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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재'가 '호재'로 둔갑...부동산시장 움직이는 숨은 심리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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업데이트

집값과 전월세 시세 현황판이 붙어 있는 부동산중개업소 앞을 지나는 행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부동산시장에 심리의 영향이 크다.

집값과 전월세 시세 현황판이 붙어 있는 부동산중개업소 앞을 지나는 행인들은 어떤 생각을 할까. 부동산시장에 심리의 영향이 크다.

부동산 가격은 장기적으로 인구·소득·경제성장률 등 변수에 따라 움직임이 달라진다. 하지만 단기적으로는 심리의 영향이 절대적이다. 심리는 단기적으로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가격을 이해하는 데 핵심 변수라는 얘기다.

[박원갑의 부동산 돋보기] #주택시장 단기 변동엔 심리가 큰 영향 #시장흐름 따라 정보 왜곡 심해 #자기 집, 자기 동테가 최고 #가까워져도 멀게만 느껴지는 외곽 #객관적으로 보려는 노력 필요

부동산시장은 인간의 욕망·불안이 분출하는 심리적 공간이다. 시장은 때로 사실보다 억측과 풍문에 더 출렁인다. 있는 그대로 보려고 하지 않고 보고 싶은 대로 보려는 편향 탓에 정보가 쉽게 왜곡되기 일쑤다.

이러다 보니 시장은 비합리적으로 움직일 때가 적지 않다. 다른 사람 행동에 대한 모방과 경쟁 심리로 시장은 자주 쏠림현상이 나타나고 부작용을 낳는다. 비이성적인 쏠림현상으로부터 조금이라도 벗어나기 위해서는 '생각의 힘'이 필요하다. 한쪽에 쏠리지 않는 균형적 사고, 가끔은 한 발짝 떨어져서 바라보는 ‘거리 두기’ 자세가 절실하다는 얘기다.

정보는 때로는 굴절 수용된다

최근 강남 재건축 아파트값 급등은 내년 부활할 가능성이 있는 재건축 초과이익환수제라는 정보의 굴절 수용이 한 원인인 것 같다. 초과이익환수제는 말 그대로 재건축 조합원들이 얻는 초과이익을 국가가 환수하는 만큼 수익이 줄어 가격 하락 요인으로 이어지는 게 일반적이다.

하지만 시장은 때로 정보를 자기식대로 해석한다. 초과이익환수제를 수익성 악화라는 그 자체보다는 재건축 사업 차질에 따른 공급 부족으로 받아들이는 정보 왜곡 현상이 나타난 것이다. ‘악재’가 오히려 ‘호재’로 둔갑해버린 꼴이다.

정부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활이 주택시장 일부에선 공급 감소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추진 아파트.

정부의 재건축 초과이익 환수제 부활이 주택시장 일부에선 공급 감소 신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사진은 서울 강남권 재건축 추진 아파트.

이런 현상은 주택시장 상승 에너지가 강할수록, 무주택자의 불안 심리가 강할수록 자주 나타난다. 반대로 투자심리가 극히 침체해 있을 때는 호재를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지 않는 경우도 많다.

예컨대 하우스푸어 사태가 극심했을 때인 2012년 한국은행이 기준금리를 인하해도 집값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금리 인하는 주택시장에 큰 호재이지만 시장은 “오죽 실물경기가 나쁘면 금리까지 낮출까”라는 식으로 호재를 비관적으로 수용했기 때문이다.

경기가 나빠진다면 당장의 소득과 일자리가 위협받지 않을까 걱정할 뿐 주택 구매 기회로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이처럼 같은 재료라도 정보에 대한 수용자의 태도에 따라 반응은 달리 나타난다. 주택시장 여건이나 분위기를 고려하지 않고 정책 발표 이후 시장의 흐름을 예단하는 것은 위험하다.

왜 내집과 동네를 최고라고 생각할까

어느날 당신은 대도시 외곽에 아파트를 샀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선택을 후회한다. 바로 앞이 초등학교라 시끄럽고 개별 난방하는 보일러도 오래돼 자주 고장이 난다. 하지만 이미 잔금을 치러 엎질러진 물처럼 되돌릴 수 없는 노릇이다. 이제 생각을 무한긍정으로 바꾸게 된다.

이왕 산 집 장점이 많다고 스스로 설득한다. 아침 저녁으로 초등학교 운동장에서 운동하기에는 이 집만 한 곳이 없다고 선택을 합리화한다. 상대적으로 싼 물가도 얇은 월급봉투로 살아야 하는 월급쟁이에게 더할 나위 없이 적합한 곳인 것 같다.

이와 함께 대부분 사람들은 자신의 동네가 최고라고 생각한다. 자기 동네에 대해 험담이라도 하면 얼굴이 금세 굳어진다. 하지만 혹시 ‘우리 동네 최고’ 현상은 그 동네에 오래 살다보니 정들어 모든 게 좋아 보이기 때문은 아닐까. 우리는 낯 익은 대상에 호감을 갖는다.

처음에는 콘크리트 건물은 삭막한 시멘트 덩어리이지만 정들면 자식 같이 사랑스럽다. 집 앞의 볼품없는 야산도 자주 오르락 내리락 하다보면 어머니 품처럼 포근하고 정겹다. 우리는 사실 어떤 대상에 호감과 비호감의 이유를 대기 전에 이미 알고 있는 것을 좋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객관적인 시장가치 이외에 개인의 정서적 가치를 부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친숙하다고 반드시 좋은 것은 아니다. 그만큼 주관적 착각에 빠져 투자의 실패로 이어질 가능성도 크다.

집을 팔면 잘 했다 싶은데 왜 불안할까

하지만 집을 팔았을 때는 생각이 다르다. 이제는 팔았으므로 좋지 않은 점만 생각한다. 이미 판 아파트는 지금 사는 집보다 산이 멀어 주말에 등산을 가기도 어렵다. 고층이라 재건축도 하기도 쉽지 않아 계속 보유해봐야 메리트가 없다.

관리비는 왜 그렇게 많이 나오던가. 생각해보니 엘리베이터 고장도 너무 잦았던 것 같다. 잔금을 받아 내 품을 벗어난 그 아파트의 시세는 이제 다시 보려고 하지 않는다.

이런 행위들을 ‘인지 부조화’라고 한다. 인지 부조화는 행위와 믿음의 불일치에서 비롯된다. 행위와 믿음이 충돌하면 한쪽으로 일치시켜 모순을 해소하려한다. 행동으로 이미 옮겼으므로 자신의 믿음을 바꿔 불일치를 해소하는 게 나을 것이다. 자기 합리화를 통해 마음의 불편을 해소하려는 것이다.

그런데 집을 팔고 난 뒤 불안을 느끼는 사람이 많다. 경기도 광주시에 사는 박현기(가명·42)씨는 집을 팔고 나니 손이 떨린다고 했다. 집 판 돈을 은행 통장에 넣어두고 있으려니 불안하다. 금세 집값이 다시 올라갈 것 같다.

다른 동네 집값이 오른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가 집을 잘못 판 것 같다. 어떻게라도 움직여야 한다는 강박관념에 시달린다. 박씨처럼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고 기다리는 고통을 견디지 못한다. 무슨 일이든 저질러야 하는 충동을 느낀다. 이런 현상을 ‘행동편향’이라고 한다. 골키퍼들이 가운데 가만히 있지 못하고 왼쪽이나 오른 쪽 중 한 곳으로 몸을 날린다. 나중에 틀린 방향으로 드러나도 덜 괴롭기 때문이다.

부동산시장이든 주식시장이든 조급증이 실패를 부른다. 요즘 같은 변동성이 강한 시장에서는 투자할 기회도 많아진다. 이번 기회가 아니더라도 투자 기회는 다음에 또 온다. 투자의 세계에서 실패로 가는 지름길은 쓸데없이 서두르는 일이라는 점을 잊지 말자.

심리적 거리와 시간적 거리


도로나 철도 개통으로 시간적 거리가 짧아진 만큼 심리적 거리도 짧아질까. 그러나 지금까지 지하철·철도·도로 개통으로 통근시간이 빨라진다고 하더라도 기대만큼 심리적 거리가 짧아지지는 않았다. 두 지역 간 공간적으로 떨어진 절대적 거리에서 사람들은 여전히 심리적으로 멀다고 느끼고 있다는 얘기다.

가령 천안까지 이어지는 수도권 전철이나 경춘복선 전철, KTX의 개통으로 지방에서 서울까지 이동거리가 짧아졌지만 여전히 심리적 거리의 벽을 허물지는 못했다. 바로 ‘시간적 거리의 단축=심리적 거리의 단축’이라는 정비례 관계가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교통혁명으로 통근 시간이 짧아지면 서울이나 부산에 직장이 있는 샐러리맨들의 주거지 선택 반경도 넓어진다.

교통이 편리해 실제 시간거리는 짧아져도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먼 경우가 많다.

교통이 편리해 실제 시간거리는 짧아져도 심리적 거리는 여전히 먼 경우가 많다.

하지만 주거지를 이동하더라도 일정 범위를 넘어가지는 않는다. 많은 샐러리맨들이 여전히 서울이나 부산을 크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은 단축된 시간적 거리만큼 심리적 거리를 좁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전철이나 지하철 개통 재료가 분명 큰 호재이지만 지나친 기대는 바람직하지 않을 수 있는 것이다.

문장속의 1인치를 읽어라

“집값 하락과 집값 하락 요인을 구분하십니까.” 이런 질문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당연한 것을 왜 묻느냐고 화를 낸다. 하지만 실제로는 막상 부동산 뉴스를 읽을 때 하락과 하락 요인을 구분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어찌 보면 비슷할 것 같지만 실제로는 엄청난 큰 차이다. 예를 들어 보유세를 인상하면 집값은 하락하는 것이 아니라 하락요인으로 작용한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무의식적으로 '보유세 인상=집값 하락'으로 연결고리를 만들려고 한다.

보유세 인상은 집값을 끌어내리는 하락요인일 뿐 그 자체가 하락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니다. 보유세 인상에도 금리 인하 등 다른 상승 변수가 생기면 오히려 주택가격은 상승할 수 있다. 대체로 한 변수가 부동산시장에 미치는 영향을 설명할 때는 다른 변수는 고정돼 있다는 전제하에 이뤄진다.

하지만 다른 변수가 움직이면 집값은 어떻게 될지 알 수 없다. 시장을 고찰 할 때 한 변수의 비중을 지나치게 높여 시장을 보는 것은 위험하다.

따라서 객관적으로 시장을 보기 위해서는 한 변수에만 집착하는 습관은 버려야 한다. 그 변수 아래 다른 변수들이 잠복하고 있다는 것을 아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야 판단 실수를 하지 않는다.

박원갑 KB국민은행 WM스타자문단 부동산수석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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