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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고위공직자 '음주운전' 쉽게 봐주는데..."음주사고로 우리 가족은 무너졌어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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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6일 0시20분쯤 경기도 성남 창곡교차로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지난달 16일 0시20분쯤 경기도 성남 창곡교차로에서 음주운전 사고가 발생해 2명이 숨지고 5명이 다쳤다. [사진 경기도재난안전본부]

”우리 사회는 음주운전을 살인과는 달리 그저 ‘단순 실수’ 정도로 여겨 너무 관대하게 봐준다. 처벌에도 너무 관대한 것 같다. 살인 사건 피해자나 음주운전 사망사고 피해자나 결국 무고하게 목숨을 희생당하기는 똑같은데 말이다.”

음주차량에 사망한 청각장애 환경미화원 가족 등 눈물의 세월 #경찰청 "지난해 음주운전사고 1만9769 건, 무고한 481명 숨져" #국민적 공분에도 여론과 동떨어진 솜방망이 처벌 다반사 #1년간 발생하는 교통사고 10건 중 1건이 음주운전 교통사고 #해외에선 음주운전은 중범죄로 엄단하는데 유독 한국은 봐주기 #"음주운전사고는 '단순실수' 아니라 '미필적고의에 의한 살인'으로 처벌해야" #상습 음주운전자 증가세 운전 못하도록 하는 잠금장치 도입입법화 목소리

지난달 16일 0시 20분쯤 경기도 성남시 수정구 복정동 창곡교차로에서 일어난 음주운전 사고는 한 가족을 나락으로 빠뜨렸다. 혈중알코올농도 0.3%의 만취 상태인 장모(29)씨가 몰던 BMW 차량이 신호대기 중이던 A씨(60)의 택시 뒤를 강하게 들이받았다. 충격으로 앞서 신호대기 중이던 차량 4대가 연쇄 추돌을 일으켰다.

이로 인해 택시 바로 앞에 정차 중인 스파크 차량 뒷좌석에 탔던 B씨(71·여)가 숨졌다. 스파크 차량 동승자였던 B씨의 큰딸(50)과 작은딸(47) 등 3명은 중경상을 입었다. B씨는 딸들과 사망한 자신의 친언니 장례식장에 갔다 돌아오는 길에 이 같은 참변을 당했다. 큰딸은 얼굴을 크게 다치면서 현재 실명 위기다. 안구 손상이 심각하다고 한다. 사망한 택시 기사 A 씨는 부인 사이에 20대 딸을 둔 가장이었다.

가해자 장씨는 뇌출혈로 현재까지 입원치료를 받고 있다. 사고 당시 그가 몬 차는 이동수단이 아닌 도로 위 ‘흉기’였다. 경찰 관계자는 “치료를 마치는 대로 위험운전치사상 혐의를 적용해 구속영장을 신청할 것”이라고 말했다.

음주운전이 삶의 희망으로 가득한 가정을 한순간에 일그러뜨리는 사례도 있었다.

광주광역시에서 사는 안모(63)씨의 시간은 지난해 12월15일 오전 6시50분에 멈춰 있다. 안씨는 그때 한 통의 전화를 받았다. 청각장애가 있는 동생(56)이 환경미화원으로 근무 중인 회사 관계자로부터였다. 안씨의 동생은 이날 오전 6시30분쯤 근무 중 승용차에 치여 숨졌다. 운전자는 육군 모 부대 소속 상근예비역 조모(21) 상병. 그는 면허취소 수치인 0.146% 상태에서 차를 몰았다 사고를 냈다.

이후 삶은 산산히 깨졌다. 27년간 일을 해온 안씨의 동생은 약 3년 전에야 자신 명의의 아파트를 마련했다. 1년 뒤면 은행 빚을 모두 갚고 집이 완전한 자신 소유가 된다는 생각에 들뜬 무렵에 사고를 당했다. 광주광역시장이 주는 모범환경미화원상 수상을 보름여 앞둔 시점이기도 했다.

청각장애가 있는 그의 부인 역시 한순간 남편을 잃은 슬픔에 몇 달간 음식도 제대로 먹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전공을 살려 토목 분야에서 일하고 싶었던 취업준비생 큰아들(26)은 사고 이후 꿈을 접어야 했다. 남동생(23)의 학비 등을 마련해야 해서다. 결국 아버지가 다니던 회사에 취직해 환경미화원으로 일하고 있다. 수입이 아버지가 벌던 액수의 절반도 되지 않아 형편이 어려운 상황이다.

하지만 가해자 측의 제대로 된 사과나 보상은 없었다.  오히려 합의가 뜻대로 이뤄지지 않자 숨진 안씨 가족이 과도한 합의금을 요구하는 것처럼 주장했다고 한다. 조 상병은 지난 5월 보통군사법원의 1심에서 ‘징역 3년’을 선고 받는 것으로 사건은 사실상 마무리 됐다.

3대(代)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청라 음주교통 사고 당시 가해차량 모습. [사진 인천서부소방서]

3대(代)의 목숨을 앗아간 인천 청라 음주교통 사고 당시 가해차량 모습. [사진 인천서부소방서]

음주뺑소니 사망사고는 더 악성이다.

2015년 국민적 공분을 일으킨 충북 청주 ‘크림빵 뺑소니’ 사고가 대표적이다. 2015년 1월 10일 새벽 허모(39)씨가 몰던 차량에 화물차 운전인을 하던 강모(당시 29세)씨가 치여 숨졌다. 허씨는 사고 전날 술자리를 가진 뒤 음주운전을 하다 사고를 낸 뒤 그대로 도주했다 경찰에 붙잡혔다.

피해자 강씨는 아내 장모(29)씨의 임용고시 뒷바라지를 하던 중 변을 당했다. 당시 강씨는 임신 7개월 째인 아내에게 줄 크림빵을 사 들고 가다 사고를 당했다. 네티즌들은 강씨에게 ‘크림빵 아빠’라는 호칭을 붙이고 그를 애도했다.

장씨의 사정을 딱하게 여긴 서원대는 그해 2월 그를 도서관 계약직 사서로 채용했다. 이원식 서원대 홍보실장은 “혼자서 아이를 키우는 장씨를 위해 1년 뒤 기간제 교사로 채용하겠다고 제안했지만 ‘특혜를 받는 것은 정당하지 않다’며 고사했다. (그 분이) 내색은 안했지만 청주에서 살기가 힘들었던 것 같다. 남편을 잃은 슬픔을 잊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전했다.

남편을 잃은 장씨는 지난해 2월 시댁이 있는 청주를 떠나 서울로 갔다고 한다. 가해자는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았다.

지난 1월 29일 경남 김해 구간 남해고속도로 장유톨게이트 인근 갓길에서 펑크난 타이어 교체 작업을 벌이던 유모(36)씨 등이 갑자기 덮친 음주 차량에 치여 현장에서 즉사한 사고가 있었다. 음주운전 사실이 드러나는 게 두려웠던 가해운전자 박모(36)씨는 승용차를 버리고 도망갔고, 20시간 여만에 경찰에 자수했다.

하지만 지난 5월 22일 재판부는 박씨에게 징역 5년을 선고했다. 도주치사 혐의만 인정한 것이다. 재판부는 자백에 의한 음주운전을 인정할 수 없다고 판단했다. 15년 전 연을 끊은 아버지가 갑자기 나타나 가해자와 1000만원에 합의한 것도 재판에 영향을 미쳤다.

유씨 동생(30)은 “정말 청와대 앞에서 목숨이라도 끊고 싶은 생각이 하루에도 수십 번씩 들지만 남은 홀어머니를 생각하면 이것조차도 할 수 없다”고 흐느꼈다.

음주운전은 한 가족의 대(代)를 끊어 놓기도 했다.

지난해 6월 10일 전국을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인천 3대 가족 음주운전 사망사고’가 대표적 예다. 저녁 식사자리서 술을 마신 만취 운전자가 김모(사고당시 42세·여)씨와 남편, 어머니(사고당시 66세), 아들(사고당시 5세) 등 4명이 탄 차를 들이받았다. 이 사고로 김씨 남편을 제외한 3명이 숨을 거뒀다. 가족모임을 하고 귀가하던 중 일어난 참사였다. 남편은 지금도 재활치료 중이다.

김씨 친오빠인 김달현씨(45)씨는 “음주운전자들을 보면 대리비 2만~3만원이 아까운 게 아니라 ‘나는 괜찮아’라며 운전하는 습관 때문”이라며 “국가는 이제 그들에게 관용(음주문화 때문에 빚어진 과실치사)을 베풀 것이 아니라 ‘살인할 의도를 갖고 운전한 살인혐의’를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9명이 환하게 웃는 이들의 가족사진 속 행복은 음주 사망사고가 완전히 앗아갔다.

가해 운전자는 합의가 이뤄지지 않자 공탁금을 걸었다 유족의 반발을 사기도 했다.

음주운전 단속 근무 중 도주하는 차량에 치여 끝내 숨진 경북 김천경찰서 역전파출소 소속 故 정기화(37) 경감의 영결식 모습. [중앙포토]

음주운전 단속 근무 중 도주하는 차량에 치여 끝내 숨진 경북 김천경찰서 역전파출소 소속 故 정기화(37) 경감의 영결식 모습. [중앙포토]

음주운전 단속을 하는 경찰관도 음주사고의 예외는 아니었다.

지난해 5월 경북 김천 평화동서 음주 단속을 피해 도주하던 차량에 치어 숨진 고(故) 정기화 경감(37). 정 경감은 도주 차량에 매달린 채 10여m를 끌려 갔다. 차에서 떨어질 때 도주차량의 뒷바퀴에 치여 끝내 숨졌다.

사고 당시 부인은 둘째 딸 출산을 앞두고 있었는데 얼마 전 이 둘째의 돌잔치가 열렸다고 한다. 돌잔치는 정 경감의 빈 자리에 결국 울음바다로 끝이 났다.

정 경감 동료이자 동서지간인 김광욱 김천경찰서 경위는 “음주운전은 정말 남은 가족들한테 너무 큰 상처다. 가해자 한 사람의 행동으로 인해서 몇 사람이 고통을 받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정 경감 첫째 아들은 요즘 부쩍 아빠의 빈 자리를 느낀다고 한다.

법원 마크

법원 마크

음주운전은 이처럼 ‘미필적 고의’에 의한 명백한 살인행위라는 지적이 나올 정도로 점차 큰 공분을 사고 있다. 피해자 가족은 물론 수사기관 관계자들도 “한 가정을 산산조각내는 끔찍한 범죄”라고 입을 모은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여전히 사고로만 이어지지 않으면 음주운전에 대해 관대하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청문회에 나온 고위직 인사의 경우 음주운전 경력이 드러나도 어물쩡 넘기는 분위기다. 송영무 국방장관 후보자나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안경환 전 법무부 장관 후보자(사퇴)가 대표적이다.

물론 과거 박근혜 정부에서도 음주운전을 가볍게 여기는 풍조는 마찬가지였다. 음주운전을 단속해야 할 경찰의 총책임자인 이철성 현 경찰청장은 과거 음주경력에도 버젓이 청문회를 통과했다. 음주사고에 특히 예민한 일선 경찰 조직내에서조차 허탈하다는 볼멘 소리가 나왔다.

다행히 시민들 사이에서는 음주운전자에 대한 처벌수위를 높이고, 술을 마실 경우 아예 운전을 못하게 하는 시동잠금장치 같은 예방조치 도입이 시급하다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과거 음주운전 경력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송영무 국방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중앙포토]

과거 음주운전 경력 등으로 논란을 빚고 있는 송영무 국방부장관 후보자 인사청문회에서 물을 마시고 있다. [중앙포토]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30일 인사청문회에서 음주운전 전력에 대해 “다시 한번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 강정현 기자

조대엽 고용노동부 장관 후보자가 30일 인사청문회에서 음주운전 전력에 대해 “다시 한번 죄송하다”며 머리 숙여 사과했다.강정현 기자

이철성 경찰청장이 후보시절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이철성 경찰청장이 후보시절 인사청문회에 참석해 인사하고 있는 모습. [중앙포토]

도로교통공단에 따르면 최근 3년간 국내에서 발생한 음주 교통사고 건수는 2014년 2만4043건, 2015년 2만4399건, 2016년 1만9769건이다. 이 기간 음주사고로 1656명이 사망하고, 무려 12만75명이 다쳤다. 엄청난 인명 손실이다. 지난해의 경우 음주 교통사고는 전체 교통사고 22만917건의 8.94%를 차지한다.

2014년에 비해 증가한 음주 교통사고는 지난해 감소하긴 했지만 상습 음주운전자는 늘어난 게 현실이다. 경찰청에 따르면 3회 이상 음주운전자 적발 비율은 2014년 17.8%에서 2015년 18.5%, 2016년 19.1%로 증가세를 보였다. 상습적인 음주운전을 뿌리 뽑기 위해서는 처벌강화와 같은 사후적 처방만으로는 한계가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음주사고 예방 위한 경찰의 불시 단속 모습.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음주사고 예방 위한 경찰의 불시 단속 모습. [사진 경기남부경찰청]

성남·인천·광주광역시·청주·김해·대구·김천=김민욱·임명수·김호·최종권·이은지·김정석·백경서 기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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