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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인구의 이상가족]⑧'진짜 엄마'가 되고픈 엄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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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 디지털 광장 '시민 마이크'가 가족의 이야기를 들려드립니다. 어쩌면 힘들고, 아픈 이야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를 웃고 울게 하는 가족의 이야기를 통해 그간 잊고 지냈던 가족의 의미를 되돌아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오랜 판사 경험을 살려 배인구 법무법인 로고스 가사·상속센터장(변호사)가 여러분의 고민을 함께 합니다. 배인구의 '이상(理想) 가족'은 매주 1회에 걸쳐 연재됩니다. 사연은 사례자의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일부 재구성·각색해 전달합니다. /시민마이크 특별취재팀


[중앙 포토]

[중앙 포토]

어떻게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네요. 저는 지금 한 여자 아이를 무척 사랑하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저를 '엄마'라고 부릅니다. 이혼을 요구하고 있는 남편에게는 '아빠'라고 부르구요. 그런데 이 아이의 생물학적 부모는 다른 사람들입니다.

남편과 혼인하고 10년이 될 때가지 저희는 자녀가 없었습니다. 저와 남편 모두 부지런한 것 하나로 살림을 늘려갔고, 살림이 늘어가면서 아이가 있었으면 하고 바라기도 했지만 사는 게 바빠서 시험관아기 같은 것은 생각도 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고향에서 살짝 알고 지내던 동생이 울면서 찾아왔습니다. 어떤 남자를 알게 되어 동거하다가 아이를 가졌는데 갑자기 자기와 아이를 버리고 떠났다구요. 배는 불러오고 아무리 수소문을 해도 아이 아빠의 행방을 알 수가 없다면서 저희 부부에게 아이가 없으니 제발 이 아이를 키워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동생이 불쌍하다는 생각도 들었고, 입양도 생각해봤던 터라 남편과 상의하고 우리 부부의 아이로 키우기로 했습니다. 아이를 병원에서 출산하고 출생신고를 하면서 엄마란에는 동생 이름을, 아빠란에는 남편이름을 적었습니다.

외형상으로 남편이 밖에서 아이를 낳아 데리고 온 셈이 되었죠. 동생은 아이를 낳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게 일본으로 돈을 벌러 가는데 다시는 아이를 보러오지 않을 것이고, 이제는 언니 아이니 잘 키워달라면서 가버렸고 그 이후로 소식을 철저하게 끊었습니다.

가슴으로 낳은 아이, 달라진 남편
"이혼하고도 아이를 지키고 싶어요"

늦게 제게 온 아기, 제게 엄마라고 부르는 이 여자 아이가 얼마나 예쁘고 사랑스러운지 모르겠습니다. 입양을 가슴으로 낳는다고 하죠. 저 스스로 배로 낳은 것 보다 더 살뜰하게 키웠다고 자신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저는 법적으로 아이의 동거인일 뿐입니다. 남편과의 관계에 문제가 없을 때는 그런 것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고 솔직히 그것이 중요한 것인지 잘 몰랐습니다.

남편이 변하면서 문제가 생겼습니다. 남편은 제게 이혼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저도 저 싫다는 남편과 살고 싶은 생각은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아이입니다. 저희가 이혼하게 되면 남편은 친권자가 될 생각이 없는데, 남편만 친권자가 된다면서 짜증을 냅니다. 저는 아이의 친권자가 되고 싶지만 될 수 없습니다. 남편은 아이를 혹으로 생각합니다. 저와 이혼하면서 아빠로서의 모든 권리 의무에서 벗어나고 싶다고 합니다. 그래서 친생자관계가 부존재한다는 소를 법원에 제기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습니다. 이혼을 하면 지금보다 저는 가난해지겠지만 그래도 아이는 힘닿는 대로 키울 겁니다. 남편에게 양육비를 달라고 할 마음도 없습니다. 다만 저는 아이를 엄마로서 떳떳하게 키우고 싶은데 그럴 수 없다니 절망스럽습니다.

제작=조민아

제작=조민아

배인구 변호사가 답합니다

 사례자분이 아이의 친권자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입양하는 방법이 있습니다. 우리 민법은 입양제도를 2종류로 정해두고 있는데 하나는 일반입양이고 다른 하나는 친양자 입양입니다. 일반입양을 하면 입양후에도 친생부모와의 법률적 관계가 유지됩니다. 이와 달리 친양자 입양을 하면 친생부모(사례자의 경우 남편)와의 법률적 관계가 단절되구요.

만약 사례자분이 이혼 후 아이를 친양자 입양할 수 있다면 남편의 의도대로 아이와 아버지의 법률관계는 단절됩니다. 실제론 아이에게 친생부모가 있지만 현재 법적으론 남편만 친생부모로 돼있으니 사례자분이 이혼 후 아이를 친양자 입양하면 법상 친생부모인 남편과 관계가 끊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부부에게만 친양자 입양을 허용하고 있습니다.

물론 사례자분은 아직 이혼하기 전이니 지금 사례자분 부부가 친양자 입양을 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법원이 이혼과정에 있는 부부에게 친양자 입양을 허가하는 걸 기대하긴 어렵겠죠. 게다가 이 경우엔 남편이 계속 아버지로 남게 되니 남편이 찬성하지도 않을 겁니다.

사례자분이 이혼한 후 독신으로 지내면서 아이를 입양하려면 민법상 일반입양의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런 점들을 고려하면 차라리 현시점에서 아이를 일반입양하고 이혼과정에서 양모로서 친권자로 지정받아 아이의 양육에 공백이 생기지 않도록 하시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합니다. 다만 일반입양의 경우에도 가정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합니다.

남편과의 이혼만 생각해도 마음이 많이 힘들텐데 아이를 끝까지 책임지려고 하는 모습이 존경스럽습니다. 현명하게 잘 해결해 나가시리라 믿지만 아이가 사례자분의 이혼 과정에서 덜 상처받도록 차근차근 하나씩 풀어가시기를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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