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리얼'은 재미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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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4년만에 '리얼'로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김수현. 개봉 후 '괴작' '망작'이라는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 코브픽쳐스]

'은밀하게 위대하게' 이후 4년만에 '리얼'로 스크린에 돌아온 배우 김수현. 개봉 후 '괴작' '망작'이라는 혹평에 시달리고 있다. [사진 코브픽쳐스]

영화 ‘리얼’을 본 관객들의 감상평이야말로 ‘진짜’다. “시간 가는 줄 알고 봤다.” “끝나고 기립박수를 쳤다. 끝난 게 너무 기뻐서.” “끝까지 본 나에게 별 10개를 준다.” “영화 덕분에 시험공부가 재미있어졌다.” 이상은 네티즌들이 정성껏 올린 리뷰다.

관객 '혹평 놀이' 유발하는 영화 '리얼' #혹평으로 관객수 유지하는 노이즈 마케팅 #엉성한 서사와 과잉된 이미지 등으로 대규모 제작비 무색

배우 김수현, 화제의 아이돌 설리, 연기파 배우 성동일이 출연한 영화다. 할리우드에서 활동한 크리에이티브 감독이 오프닝 시퀀스를 담당하고, 역시 할리우드에서 활약하는 음향 효과 슈퍼바이저가 합류했다. 명망있는 안무가가 신선한 액션 장면 구성을 위해 투입됐다. 무엇보다 중국 알리바바 픽처스의 투자를 받아 110억원 이상 제작비를 썼다.

영화의 문제는 간단하다. 내용이 지나치게 복잡하다. 하나의 육체에 깃든 두 자아가 싸움을 시작하고, 그 중 한 영혼이 탈출해 다른 육체를 찾는다. 새로운 육체는 원래의 자아를 찾아가 복수를 시작한다. 그 과정에서 소소한 반전이 몇차례 일어나고, 많은 등장인물이 나온다. 영화 내용을 설명하는 도표가 온라인에 떠돌아다니고 네티즌들이 연구를 해야할만큼 스토리는 복잡하다.

영화는 이미지가 서사를 방해할 수 있음을 증명한다. 스토리 전개와 상관없이 강조되는 스타 배우들의 노출, 오로지 멋지기 위해서 길게 나오는 장면들 때문이다. 전체 111회차 촬영 중 101회에 참여한 김수현의 분량 또한 이야기의 진행을 짓누른다.

영화 '리얼'에 출연한 설리(최진리). [사진 코브픽쳐스]

영화 '리얼'에 출연한 설리(최진리). [사진 코브픽쳐스]

이 영화로 데뷔한 이사랑 감독은 “신선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 기존의 익숙한 장르와 스토리에서 벗어나고 싶었다”고 말했다. 새로운 방식으로 만들다보니 내용 전달이 덜 됐을 수도 있다는 뜻이다. 김수현 또한 시사회에서 “시나리오를 받아들고 며칠동안 잠을 못 잤을 정도로 강렬했기 때문에 선택한 영화”라며 영화에 대한 신뢰를 표현했다.

‘리얼’은 개봉 6일째인 3일에도 현재 상영 영화 중 하루 관객수 3위(2만명)를 유지했다. 지난달 28일 이후 39만5000명이 봤다. 영화의 만듦새, 그에 대한 평가와는 별개로 관객이 꾸준히 드는 편이다. 관객 숫자를 지금껏 지탱하는 가장 큰 힘은 아무래도 리뷰인 듯하다. 관객들의 재치있는 혹평이 돌고 돌면서 입소문 효과를 내고 있다. 관객들이 적극적으로 남기는 후기는 ‘리뷰 놀이’라 불러도 좋을 정도로 자유롭고 흥미진진하다.

이런 의도치 않은 노이즈 마케팅의 효과는 얼마나 갈까. 주말 성적이 중요한 박스오피스에서 ‘리얼’의 일요일(2일) 관객은 전날에 비해 25% 줄었다. 같은 날 봉준호 감독의 ‘옥자’는 전국에서 370회 상영하고 3만명이 봤다. ‘리얼’은 2500회 상영에 5만명이었다. 상영 스크린수에 따라 ‘리얼’의 관객 숫자는 다른 영화보다 더 많이 출렁일 가능성이 크다.

영화 ‘리얼’이 재미있는 이유는 여러가지다. 무엇보다 리뷰가 재미있고, 거대한 자본이 반드시 성공하는 것은 아니라는 점 때문에 흥미롭다. 노이즈 마케팅이 발생하는 사례를 추가했다는 점에서 주목할만하고, 그게 얼마나 지속되는지 연구해볼 수 있어서 즐겁다. 한국 영화계에 2017년 여름 흥미로운 작품이 하나 남은 것만큼은 분명하다.

김호정 기자 wisehj@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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