고 밝혔다. 헌재는 또 "처벌조항에 다소 개방적이거나 추상적인 표현을 사용해 그 의미를 법관의 보충적 해석에 맡긴 점은 어느 정도 불가피하다"고 덧붙였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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