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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스타, 거기 어디?]문짝 하나로 SNS스타된 망원동 카페 '자판기'

중앙일보

입력

예상을 깨는 반전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상에서도 먹힌다. 서울 망원동 카페 '자판기'는 이런 반전 매력으로 최근 인스타그램(이하 인스타)에서 뜬 곳이다.
6월 9일 문을 연 이 카페는 영업을 시작한지 이제 겨우 2주 즈음 지났을 뿐인데 벌써 인스타에 수많은 사진이 올라온다. 가히 폭발적이라 해도 무리가 아닐 정도다. ‘#자판기’란 해시태그가 달린 게시물 1800개 대부분이 진짜 자판기가 아니라 바로 이곳 사진이다.

최근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라오는 핑크색 자판기. 망원동에 있는 카페 '자판기'의 모습이다. 사진 촬영하는 사람이 많아 '사진 찍는 줄 만들어야 할 판'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최근 인스타그램에 많이 올라오는 핑크색 자판기. 망원동에 있는 카페 '자판기'의 모습이다. 사진 촬영하는 사람이 많아 '사진 찍는 줄 만들어야 할 판'이라는 글과 함께 사진을 올렸다. [사진 인스타그램 캡처]

사진에 등장하는 건 회색 콘크리트 벽에 덩그러니 놓여진 핑크색 자판기다. 눈에 확 들어올만큼 예쁜 핑크색의 자판기 자체도 특이하거니와, ‘자판기’라는 이름을 붙인 카페라는 사실도 흥미를 끈다. 자판기 음료를 파는 카페일까. 그럴 리가. 그렇다면 대체 이곳의 정체는 뭘까.

회색 벽에 자판기와 창문이 보인다. 문은 대체 어디 있는 거지?

회색 벽에 자판기와 창문이 보인다. 문은 대체 어디 있는 거지?

지난 6월 22일 오후 4시쯤 직접 찾아가봤다. 택시를 타고 일단 망원시장에서 내렸다. 망원1동 동사무소쪽으로 나있는 망원시장 입구를 뒤로 하고 오른쪽으로 몇 걸음 걷자 인스타에서 본 핑크색 자판기가 나타났다.
분명 카페라고 했는데 이상하게 아무 간판도 없다. 아니, 심지어 문도 없다. 회색 벽에 핑크색 자판기가 하나, 그 옆에 있는 큼직한 창문 하나가 전부다. 그런데 창문 안을 들여다 보니 20~30대로 보이는 젊은 손님들이 벽 안쪽 공간을 가득 메우고 있다. 입구가 없는데 대체 이 사람들은 어떻게 들어간 걸까.

핑크색 자판기가  카페의 문. 자판기를 열고 사람들이 드나든다. 

핑크색 자판기가 카페의 문. 자판기를 열고 사람들이 드나든다.

바로 여기에 이 카페만의 반전 포인트가 있다. 사진에 수없이 올라온 핑크색 자판기의 정체는 바로 카페로 들어가는 ‘문’이었다. 자판기 손잡이를 당기면 마치 비밀의 문처럼 자판기가 앞으로 스르륵 당겨지며 카페 안으로 들어가는 입구가 나온다.

이 카페를 찾은 사람은 우선 카페 밖에서 긴 시간을 머문다. 카페로 들어가기 전에 먼저 자판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위해서다. 이날도 카페 밖 자판기 앞에서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이 줄을 서 기다렸다. 문 옆에서 가만히 서서 포즈를 취하기도 하고 문을 열고 나오는 모습을 서로 찍어주기도 했다. 오후인데도 햇볕이 잘 드는 자리인 데다 회색 벽과 자판기의 핑크색이 조화를 이뤄 셔터를 대강 누르기만해도 그림처럼 사진이 잘 나왔다.

자판기에서 사진을 찍는 여성들. 이 앞엔 하루종일 사진 찍는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자판기에서 사진을 찍는 여성들. 이 앞엔 하루종일 사진 찍는 사람들로 바글거린다.

카페의 마스코트 '자판이'. 반려견을 데려오는 손님이 많아 야외 공간에 강아지 모양의 오브제를 놔뒀다. 자판이 위쪽의 물 그릇은 목마른 반려견을 위해 준비했다. 

카페의 마스코트 '자판이'. 반려견을 데려오는 손님이 많아 야외 공간에 강아지 모양의 오브제를 놔뒀다. 자판이 위쪽의 물 그릇은 목마른 반려견을 위해 준비했다.

자판기 카페는 커피·밀크티 등 음료와 케이크를 파는 디저트 카페다. 월드 수퍼 바리스타 챔피온십(WSBC)에서 수상한 실력파 바리스타 홍기호(32)씨와 육관영(36)씨가 함께 만들었다. 두 사람 다 10년 이상 경력의 베테랑 바리스타로, 특히 홍씨는 초콜릿으로 유명한 디저트 카페 코코브루니 오픈 멤버이기도 하다. 친한 형·아우 사이로 지내며 언젠간 둘이 함께 '멋진 카페'를 해보자고 결의했던 두 사람은 2017년 드디어 그 꿈을 이뤘다.

자판기 카페 홍기호 사장이 문을 살짝 열었다.

자판기 카페 홍기호 사장이 문을 살짝 열었다.

두 사람이 생각한 카페의 컨셉트는 처음부터 '반전'과 '재미'였다. 시작은 틴 케이스(스테인레스로 만든 깡통)에 담긴 케이크다. “처음엔 유리 단지에 담긴 케이크를 만들어 내놓으려고 했는데 안이 들여다 보이는 게 재미가 없었어요. 불투명한 틴 케이스로 안이 안 보이게 만들면 손님들이 대체 이게 아이스크림인지, 케이크인지 궁금해할 것 같고, 그 자체가 재미있겠다고 생각했죠. ”(홍 대표)

자판기 카페의 훈남 홍기호 사장. 

자판기 카페의 훈남 홍기호 사장.

가게 이름 ‘자판기’는 케이크 깡통이 자판기에서 뽑아먹는 캔 음료랑 비슷해 보여 ‘케이크를 뽑아먹는 자판기’란 의미로 지었다. 이곳을 유명하게 만든 자판기 문 역시 이름을 어떻게 재미있게 보여줄까 고민하다 두 사람 머리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카페 안. 테이블 없이 중앙 화단에 앉아 차와 케이크를 즐기고 있다.

카페 안. 테이블 없이 중앙 화단에 앉아 차와 케이크를 즐기고 있다.

자판기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면 또 다른 세상이 나온다. 순간 머리 속에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가 떠올랐다. 자기 몸보다 작은 문을 통과하면 이상한 나라로 들어가는 앨리스의 기분이 바로 이럴 것 같다. 카페 안은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게 마감한 회색 공간 중앙에 초록색 나무가 무성하게 심어져 있는 화단이 나온다. 여느 카페에 있는 테이블은 흔적을 찾을 수 없고 대신 흰색 타일을 붙여놓은 화단과 벽을 따라 만들어 놓은 붙박이 의자가 전부다. 사람들은 이 화단과 의자 주위에 자유롭게 모여 앉아 밀크티와 케이크를 먹는다.

자판기 카페 안에 있는 핑크색 냉장고. 

자판기 카페 안에 있는 핑크색 냉장고.

밀크티는 주문 후 손님이 냉장고에서 직접 꺼내가야 한다. 

밀크티는 주문 후 손님이 냉장고에서 직접 꺼내가야 한다.

테이블을 놓지 않은 데는 이유가 있다. 카페를 찾은 사람들이 서로 어울렸으면 좋겠다는 바람에서다. 홍 대표는 “몇 년 전 경리단길의 장진우 식당에 처음 갔을 때 긴 테이블에 모르는 사람들이 같이 앉아 식사를 하는 모습이 새로웠다"며 " 낯선 사람들과 자연스럽게 어울릴 수 있는 공간이 멋지다고 생각해 아예 테이블을 없애기로 했다”고 말했다.

자판기 카페의 대표 메뉴. 자스민티로 만든 냉침 밀크티와 멜론으로 만든 틴 케이크. 매일 아침 그날 판매할 밀크티와 케이크를 새로 만든다고.

자판기 카페의 대표 메뉴. 자스민티로 만든 냉침 밀크티와 멜론으로 만든 틴 케이크. 매일 아침 그날 판매할 밀크티와 케이크를 새로 만든다고.

선보이는 메뉴는 단출하다. 저온에서 24시간 우려낸 냉침 밀크티와 커피, 그날그날 맛이 좋은 제철 과일을 사용한 틴 케이크 5종류가 전부다. 메뉴는 적지만 맛은 풍부하다. 베테랑 바리스타가 만드는 커피도 물론 맛있지만 이곳에선 매일 아침 전날 숙성시킨 홍차로 만들어 내는 신선한 밀크티를 추천한다. 허브 향 강한 자스민티를 베이스로 한 자스민 밀크티(5500원)와 검은콩을 갈아 만든 블랙 빈 소이 밀크 티(6000원)가 인기다.

자판기 카페의 틴 케이크들. 케이크 시트와 커스터드 크림에 그때그때 가장 달고 맛있는 제철 과일을 사용해 만든다. 

자판기 카페의 틴 케이크들. 케이크 시트와 커스터드 크림에 그때그때 가장 달고 맛있는 제철 과일을 사용해 만든다.

카페 안에서 자판기 문을 통해 본 풍경. 자판기를 통과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카페 안에서 자판기 문을 통해 본 풍경. 자판기를 통과하면 다시 현실로 돌아간다.

글·사진=윤경희 기자 anni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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