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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드래곤 USB가 불러온 음반 논쟁…어디까지 음악일까

중앙일보

입력

지난 8일 디지털 음원으로 선발매된 지드래곤 솔로앨범 '권지용'. [사진 지드래곤 인스타그램]

지난 8일 디지털 음원으로 선발매된 지드래곤 솔로앨범 '권지용'. [사진 지드래곤 인스타그램]

19일 정식 유통이 시작된 빅뱅 지드래곤의 솔로 앨범 ‘권지용’을 둘러싼 설전이 뜨겁다. 지난 8일 디지털 음원을 선발표해 이미 음원차트 정상에 오르고, 음악방송에서도 1위를 차지했지만 USB를 음반으로 볼 수 있는가 아닌가를 두고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넷플릭스 영화 '옥자'의 극장 개봉을 두고 빚어진 논란에 이은, 디지털 기술 변화가 가져온 충돌의 한 예다. 이번 논쟁이 음악산업 전체에 던지는 화두에 대해 살펴보자.

19일 정식 유통 시작한 '권지용' USB #음콘협 "음반으로 인정 못해" 공식입장 #미국 빌보드 싸이 '강남스타일' 인기에 #유튜브 조회 수도 지수 포함시켜 개편 #음악 관련 새로운 정의 탄생할까 관심

USB, 음반인가 아닌가

지드래곤은 이를 음반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자 SNS를 통해 심경을 밝혔다. [사진 지드래곤 인스타그램]

지드래곤은 이를 음반으로 인정할 것인가를 두고 논란이 일자 SNS를 통해 심경을 밝혔다. [사진 지드래곤 인스타그램]

USB 형태로 음악을 발표한 것이 처음은 아니다. 2008년 샌디스크는 소니ㆍ유니버설 등 음반사와 손잡고 마이크로 SD카드에 음원을 담은 ‘슬롯앨범’을 판매했고, 2009년 일본 여가수 하마사키 아유미는 10집 ‘넥스트 레벨’을 최초로 CD와 USB로 함께 발매했다.
일단 USB를 음반의 형태로 인정할 수 있는가에 대해서는 모두 ‘그렇다’는 입장이다. 저작권법상 음원을 담은 매체와 상관없이 디지털 음원 자체를 음반으로 규정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가온차트를 운영하는 사단법인 한국음악콘텐츠산업협회(음콘협)는 이날 “저작권법상 ‘음반’의 의미와 가온차트 ‘앨범’의 의미는 동일하지 않다”며 “‘권지용’ USB를 저작권법상 전송(다운로드 서비스)이라고 판단했다”고 공식입장을 밝혔다. 현재 가온차트는 디지털(다운로드·스트리밍)·앨범(CD·LP 등 실물 음반)으로 나눠 집계해 '디지털 앨범'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는 상황이다.
그러나 음콘협 측은 “USB로 발매했기 때문에 판매 집계 대상에서 제외되는 것은 아니다”라고 밝혔다. 이달부터 USB 역시 CDㆍ테이프ㆍLP와 마찬가지로 집계 대상에 포함시키고 있는데, ‘권지용’의 경우 음원이 유형물 안에 고정된 것이 아니라 온라인에서 다운로드 받아야 하기 때문이라는 설명이다. 해당 USB는 컴퓨터에서 실행하면 YG가 제작한 사이트로 이동한 뒤 케이스에 담긴 시리얼 번호를 입력해 음원과 뮤직비디오, 사진 등을 내려받는 방식이다.

저작권협회 측은 “USB가 있어야 링크에 도달할 수 있고, 링크 역시 어느 서버에는 고정이 돼 있다”며 “결국 소리는 고정이 되어있는 상태이기 때문에 저작권법 정의를 충족한다”는 입장이다. 스마트 카드 형태로 제작돼 스마트폰이나 컴퓨터에서 앱을 다운로드 받아 음원 등을 보는 방식의 키노 앨범에 대해서도 같은 이유로 음콘협 측은 음반에서 제외, 저작권협회 측은 인정이라는 다른 반응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해 YG 측은 “음악을 담는 방식을 고전적인 형태로 가두는 것과 시대에 맞지 않는 집계 방식은 아쉽다”며 “USB에 음악을 담지 않아 집계가 불가능하다는 가온차트의 입장대로라면 음원 차트 집계 역시 다운로드만 적용하고 스트리밍은 적용하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동영상, 음원인가 아닌가  

미국 빌보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기존 방송과 음반 판매량 위주의 집계 방식을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유튜브 조회 수 등으로 확장시켰다. [중앙포토]

미국 빌보드는 싸이의 '강남스타일'이 유튜브를 중심으로 폭발적인 인기를 끌자 기존 방송과 음반 판매량 위주의 집계 방식을 스트리밍과 다운로드, 유튜브 조회 수 등으로 확장시켰다. [중앙포토]

사실 이같은 논란은 새로운 매체가 탄생할 때마다 있어왔다. 길거리 노점상에서 흘러나오는 노래가 곧 유행곡의 지표였던 1990년대에는 카세트 테이프가 음반 산업의 핵심이었고, 2000년 조성모가 2.5집 ‘가시나무’와 3집 ‘아시나요’로 한 해 동안 350만장의 판매고를 올릴 때는 테이프와 CD가 혼재한 시대였다. 주요 음반사와 음원사이트를 총괄한 집계는 2010년 2월 가온차트 출범 이후부터 가능해졌으니 이제 만 7년밖에 안된 셈이다.

이는 음반 산업 변화에 따른 필연적인 변화이기도 하다. 미국 빌보드는 2012년 유튜브에서 돌풍을 일으킨 싸이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를 두고 이를 차트 지수에 포함시켜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에 빠진 적이 있다. 결국 빌보드는 단계적 변화를 택했다. 기존 앨범 판매량과 방송 횟수에 스트리밍과 다운로드를 추가했고, 이듬해 유튜브 조회 수까지 그 범위를 확장시켰다.

실시간 재생이 가능한 환경은 음악을 다운로드해서 듣는 것에서 스트리밍으로 보는 것으로 그 개념 자체를 바꿔놓았다. 음악을 보고 싶어하는 이들에게는 고품질의 음악을 구비한 음원사이트보다 ‘프로듀스 101’ 멤버 수에 맞춰 개인별 직캠을 촬영해 공급하는 네이버TV가 더 나은 플랫폼일 수 있는 상황이다. 서정민갑 음악평론가는 “이미 음악은 멜로디와 사운드의 조합으로 소비되는 콘텐트가 아니다”라며 “음악을 담는 형식의 변화로 인해 본질도 바뀌어가고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음악 차트도 현실을 반영할 수 있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굿즈, 음악인가 아닌가  

YG 측은 "잉크 번짐 현상은 의도한 콘셉트"라며 "빈티지한 느낌을 위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 YG엔터테인먼트]

YG 측은 "잉크 번짐 현상은 의도한 콘셉트"라며 "빈티지한 느낌을 위해 일일이 수작업으로 진행했다"고 밝혔다. [사진 YG엔터테인먼트]

디지털 기술 발전에 따라 음악 소비 플랫폼은 날로 다양해지고 있다. 아이폰과 아이패드 사용자는 아이튠즈에서, 디지털 환경에서 개별 음원이 아니라 음반 단위로 소장하고 싶은 사람은 바이닐에서, 음악을 SNS처럼 공유하고픈 사람은 사운드클라우드에서 음악을 듣는 상황이다.

이렇게 디지털 음원을 다양한 플랫폼으로 소비하게 되면서 각 음원을 모아놓은 앨범이 굿즈 성격을 띄게 된 것도 큰 변화다. 가령 정규 1집 ‘XOXO’부터 3집 ‘이그잭트’에 이르기까지 트리플 밀리언셀러를 기록한 '음반 강자' 엑소도 굿즈 성격이 강한 리패키지 앨범 없이는 기록을 낼 수 없었다는 지적이다. 디지털음악 환경이라는 세계적 트렌드 속에서도 가온차트에 따르면 국내 연간 음반 판매량은 2012년 720만장에서 지난해 1080만장으로 증가하고 있는 상태다.

웹진 ‘아이돌로지’ 미묘 편집장은 “아이돌 음반의 영수증은 곧 팬사인회 응모권에 해당한다. 인기 아이돌의 경우 50장을 사도 입장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며 “한국 음악산업 인프라에 비해 높은 음반 판매량은 바로 이 덕분”이라고 분석했다. 이어 “이미 레코드페어에 가서 LP판을 사면 USB를 끼워주는 상황에서 음반으로 인정 여부를 두고 논란이 생기는 것 자체가 구시대적”이라며 “오히려 해당 굿즈가 3만7000원이라는 비싼 가격에 부합하지 못하는 콘텐트를 담고 있는 것이 논란의 핵심이 돼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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