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대통령 스탠딩 간담회, 난기류 뚫은 소통 의지? 안전수칙 위반?

중앙일보

입력

의연한 소통 의지였을까, 기내 안전수칙 위반이었을까.

한ㆍ미 정상회담을 위해 미국을 방문 중인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출국 직후 기내에서 진행한 기자간담회를 놓고 온라인에서 논란이 벌어졌다.

문 대통령은 대통령 전용기인 ‘공군1호기’가 이륙한 직후 기자단이 있는 좌석으로 온 뒤 서서 간담회를 진행했다.
그런데 20여분간의 간담회 도중 난기류를 만나 기체가 크게 흔들렸다. 기체가 위ㆍ아래로 심하게 흔들리자 문 대통령의 몸도 휘청거렸고, 주변의 참모들은 다급하게 문 대통령이 넘어지지 않도록 잡아주기도 했다. 당시 상황을 담은 영상에는 기내 선반에서 작은 물건이 문 대통령 주변으로 떨어지는 모습도 포착됐다.

문제는 그 다음부터다. 문 대통령 옆에 있던 주영훈 청와대 경호실장은 즉각 “비행 규정상 앉아 있어야 한다”며 간담회 중단을 요구했다. 하지만 문 대통령은 “제가 하나만 더 부탁하겠다”며 간담회를 계속 이어갔다. 당시 영상 속의 안전벨트 착용 표시등에는 빨간 불이 켜져 있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미국행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8일 미국행 기내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취재진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안전벨트 착용 표시등이 켜진 상황에서, 그것도 난기류로 기체가 크게 흔들리는 상황에서 보통 항공기의 일반 승객이라면 안전벨트를 매고 자신의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한다. 게다가 이런 상황에서 승무원이 자리에 앉으라고 요구하면 승객은 따라야 한다. 승객의 협조 의무를 규정한 항공보안법 23조 4항에는 ‘항공기 내의 승객은 항공기의 보안이나 운항을 저해하는 행위를 금지하는 기장 등의 정당한 직무상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각 항공사의 매뉴얼에도 난기류를 만났을 때 ‘서 있거나 돌아다니는 승객은 무조건 자기 자리로 돌아와 안전벨트를 매야 한다’고 적혀 있다.

상당수 언론은 문 대통령의 난기류 속 스탠딩 간담회를 “특전사 출신 문 대통령의 소통 의지”라는 취지로 기사를 썼다. 하지만 당시 상황을 짚어 보면 문 대통령이 기내 안전수칙을 위반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선 두 갈래 목소리가 나왔다.

문 대통령의 스탠딩 간담회를 긍정적으로 바라본 누리꾼들은 “전쟁 나도 수도를 끝까지 지킬 분”, “터프한 수송기 타던 공수부대 출신이니 저 정도야 뭐”라는 식의 반응을 보였다. 반면 걱정스럽게 바라본 누리꾼들은 “실제로 (영상을) 보니까 좀 위험했네요. 위에서 뭐 떨어지고”라고 적었다.

일부 누리꾼은 언론을 향해 “세월호도 사소한 안전수칙을 안 지켜서 생긴 사고인데, 안전수칙 안 지키는 것도 모자라 그걸 용감한 걸로 포장까지 함”이라고 비판하기도 했다.

현재 국회에는 항공기 안전을 저해하는 행위에 대한 처벌ㆍ규제를 강화하는 내용의 법안이 다수 제출돼 있다. 기장 등의 업무를 방해해 항공기 안전운항을 해치는 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는 내용의 항공보안법 개정안이 지난 3월 2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기도 했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소속 자유한국당 의원은 “누구보다 안전해야 할 문 대통령 본인을 위해서나 국민의 안전의식을 높이기 위해서도 문 대통령이 기내 안전수칙을 지켰어야 했다”며 “많은 국민이 항공기를 이용하고 있고 난기류를 만나면 안전벨트를 매는 걸 상식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국민의 눈높이와도 맞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허진 기자 b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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