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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웃사촌이 그립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539호 29면

삶과 믿음

한여름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지면,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도 다가가 우산을 같이 쓰자고 하던 시절이 있었다. 그러면 그도 지체 없이 곁을 내어줬다. 나 역시 갑작스러운 비 소식에 남의 우산을 같이 쓰기도 하고, 내가 다른 사람에게 우산을 씌어주기도 했던 기억이 난다. 요즘 같으면 꿈만 같은 일이다. 만약 지금 그런 말을 한다면 이상한 사람 취급을 받거나 경계의 눈총을 받을 것이다. 그뿐인가. 새집으로 이사를 왔을 때는 또 어떠했는가. 이사한 집에서는 떡을 해서 이웃집에 나누느라 동네를 한 바퀴 도는 것이 일이었다. 일종의 신고식이었던 것이다. 그러면 떡을 받은 사람들은 그 접시를 되돌려줄 때 과일이라도 담아서 주고는 했다. 그 당시 사람들 인심이 그랬다.

최근에 지방에서 서울 아파트로 이사한 한 가족이 인사차 떡을 이웃에 돌렸다가 외계인 보듯 이상한 시선을 느껴 얼굴이 화끈거렸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참 많은 것이 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이웃사촌’이라는 말이 있다. 그 단어에는 인심이 담겨있고 사람 사는 냄새가 난다. 요즘에는 이웃사촌이란 말조차 생소하다. 쓸쓸하게 혼자 지내다 고독사한 노인이 몇 주 만에 방문한 사회복지사에게 발견되었다는 소식은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인생에서 느끼는 고통 중에 소외감은 큰 비중을 차지한다고 한다. 만약 어느 누구도 찾아오지 않는 방안에 혼자 며칠을 누워 있어야 한다면, 상상하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다.

하지만 모두가 고독한 것만은 아니다. 한번은 몸이 성치 않으신 데도 불구하고 주변 노인들을 보살피는 아주머니를 만난 적이 있다. 아주머니의 보살핌을 받고 있는 할머니는 내게 아주머니 칭찬만 하셨다. “내 아들, 딸보다 낫답니다. 매일 하루도 빠지지 않고 동이 트면 나를 찾아와서 여기저기 둘러보고 내가 필요한 것을 챙겨 놓고, 청소도 빨래도 해 줘요. 그리고 가끔은 오후에도 찾아와서 이 늙은이의 말벗이 되어 준답니다. 자식들은 몇 달이 지나도 얼굴 한번 보기 힘든데, 이웃사촌이 가족보다 훨씬 더 낫지요…”

성경에도 “네 친구나 아버지의 친구를 저버리지 마라. 어려울 때 동기의 집을 찾아가지 마라. 이웃사촌이 먼 동기보다 낫다”(잠언 27,10)는 말이 있다. 피를 나눈 이들만이 형제는 아니다. 오히려 사랑을 나눌 때 진정한 형제, 이웃사촌이 되는 것이다. 평소 진실한 우정을 나눈 이웃사촌이 형제나 친지보다 더 큰 힘이 될 때가 많다. 문득 이웃사촌이란 단어가 그리운 날이다.

허영엽 신부
천주교 서울대교구 홍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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