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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가족의 탄생]나는 '위탁엄마'

중앙일보

입력

중앙일보의 디지털 광장 시민마이크가 디지털 다큐멘터리『新가족의 탄생: 당신의 가족은 누구입니까』를 연재합니다. 이 땅에서 '가족'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다양한 이들을 그들의 목소리로 소개합니다. 이번 이야기는 위탁가족입니다. 예고로 진학해 첼리스트의 길을 갈 지, 아니면 과학고에 가서 신무기 소재를 만드는 과학자가 될 지를 고민하는 중학생 민호(14·가명)의 '위탁엄마' 송순향(57)씨를 만나봤습니다. 질풍노도의 시기,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민호와 투닥거리며 살아가고 있는 엄마는 가족에 대해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시민마이크 특별취재팀=김현예·이유정 기자, 조민아 멀티미디어 담당, 정유정 인턴기자(고려대 미디어학부 3년) peoplemic@peoplemic.com


사춘기 '위탁 아들'을 돌보고 있는 송순향씨가 지난 6월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 민호(가명 왼쪽)의 재산목록 1호인 첼로가 방에 놓여있다.최정동 기자 

사춘기 '위탁 아들'을 돌보고 있는 송순향씨가 지난 6월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가족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가슴으로 낳은 아들 민호(가명 왼쪽)의 재산목록 1호인 첼로가 방에 놓여있다.최정동 기자

 1막 우리 가족의 어제


또 싸웠다, 엄마와 아들의 전쟁
또 한판을 했다. 아이를 처음 키우는 것도 아닌데, 사춘기 아이는 어렵다. 엊그제 저녁. 민호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한껏 뿔이 난 얼굴로 친아빠에게 전화를 건다."아빠, 왜 나는 키가 안커? 아빠는 너무해. 그래도 아빠 키가 크니까 그거 하나는 물려주겠지 했는데. 그 하나 있는 키도 안물려주면 어떻게 해?" 전화를 끊은 아들은 내게 성장판 검사를 받고 싶다고 했다. 앞으로 얼마나 키가 클 수 있는지 알아보고 싶다는 거였다. 잘 먹고 잘 자면 큰다고 했더니 민호가 덥석 말을 뱉는다. "엄마가 (나를) 낳았으면 그거 안해줬겠어?"

 "낳아주신 아빠한테 그러면 못써. 야, 이녀석아 형아 누나같으면 몽둥이다. 근데 너 때리면 근데 엄마 경찰에 잡혀가서 안돼." 그 다음날 아침, 민호가 내 품에 안긴다. '엄마 미안해, 화가 나서 그랬어. 사랑해.' 이러니 예쁘지 않은가. 민호 손을 잡고 병원에 가서 검사를 받았다. 낳아주신 친부는 키가 187㎝. 민호는 최대 클 수 있는 키가 175㎝라고 했다. 남자중학교를 다니는 민호는 요즘들어 키에 민감하다.

민호가 내게 온 날
그렇다. 나는 위탁엄마다. 다들 위탁가정이라고 하면 "그거 하면 얼마주냐?"고 한다. 처음엔 상처도 됐다. 하지만 이젠 괜찮다. 사람들에게서 받는 상처보다, 아이를 키우며 얻는 보람이 더 크기 때문이다. 민호를 만난 건 2003년의 일이다. 1980년대 초 대기업에 다니는 남편이 해외 주재원이 되었다. 남편과 함께 비행기에 탔다. 우연찮게 해외 입양가는 아이들이 비행기에 같이 탔다. 비행기 안에서 아이들은 울어댔다. 보다 못해 한 아이를 안고 다독이는데 신기하게도 아이가 내 품에서 내 눈을 바라보는게 아닌가. 아이의 눈이 잊혀지질 않았다.

"여보, 우리 입양할까?"
귀국한 뒤로 입양시설을 찾아다녔다. 우리 아이가 없는 것도 아니었지만 비행기에서 만난 아기 눈빛을 잊기 어려워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봤다. 마침 그때 알게 된 곳이 가족위탁센터. 친가정이 회복되어 돌려보낼 때까지, 혹은 아이가 자립을 할 때까지 함께 살 수 있다는 거였다. 천식이 있는 나 때문에 입양은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입양보다 아이를 잘 키워서 사회로 돌려보내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위탁가정 신청을 했다.

그리고 일주일 뒤. 8개월 된 남자 아이가 우리 집을 찾았다. 민호였다. 당시 우리집 큰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 둘째가 고등학교 2학년이었다. 주변에선 만류했다. "자식들이 대학교를 가고 난 뒤에나 하라"는 거였다. 신경쓸 일이 많은데 갓난아이를 키우는게 말이 되냐는 뜻이었다.

2막 엄마의 오늘 


아들도, 나도 자라났다

주변의 걱정과 달리 민호가 우리 집에 찾아오면서 우리 가족은 180도 달라졌다. 사춘기 아이들은 학교에서 돌아오면 제 방에 들어가 나오지 않는 것이 일쑤였지만, 갓난아이인 민호 때문에 닫힌 방문을 열고 거실로 나오는 시간이 늘어났다. 남편과도 민호 이야기를 하느라 대화 시간이 늘어났다. 민호가 걷고, 말하고,웃고…. 이 모든 것이 뉴스였다.

민호는 어둠을 싫어했다. 밤이 되면 집이 떠나가라 울었다.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었을 때 민호가 지나가듯 이야기를 했다. "엄마 나는 날이 어두워지면 불안했어." 민호는 자기를 낳고 떠난 엄마, 그리고 낯선 집에 자기를 남겨 두고 떠난 아빠와의 이별을 본능적으로 기억하는 듯 했다. 목이 메어왔다.

민호는 산만한 아이였다. 그 때문에 학교 선생님을 수없이 찾아갔다. 학교에선 심리치료를 권했다. 민호에게 악기를 가르쳐주고 싶었다. 아이가 공부를 잘 하느냐 아니냐는 중요치 않았다. 건강하게 잘 자라나면 좋겠다는 꿈이 있었다.

'위탁엄마' 송순향씨가 지난달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민호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정동 기자 

'위탁엄마' 송순향씨가 지난달 서울 노원구 자택에서 민호 이야기를 들려줬다. 최정동 기자

3막 우리 가족의 내일


사춘기 우리 아들을 응원합니다
민호가 초등학교 3학년때 첼로를 배우기 시작하면서 집중력이 좋아지는 듯 했다. 아들 아이들은 '꿈이 뭐냐?'는 질문에 답을 못하지만 우리 민호는 다르다. 꿈이 확실한 아이다. 자식 자랑이지만 우리 민호는 과학과 수학에 뛰어나 서울대에서 별도로 수업을 받는다. 첼로는 최근에 구립 오케스트라 오디션도 봤는데 '소질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들었다. 더러 '중2병'인지 "엄마가 첼로에 대해 뭘 알아?"라고 할 때도 있는데 그러면 "이녀석, 작작해라. 사춘기도 한때"라고 받아친다.

그래도 받는 상처들 
민호의 친부는 지금껏 연락을 이어가고 있다. 친모와도 연락이 닿아 생일 때마다 연락을 하고 있다. 사춘기를 보내고 있는 아들과 한번씩 싸울 때마다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다. 더러 위탁가정 자조모임에 간다. 위탁은 입양과 다르다. 위탁가정과 아이의 성이 다르다. "너는 왜 엄마,아빠랑 성이 달라?"라고 친구들이 물을 때 민호는 상처를 받는다. 유치원이나 어린이집 들어가는 것도 어렵다. 친부,친모가 아니기 때문에 1순위에서 제외가 된다. 아이가 아플 때에도 수술이 필요한 경우에는 내가 민호를 위해 동의서를 써줄 수가 없다. 양육할동안 권한을 인정해주면 좋을 텐데, 보험을 들어줄 수도 없다. 민호가 성인이 될 때까지 아프지 않기를 기도하는 수밖에 없다.

위탁엄마 송순향씨가 간직하고 있는 아들 민호의 탯줄과 배냇저고리. 최정동 기자

위탁엄마 송순향씨가 간직하고 있는 아들 민호의 탯줄과 배냇저고리. 최정동 기자

민호에게 보내는 편지

"가족은 '산'같은 거야"
민호야 엄마야. 엄마가 여태 민호 탯줄을 보관하고 있는 거 알지? 누군가로부터 이어져 내려와 이 세상에 나왔다는 증거기 때문이야. 그 누군가는 너를 있게 해주신 친부,친모이시고. 나는 너와 이 탯줄로는 이어지지 않았지만, 너를 가슴으로 낳았어. 이 탯줄을 우리 민호 장가갈 때 예단함 속에 넣어주는게 엄마의 꿈이란다.
민호야, 너랑 한번씩 싸울 때마다 엄마가 이야기하지? 가족의 의미가 뭔지 말이야. 가족은 사랑이면 되는 거야. 우리 집 밖을 나가봐라. 북한산이 한눈에 들어오지? 북한산을 보고 네가 예쁘다고 하잖아. 그런데 말이야. 밖에선 아름다워 보이는 산도, 그 속에 들어가면 아름다운 꽃만 있는게 아니라 나쁜 짐승도 있고 독초도 있어. 가족도 그래. 우리 둘이 사이가 좋을 때는 엄마, 최고야 하지만 싸우면 문닫고 들어가잖아. 산이나 가족이나 마찬가지야. 이 어려움을 이겨낸 산은 더 푸르고 아름답지. 다른 가족은 더 행복하고, 우리는 불행하고 그런게 아냐. 이 과정을 잘 이겨낸 가족이 더 커지고 단단하지는거야. 미움도 사랑도 그게 다 가족이란다. 알았지?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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