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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과 소녀의 ‘픽미’는 달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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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8면

양성희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양성희문화부장

양성희문화부장

‘국민 프로듀서’란 신조어를 탄생시키며 인기를 끈 Mnet ‘프로듀스101’(이하 프듀)이 막을 내렸다. 101명의 연습생들이 매번 경연을 벌이고 시청자 문자투표로 살아남은 최종 11명이 아이돌로 데뷔하는 과정을 담은 프로그램이다. 지난해 걸그룹 프로젝트인 시즌1에 이어 이번 시즌2에서는 ‘워너원’이라는 보이밴드가 탄생했다. 최종 11인은 물론이고 탈락자들까지 스타덤에 오르는 기염을 토했다.

인기리에 막 내린 아이돌 서바이벌 ‘프로듀스101’ #입시지옥 닮은 경쟁사회 축소판 … 한국사회 투영

‘프듀’는 지난해 시즌1의 출발 때부터 비판이 많았다. 101명을 성적순으로 줄 세우고 아래 등수부터 탈락시켜 가는 방식이 너무 불편하다는 지적이 나왔다. 하필이면 교복을 입은 10대 소년·소녀들을 링 위에 올려놓고 ‘품평’하며 점수를 매겼다. 능력을 판정받는 것이 경연 프로라지만 ‘능력=계급’을 너무도 노골화했다. 첫회 테스트에서 A~F조로 판정받으면 입는 옷 색깔부터 달라지고, 합격자들이 앉는 의자도 피라미드형으로 배치됐다. 그 자체가 서바이벌 수직사회의 축소판인 셈이다.

거기에 스토리텔링을 위한 일명 ‘악마의 편집’, 방송 분량의 편중 등 공정성 논란도 이어졌다. 이번 시즌에는 최종 투표일에도 공정성 논란이 나왔다. 일부 탈락 예상 후보에 대한 중간발표가 몰표로 이어져 경연 내내 합격권에 있었던 유력 후보들이 낙마한 것이다. 또 합숙 과정 등에서 거대 방송사로부터 연습생이라는 사회적 약자를 보호해 줄 장치가 전무하다는 지적도 있다.

이러한 문제점에도 불구하고 프로그램은 폭발적인 인기를 끌었고(누군가는 ‘MSG급 길티 플레저’라고 표현했다), 팬들은 마치 자기 자식을 키우듯이 자신이 좋아하는 연습생들을 지지하면서 그들의 성장과 생존을 바랐다. 사실 이번 시즌2에서 가장 흥미로운 것은 일명 ‘양육자 팬덤’이라 불리는 새로운 팬덤이 극치에 달했다는 점이다.

팬들은 주변의 투표를 독려할 뿐만 아니라 지하철이나 버스에 응원광고를 내기도 했다. 또 투표 단계마다 11픽, 2픽, 1픽으로 찍는 후보 수가 달라졌는데 단계별로 각종 스킬이 동원되기도 했다. 경쟁 후보를 견제하기 위해 엉뚱한 후보에게 표를 던져 표를 분산시키는 ‘견제픽’ 같은 전략투표도 등장했다. 최종회에서 유력 연습생이 탈락한 것에 대해서도, 중간발표라는 돌발 변수를 감안하지 못한 팬덤의 대응 부재라는 패인 분석까지 나왔다. 각종 인터넷 커뮤니티를 기점으로 팬덤이 마치 선거캠프처럼 움직였단 얘기다.

‘양육자 팬덤’의 출현은 아이돌의 역사에서 god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H.O.T나 젝스키스와 달리 ‘god의 육아일기’라는 TV 리얼리티 프로그램으로 알려진 god는 거리감 없이 편안하고 친근한 이미지를 선보였고, 이는 신비롭게 추앙하기보다는 이웃집 형·동생 같은 이들을 지지하는 ‘후원자 팬덤’으로 이어졌다. 그러나 ‘프듀’의 양육자 팬덤은 초기 god의 후원자 팬덤과는 큰 차이가 있다. ‘프듀’의 양육자 팬덤은 마치 자녀의 성적이 오르거나 사회적으로 성공하면 그를 통해 대리만족하는, 때로는 극성스러울 정도로 자녀 양육에 헌신하는 열혈 부모의 심경을 닮았다.

출연자인 연습생은 입시를 준비하는 학생, 매회 경연은 시험, 경연 결과는 성적 등수, 최종 11인 아이돌 데뷔는 대입 합격을 은유하는 모양새다. 연습생들은 눈물을 흘리며 “응원해 준 국민 프로듀서님께 보답하고 싶다. 꼭 데뷔하고 싶다”라고 말한다. 현실 속에서도 서바이벌 경쟁에 지친 대중들이 가상의 경쟁에 몰두하면서 다시 승패를 맛보는 이중의 ‘서바이벌 게임’이 ‘프듀’ 인 셈이다.

개인적으로는 시즌1, 2 공히 ‘프듀’의 주제곡인 ‘픽미’의 남녀 변주에 눈길이 갔다. 똑같이 나를 뽑아 달라고 생존을 갈구하는 ‘픽미’ 송인데, 시즌1 걸그룹 ‘픽미’의 가사는 ‘픽미 픽미/ 캔 유 필미/ 나를 느껴 봐~나를 꼭 안아줘~아이 원츄 픽미 업’인데 반해 시즌2 보이그룹 ‘나야 나(픽미)’는 ‘오늘밤 주인공은 나야 나/ 니 맘을 훔칠 사람 나야 나~ 픽미 픽미 픽미 업’이다. 똑같이 나를 뽑아달라면서도 소녀들은 스스로를 대상화하고 소년들은 스스로 주체가 된다. 한국 사회 걸그룹과 보이그룹은 이만큼 다르다는 얘기다.

양성희 문화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