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인지 로버' 부장판사 항소심서 징역 5년으로 감형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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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운호(52)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로부터 억대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 받았던 김수천(58ㆍ연수원 17기) 부장판사가 항소심에서 감형 받았다. 재판부는 김 부장판사가 금품을 받은 행위가 뇌물죄가 아닌 알선수재에만 해당한다고 판단했다.

법원, 뇌물죄 아닌 알선수재죄만 인정 #"직무 관련성 없어 뇌물 아니다"

서울고법 형사3부(부장 조영철)는 6일 특정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뇌물·알선수재) 등의 혐의로 기소된 김 부장판사에게 원심을 깨고 징역 5년을 선고했다. 추징금도 1심의 1억3124만원에서 1억2624만원으로 줄었다. 레인지로버 차량 몰수 처분은 그대로 유지됐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정 전 대표로부터 1억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김수천 부장판사가 징역 5년으로 감형 받았다. [연합뉴스]

정운호 전 네이처리퍼블릭 대표. 정 전 대표로부터 1억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1심에서 징역 7년을 선고받은 김수천 부장판사가 징역 5년으로 감형 받았다. [연합뉴스]

김 부장판사는 2014~2015년 정 전 대표로부터 각종 재판 청탁 명목으로 총 1억 8000만원 상당의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 기소됐다. 특히 2015년 2월 네이처리퍼블릭의 ‘수딩젤’을 모방한 가짜 화장품 제조ㆍ유통 업체를 엄벌해주고, 다른 법원에서 진행 중이던 회사 관련 입찰보증금 추심금 소송에서 이기게 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현금 1억원과 5000만원 상당의 레인지로버를 수수한 것으로 조사됐다.

1심 재판부는 현금 1억원과 레인지로버에 대해 뇌물죄와 알선수재가 모두 인정된다고 판단했다. 특히 뇌물죄의 구성 요소인 ‘직무 관련성’이 있다고 봤다. 당시 김 부장판사가 인천지법 항소부에서 유일하게 지적재산권을 담당하고 있었고, 금품을 수수할 무렵 가짜 화장품을 만든 일당이 구속 기소됐기 때문이다. 1심 재판부는 “김 부장판사가 해당 재판부에서 계속 근무할 개연성이 높았기 때문에 항소심까지 갈 경우를 대비해 뇌물을 준 것”이라고 판단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가짜 수딩젤 사건을 잘 봐달라는 뇌물이라기 보다, 추징금 소송과 관련해 힘을 써준 것에 대한 감사의 표시로 보는 것이 맞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금품을 줄 당시는 1심 재판이 시작되기도 전이어서 어떤 형이 나올지, 항소심 재판까지 갈지 등이 불분명한 상황이었다”며 “김 부장판사가 사건을 담당한 건 그로부터 3개월 뒤”라고 설명했다.

특히 재판부는 “김 부장판사와 정 전 대표가 ‘가짜 수딩젤 사건의 항소심을 김 부장판사가 맡을 것’이라고 했다”고 증언한 의사 이모씨에 대해 신빙성을 문제 삼았다. 그 말을 들었다는 시기가 명확하지 않고 일관성이 없다는 이유에서였다.

이외에도 2015년 10월에 건네진 현금 1000만원에 대해 항소심 재판부는 “당시 가짜 수딩젤 관련 사건이 남아있긴 했지만, 정 전 대표가 상습 도박 혐의로 구속 기소돼 변호인 선임이 시급했던 만큼 수딩젤 사건에 대한 청탁 대가로 보긴 어렵다”고 판단했다.

재판부는 그러면서도 “보통 법관이라면 재판과 관련해 금품을 받는다는 건 감히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라며 실형 선고 이유를 밝혔다.

재판부는 초대 대법원장을 지낸 가인 김병로 선생의 말을 인용하며 “가인 김병로는 부정을 범하는 것보다 차라리 굶어 죽는 게 영광이고 명예롭다고 말했다. 법관들이 무한히 공감하며 그동안 금과옥조처럼 여겨온 소중한 기본적 가치를 깬 것”이라고 지적했다.

김선미ㆍ박사라 기자 calli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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