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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8세, 11세 한 교실에 … 개인 맞춤형 커리큘럼으로 낙오자 없앴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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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구글·넷플릭스·세일즈포스 … 교육에 눈 돌린 실리콘밸리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미국 초·중학생의 절반이 넘는 3000만 명이 구글의 수업용 제품을 활용해 수업을 받고 있다. 마크 베니오프 세일즈포스 CEO는 10만 달러의 혁신 기부금을 내놓으면서 교장들에게 “스타트업처럼 실험하라”고 요구했다. 넷플릭스가 인수한 수학 소프트웨어 ‘드림박스 러닝’은 200만 명이 사용 중이다. NYT는 “변화가 너무 빠른 탓에 거대 IT 기업들의 교육 현장에 대한 투자와 개입을 감시할 틈이 없다”고 지적했다.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출발한 교육혁명이 미국을 중심으로 세계 곳곳에서 실험 중이다. 이 학교들의 공통점은 정보기술(IT) 기반의 ‘개인화 교육’과 교과목을 융합한 ‘프로젝트 수업’이다. 칠판 앞에 서서 일방적으로 지식을 전달하는 교사의 모습은 찾기 힘들다. 학습 시간과 공간을 구성하는 방법도 전통적인 학교와는 다르다. 4차 산업혁명의 파고를 넘기 위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는 데 이의를 제기하긴 어렵다. 대표적인 교육 혁신 모델을 소개한다.

달라지는 세계 혁신학교들 #100년 전 인재 키우던 시스템에 메스 #IT 기반 온라인 교육 플랫폼 활용 #교실에 칠판도, 시험 보는 날도 없어 #실시간 피드백, 1년 내내 학습 평가

미국 공교육 스타가 실리콘밸리 스타트업으로

미국 실리콘밸리의 교육 스타트업 알트 스쿨. [사진 알트 스쿨]

미국 실리콘밸리의 교육 스타트업 알트 스쿨.[사진 알트 스쿨]

지난 4월 데빈 보디카 미국 캘리포니아 비스타통합교육구 교육감이 교육 스타트업 알트 스쿨에 합류했다는 소식에 미국 교육계는 술렁였다. 보디카는 미국 미래교육재단 ‘혁신적인 교육감 상’(2014년)과 캘리포니아 ‘올해의 교육감 상’(2015년)을 받은 스타 교육감이다. 그는 ‘평균’의 시대는 끝났다고 주장하면서 철저한 개인화 맞춤 교육 커리큘럼을 도입했다. 그 결과 평점 평균이 올라갔을 뿐 아니라 결석이나 교내 징계 등의 건수도 급락했다고 한다.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로린 파월 잡스(애플 창업자 고 스티브 잡스의 부인)가 주도한 고교 혁신 캠페인 ‘XQ:수퍼 스쿨 프로젝트’에서 1000만 달러(약 113억원)의 상금도 받았다. 파월은 뉴욕타임스 인터뷰에서 “100년 전에 필요했던 노동자를 위해 만들어진 (교육) 시스템에서 해방된다면 누구도 원망하지 않을 것”이라며 프로젝트 취지를 설명한 바 있다. 이렇게 미래형 공교육의 아이콘으로 주목받던 보디카가 작은 교육 스타트업에 합류한 건 교육 혁명의 중심은 결국 실리콘밸리라는 것을 보여 주는 상징적 사건이었다.

미래 교육 모델 알트 스쿨, 2000억 투자받아

알트 스쿨의 온라인 교육 플랫폼. 강의 목록과 개별 진도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알트 스쿨]

알트 스쿨의 온라인 교육 플랫폼. 강의 목록과 개별 진도를 확인할 수 있다.[사진 알트 스쿨]

알트 스쿨의 온라인 교육 플랫폼. 강의 목록과 개별 진도를 확인할 수 있다. [사진 알트 스쿨]

알트 스쿨의 온라인 교육 플랫폼. 강의 목록과 개별 진도를 확인할 수 있다.[사진 알트 스쿨]

구글 임원 출신인 맥스 벤틸라 알트 스쿨 최고경영자(CEO)는 경제 전문 채널 CNBC 인터뷰에서 “대다수 학생이 다니는 공립학교도 지원하기 위해 공교육 스타를 영입했다”고 밝혔다. 공교육으로 세를 불려 나가기 위한 포석인 셈이다. 알트 스쿨은 샌프란시스코와 뉴욕 등에서 유치부~8학년(중학교)까지 아우르는 8개의 사립 실험학교(lab school)를 운영하고, 4개의 파트너 학교에 기술을 지원해 주고 있다. 누적 1억7700만 달러(약 2000억원)를 투자받았다.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도 투자했다.

알트 스쿨은 특별한 교육과정을 강요하지 않는다. 교사가 화두를 던져 학생들에게 배우고자 하는 동기를 이끌어내고, 프로젝트 수업을 통해 답을 찾아 나간다. 학생들은 배우고 익힌 것을 글쓰기, 미술활동, 퍼포먼스 등으로 만들어 가족·친구들 앞에서 공개한다. 평가는 일률적인 시험 대신 교사와 학생의 실시간 피드백을 통해 1년 내내 이뤄진다. 교장과 담임교사, 프로젝트 수업을 이끄는 교과 교사가 있는 점에선 여느 학교와 비슷해 보인다. 하지만 본사의 기술·디자인·행정·교육 인력 100여 명이 뒷일을 맡아 준다는 점이 다르다. 이들은 ‘포트레이트’와 ‘플레이리스트’라는 소프트웨어를 활용해 학생과 교사가 맞춤형 커리큘럼을 짜고 학습 상황을 체크하도록 돕는다. 학부모와는 스마트폰 앱으로 소통한다.

10억 명을 노리는 맞춤 교육, 서밋 스쿨

서밋 스쿨 학생의 일과를 설명하는 학교 홈페이지. [사진 서밋 스쿨]

서밋 스쿨 학생의 일과를 설명하는 학교 홈페이지.[사진 서밋 스쿨]

대안형 공립 고등학교 ‘서밋 스쿨’도 페이스북의 지원을 받아 동영상 강의와 연습과제 등이 포함된 온라인 교육 플랫폼을 완성했다. 일과는 국·영·수 등의 교과목이 아닌 프로젝트·자습(개인화 학습)·멘토링·동아리·방과후 시간으로 구분된다. 단 수학은 모든 학생이 매일 30분씩 비영리교육서비스인 칸 아카데미를 활용해 각자 수준에 맞게 진도를 나간다. 학기당 2주씩은 학습에서 벗어나 예술·기술·경영·미디어 등 각자 선택한 분야의 특별활동에 몰입할 수 있다.

서밋 스쿨의 목표는 대학 진학이다. 가령 학생이 ‘나는 워싱턴 대학교에 가고 싶다’는 목표를 설정하면 멘토 교사의 도움을 받아 그에 필요한 교육과정을 밟아 갈 수 있다. 멀리사 롤프스 서밋 스쿨 홍보국장은 “몇몇 뛰어난 학생만이 아니라 재학생 전원이 AP(Advanced Placement, 대학 과목 선이수) 코스를 밟고, 졸업생의 99%가 4년제 대학에 합격했다”면서 “학비가 무료이며 누구에게나 열린 공립학교라 더욱 의미 있는 결과”라고 말했다.

현재 11개의 서밋 스쿨이 있고, 2015년부터는 무료 교육 플랫폼으로 개방해 미국 27개주 130개교가 이를 사용 중이다. 저커버그는 지난해 11월 페루 리마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연설에서 전 세계 10억 명의 학생에게 개인화 교육을 제공하고 싶다는 포부를 밝혔다.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도 이러한 저커버그의 도전을 지지했다. 그는 지난해 여름 시애틀의 서밋 시에라 공립학교를 방문한 뒤 자신의 블로그인 ‘게이츠 노트’에서 “학생들은 더 이상 수동적으로 앉아서 선생님의 강의를 듣는 게 아니라 자신의 배움에 깊이 관여하고 있다”면서 “내가 학교에 다닐 때 저런 시스템이 있었다면 좋았겠다”고 썼다.

“2025년 이후를 대비하는 커리큘럼”

지난해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문을 연 스티브 잡스 스쿨 아프리카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는 모리스 혼드 CEO. 그는 스티브 잡스의 창조 정신을 이어받아 학교를 건립했다. [사진 스티브 잡스 스쿨]

지난해 남아프리카 요하네스버그에서 문을 연 스티브 잡스 스쿨 아프리카에서 학생들과 함께 있는 모리스 혼드CEO. 그는 스티브 잡스의 창조 정신을 이어받아 학교를 건립했다. [사진 스티브 잡스 스쿨]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2013년 건립된 스티브 잡스 스쿨도 초등 미래 학교의 모델로 유명하다. 학급은 최대 세 살 차가 나는 혼합연령으로 구성한다. 같은 반 친구들은 아침·점심·종례 때만 만난다. 모든 학생에게는 코치가 배정돼 배움이 필요한 순간마다 적절한 전문 교사를 연결해 준다. 교사는 학생의 흥미와 적성, 부모의 요구와 학교의 교육 목표를 반영해 6주마다 개인별 교육 계획안을 제공한다.

학생들은 하루 중 가장 오랜 시간을 개인 작업(오전 10시~오후 2시30분)에 쓴다. 개인 학습이나 프로젝트가 끝나면 반으로 돌아와 30분간 노래나 토론, 게임 등의 그룹활동을 한다. 오후 3시면 일과가 끝나지만 언제건 아이패드로 ‘가상 학교’에 접속해 공부할 수 있다. 물론 종이나 공책, 책과 같은 전통적인 교구도 사용한다.

모리스 혼드 스티브 잡스 스쿨 CEO는 지난해 노르웨이에서 열린 에드테크 콘퍼런스에서 “구글·위키피디아·페이스북·유튜브와 스마트폰의 세상에서 2025년 이후의 미래에 대비할 수 있도록 커리큘럼을 완전히 바꿨다”고 말했다. 그는 “나이로 묶어 가르치는 일반 학교에선 누구는 앞서 나가고 누군가는 뒤처지지만 우리 학교에선 각자의 속도에 맞게 배우기 때문에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다”고 강조했다.

이경희 기자 dungl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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