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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조8000억 사기' 전주엽, 징역 25년…살인범급 '중형'

중앙일보

입력

허위 매출서류를 꾸며 1조8000억원에 이르는 대출금을 빼돌리고 외국으로 도주했던 통신장비업체 대표 전주엽(51)씨에게 징역 25년형이 확정됐다. 사기죄로는 역대 최고의 중형이다. 일반적인 살인죄 형량보다 높은 수준이다.

허위 매출채권 담보로 15개 은행서 사기 대출 #외국 도주해 호화생활…미회수금액만 2800억 #사기죄 역대 최고 형량…악질 금융범 중형 추세

대법원 1부(주심 이기택 대법관)는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 등에 관한 법률 위반(사기) 등의 혐의로 기소된 전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28일 밝혔다.

성공한 사업가 행세 재력 과시

전씨는 자신이 설립한 휴대전화 관련 기기 납품업체가 KT ENS에 휴대폰 등을 납품한 것으로 허위 매출채권을 꾸민 뒤 이를 담보로 은행에서 대출을 받아 가로챈 혐의를 받고 있다. 전씨가 받은 대출금은 2008년부터 2014년까지 15개 금융기관에서 1조7900여억원에 달했다. 전씨는 KT ENS 직원 김모(45)씨에게 허위 매출 세금계산서를 발급해달라는 청탁과 함께 법인카드를 제공하는 등 8000여만원의 금품을 제공하기도 했다.

전씨는 성공한 사업가로 행세하며 재력을 과시했다. 그는 시계 매니어들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 활동하며 수시로 1억원이 넘는 초고가 시계를 자랑했다. 사업상 알게 된 주변 사람들을 모아 '한국스마트산업협회'란 단체를 만들었다. 이 단체는 전씨의 범행 규모를 키우는 데 이용됐다.

전주엽씨가 해외로 도피하기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랑삼아 올린 명품 시계. [중앙포토]

전주엽씨가 해외로 도피하기 전 온라인 커뮤니티에 자랑삼아 올린 명품 시계. [중앙포토]

경찰의 수사가 시작되자 전씨는 2014년 2월 남태평양의 작은 섬나라 바누아투로 도망쳤다가 이듬해 11월 현지 수사 당국에 체포돼 국내로 송환됐다. 조사 결과 전씨가 돌려막기 식으로 대출금을 갚다가 결국 상환하지 못한 금액은 2894억원으로 집계됐다. 그는 빼돌린 돈으로 120억여원을 도박자금과 고급 승용차 구입 등에 썼다. 또 인구가 27만여 명에 불과한 바누아투에서 고급 단독주택에 거주하며 호화 생활을 즐긴 것으로 드러났다.

살인범 맞먹는 중형 이례적 선고

1심 법원은 지난해 9월 전씨에게 징역 25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전씨는 유례가 없는 막대한 범죄를 저지르고도 범행을 진심으로 반성하지 않아 엄벌에 처할 필요가 있다”고 중형을 선고한 이유를 밝혔다. 2심과 대법원도 원심의 판단을 그대로 받아들였다.

전씨에게 내려진 형량은 특경법상 사기죄를 적용한 사건 중 역대 최고다. 강남역 묻지마 살인사건(징역 27년)이나 경주 다방 여종업원 살해․유기 사건(징역 25년) 등 극악범죄자에 대한 형량에 맞먹는다. 특경법상 피해금액 300억원 이상의 사기죄는 최고 징역 45년까지 선고 가능한 중죄다. 양형위의 권고 기준은 징역 11년~45년으로 정하고 있지만 징역 20년 이상이 선고된 예는 극히 드물다.

3조원대 대출 사기를 일으킨 가전업체 모뉴엘의 대표 박홍석(55)씨의 경우 1심에서 징역 23년이 선고됐지만 2심에서 징역 15년으로 감형되고 지난해 10월 형이 확정됐다. 특경법상 사기 등의 혐의가 적용됐던 보이스피싱 조직의 총책에 대해 지난해 12월 법원이 징역 20년을 선고한 게 최근 들어 가장 형량이 높은 사건이었다. 대법원 관계자는 “대형 사기범죄는 다수의 피해자를 양산하고, 특히 서민에게 피해가 가중된다는 점에서 무겁게 처벌하는 추세”라고 말했다.

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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