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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가족의 탄생] "가슴으로 낳은 아이들" 장애 아동 열 아홉 거둔 베이비박스 목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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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일보의 디지털 광장 시민마이크는 디지털 다큐멘터리 『新가족의 탄생: 당신의 가족은 누구입니까』를 연재합니다. 이 땅에 가족의 이름으로 살고 있는 이웃의 이야기를 그들의 목소리로 전합니다. 마지막 이야기는 19명의 장애아를 키우고 있는 베이비박스 이종락 목사입니다.
 시민마이크 특별취재팀=김현예·이유정 기자, 조민아 멀티미디어 제작, 정유정 인턴기자(고려대 미디어학부 3년) peoplemic@peoplemic.com

   1막, 가족의 탄생

  '베이비박스 목사'의 가족 이야기
  저는 서울 난곡동 베이비박스를 운영하고 있는 이종락 목사입니다. 베이비박스는 부모가 키울 수 없어 포기하는 신생아들이 길거리에 방치되지 않도록 2009년 12월 만들게 됐습니다.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아이들은 절차에 따라 보육원에 가거나 입양을 갑니다. 지금까지 약 1160명의 아이들이 베이비박스에 들어왔습니다.

2011년 10월 서울 난곡동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설치된 '베이비 박스'를 설명하는 이종락 목사. [중앙포토]

2011년 10월 서울 난곡동 주사랑공동체 교회에 설치된'베이비 박스'를 설명하는 이종락 목사. [중앙포토]

  오늘은 저의 가족 이야기를 해볼까 합니다. 제게도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아들ㆍ딸 열 아홉 명이 있습니다. 이중 두 명은 아내가 배 아파 낳았고 아홉 명은 입양했습니다. 나머지 여덟은 후견인으로 지정됐거나 가정 위탁을 받아 키우고 있죠. 아는 분을 통해 맡은 아이도 있고 베이비박스를 통해 만난 아이도 있어요. 아이들 모두 다운증후군, 뇌성마비 등 경증에서 중증까지 장애가 있습니다. 시설에 보내면 상태가 더 악화될 것 같아 제가 품기로 한 아이들입니다. 멀쩡한 아이를 입양하는 것도 어렵다고들 하죠. 저라고 처음부터 쉬웠던 건 아닙니다. 지금으로부터 18년 전, 우연한 계기로 한 아이를 만나게 됐습니다.

  제 둘째 아이는 선천적으로 전신마비를 안고 태어났습니다. 어느 날 병원에서 치료를 받는데 한 할머니가 말을 걸어왔습니다. 같은 병실을 쓰는 여자 아이의 할머니였죠.

  제가 늙고 힘들어서 도저히 외손녀를 돌볼 수가 없어요. 아저씨가 아들을 돌보는 걸 보니 손녀를 맡길 사람을 찾은 것 같아요. 아이를 맡아주실 수는 없을까요.”

  아이는 금방이라도 꺼질 듯 미약한 등불 같은 아이였습니다. 의료 사고로 뇌 손상이 왔다고 했습니다. 그때만 해도 눈ㆍ코ㆍ입을 비롯해 혈관에도 호스를 끼고 있었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의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이종락 목사를 만났다. 사진 조민아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의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이종락 목사를 만났다. 사진 조민아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생각했습니다. 장애가 있는 자식 하나도 힘든데 남의 자식을 어떻게 거둔단 말인가요. 할머니는 제가 성직자인 걸 아시곤 “아이를 맡아준다면 당신의 그 종교를 믿어보겠다”고 하셨습니다. 몇날 며칠 저만의 어둠 속에서 고민의 시간을 보냈습니다. 종교인의 길을 걷고 있는 제게 누군가 간절하게 손을 내밀고 있었습니다. 이 또한 운명 같았습니다.

  아이 상태가 좋아져 퇴원할 때가 다가오는데 차마 아내에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습니다. 저는 이미 결심을 했지만 아내가 받아들일지는 알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아이가 저희 집에 오기 일주일 전 간신히 입을 뗐습니다. 그런데 아내가 담담하게 “그러자” 더군요. 그 순간 역시 제 아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늘이 정하신 짝이라는 걸 그 순간 깨달았다고 할까요.그렇게 데려온 아이가 지금은 스물 두살, 상희입니다. 장애가 있어도 누구보다 밝고 호기심 많은 아이로 자랐답니다.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의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이종락 목사를 만났다. 사진 조민아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의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이종락 목사를 만났다. 사진 조민아

  2막, 우리 가족의 오늘

그 이후로 저희 부부는 중증 장애가 있는 아이를 하나 둘 입양했습니다. 오갈 곳 없는 장애아들이 흘러 흘러 모여 들었죠. 한나도 그 중 한 명이에요. 11년 전, 한 복지사가 전화를 걸어 왔습니다. 열 네살 짜리가 방금 아이를 낳았는데 선천적으로 무뇌였어요. 스스로 먹고 호흡하는 것이 불가능한 아이였죠. “얼마 못 살 아이인데 천국 갈 때까지만 목사님이 돌봐주시라”는 부탁이었죠. 그 아이 저희 집에서 6년을 살다가 갔어요. 한나를 떠나 보내면서 '이 아이들을 위해 헌신하다가 죽어야겠다' 결심을 하게 됐죠.

  그 때부터 입양을 추진한 결과 아홉 명의 아들 딸을 얻게 됐답니다. 제가 봉사자로서 해줄 수 있는 것과 아이들의 부모가 되는 것은 차원이 다르거든요. 현재 서울 시흥동의 교회 겸 자택에서 두살배기 막내부터 전신마비로 침대에 누워있는 서른 한 살 아이까지 열 아홉 명의 아이들이 저희 부부와 살고 있어요. 아이들이 많다 보니 사춘기가 오기도 하고 반항을 하기도 하고 별의별 일이 다 있답니다. 어떨 땐 혼내기도 하고 안아주기도 하고 평범한 가정처럼 복닥거리며 아이들을 키우고 있죠. 한 가지, 아이들이 모두 특별하다 보니 저희 부부가 전부 돌보긴 어려워서 교회 소속 봉사자 분들이 많이 도와주고 계세요. 식사부터 생활, 공부까지 이분들과 함께 키워가고 있답니다.

  생각 같아선 최대한 많은 장애아를 입양하고 싶은데 현실은 그렇지가 못 해요. 아이를 입양하기 위해선 법원의 허가가 필요한데 절차가 복잡하고 까다롭거든요. 법원 입장도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가끔 입양 신청자를 취조하듯 대하는 일부 판사님들을 만나면 상처를 받곤 합니다. 입양이 결정되면 당사자가 그 아이의 부모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런데 '왜 입양하려고 하시냐' '특별한 다른 이유가 있느냐' 죄인 다루듯 느껴질 때가 있어요. 정부가 보듬지 못 하는 아이들을 품겠다고 나선 사람들인데도요. 저는 열 다섯 명의 아이를 입양 신청했지만 결국 아홉 명만 받아 들여졌습니다. 나머지 아이들은 왜 받아들여지지 않았는지 이렇다할 설명도 없었어요. 나머지 아이들은 후견인을 지정하거나 가정 위탁을 통해 돌보는 실정이에요.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이종락 목사가 아들 생명이(11)의 손을 잡고 있다. 사진 조민아

지난달 26일 서울 금천구 시흥동 주사랑공동체 교회에서 이종락 목사가 아들 생명이(11)의 손을 잡고 있다. 사진 조민아

3막, 내일

  장애아동 입양 활성화 됐으면…가족은 '행복'
  저는 한국에도 장애아 입양이 늘었으면 좋겠어요. 미국의 경우 선택 입양이 아니고 기관에서 아이를 배정해주는대로 받아들여요. 한국 사람들은 아이에게 작은 흠이 있어도 '다른 아이를 달라'고 하죠. 저는 장애아를 입양하더라도 아이와 부모가 행복할 수 있다는 걸 저 스스로가 보여주고 싶었어요. 장애인도 공동 시설보다는 가정 안에서 행복을 찾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이런 가정이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정부의 지원 등 관련 정책도 개선될 것 같고요.

지난 2014년 서울 난곡동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한 아이를 위해 이종락 목사가 기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지난 2014년 서울 난곡동 베이비박스에 들어온 한 아이를 위해 이종락 목사가 기도하고 있다. [중앙포토]

  저에게 가족이란 핏줄이 아닌 하나의 공동체예요. 우리 집에서 살고 있는 열 아홉 명의 아이들 모두 가족이에요. 서로를 의지하고 믿어주면서 하루하루 작은 행복을 찾고 있어요. 누구에겐 친아빠이고, 누구는 후견인이고 구분 짓는 것은 의미가 없어요.

  제게 마지막 바람이 있다면 제 아이들이 사회에서도 어엿한 구성원으로 행복을 찾았으면 하는 것이랍니다. 아이들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존재가 되길 원해요. 저희 부부의 고민은 항상 이 아이들이 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이 무엇일까를 찾는 것이에요. 미술·음악치료, 작업치료와 언어치료 등 최대한 다양한 경험을 기회 닿는대로 제공하는 것도 그 때문이랍니다. 아이들이 느리지만 조금씩 성장해 가고 언젠가 남을 도울 수 있는 존재가 된다면…. 생각만으로도 그런 기쁨은 없을 것 같아요. 그런 의미에서 가족은 저에게 생각만으로도 행복을 주는 존재랍니다. 여러분에게 가족은 어떤 의미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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