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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카가 나서야 한다” … 중국 노동 운동가의 절규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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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카 트럼프가 나서야 합니다. 이방카는 중국 노동자들이 직면한 많은 문제,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과 분명한 관계가 있으니까요.”

이방카 브랜드 제품 만드는 중국 공장서 노동 착취 #실태 조사하던 노동운동가 3명 중국 공안에 체포되자 #중국 저명 노동운동가 리창 "이방카가 직접 나서라" 비판

비정부기구 ‘중국노동감시’(China Labor Watchㆍ이하 CLW)를 설립한 리창 사무총장이 최근 블룸버그와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맏딸이자 백악관 보좌관인 이방카 트럼프를 강하게 비판했다.

이방카 트럼프 [AP=연합뉴스]

이방카 트럼프 [AP=연합뉴스]

중국 노동운동가로 이름난 리창이 이방카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고 나선 데는 이유가 있다. 지난달 이방카 소유 브랜드의 구두 등을 생산하는 중국 하도급 공장에서 노동 착취 문제를 조사하던 CLW 소속 노동운동가들이 중국 정부에 구금됐기 때문이다.

사건이 알려진 건 지난달 30일(현지시간). 뉴욕타임스(NYT) 등 미국 언론은 “구두 등 이방카 소유 상표의 상품을 만드는 중국 내 공장들에서 노동 착취 실태를 조사하던 노동운동가 1명이 구금되고 2명이 실종됐다”고 보도했다.

추후 실종된 2명 또한 중국 당국에 의해 구금된 것으로 밝혀졌다. 모두 미국 뉴욕에 본부를 둔 CLW 소속 활동가였다. 이들은 중국 남부 간저우와 둥안에 있는 화젠 그룹 공장 2곳의 노동 여건을 면밀히 조사하던 중이었다.

중국 공안 당국이 설명한 구금 이유는 “불법 도청을 했다”는 것. 그러나 리창 사무총장은 “우리 활동가 3명은 그 어떤 불법 도청 장비도 가지고 있지 않았고, 도청을 시도하지도 않았다. 공안 당국의 핑계일 뿐”이라고 강하게 비난했다. 또 “화젠 그룹 공장은 과도한 초과 근무뿐 아니라, 지각하거나 병가를 요구한 근로자에게도 벌금을 부과하는 등 중국에서도 최악의 노동 환경으로 손꼽히는 곳”이라고 지적했다.

CLW의 활동가가 경찰에 체포된 것은 2000년 설립된 후, 17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리창은 블룸버그에 “황망하다. 왜 중국 정부가 이토록 우리를 막고 싶어하는지 이해하기 어렵다”고 토로했다.

미국 국무부도 나서 이들의 석방을 요구했지만, 중국은 이를 거부하고 있다. 화춘잉 외교부 대변인은 지난 6일 “이들이 불법 도청을 통해 기업의 정상적 운영과 생산을 방해했다. 우리 법에 따라 이 사안을 처리할 것”이라며 “그 어떤 국가도 중국의 사법절차에 간섭할 수 없다”고 강한 어조로 말했다.

화젠 그룹 또한 노동 착취가 없었을 뿐더러, 이미 수 개월 전부터 이방카 트럼프 상표의 구두 생산을 중단했다고 밝힌 상황. 중국 언론들도 “CLW가 불법적인 방법으로 왜곡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며 비판하고 나섰다.

20년 넘게 중국 노동 문제 헌신한 리창, “이제 이방카가 나설 때”

1990년대부터 중국에서 노동 운동을 해온 리창은 중국 노동 운동계에서 중요한 인물 중 한 명이다. 그는 중국에서 노동 인권 변호사로 활동 당시 비밀리에 공장의 노동 행태를 조사하고 외국 언론에 이런 사실을 전해주다 공안당국의 체포망이 좁혀오자 미국으로 떠났다.

중국노동감시 홈페이지에 소개된 리창. [사진 해당 홈페이지 캡처]

중국노동감시 홈페이지에 소개된 리창. [사진 해당 홈페이지 캡처]

이후 뉴욕에 CLW를 설립한 그는, 중국 공장으로 활동가를 파견해 근로자들을 인터뷰하고 사진과 영상 등으로 그 현장을 기록해 조사를 해왔다. 아동 노동ㆍ부실한 안전 교육ㆍ과도한 초과 근무ㆍ낮은 임금ㆍ부당한 대우 등을 꼼꼼히 기록하는 것이 활동가들의 일이다.

이렇게 CLW가 조사하는 공장은 1년에 약 30곳. 애플 공급업체 페가트론의 노동 착취 실태를 보고서를 통해 폭로, 개선하도록 이끌고 삼성전자 하도급 공장들의 문제점을 파헤친 것도 이들이다. 이번에도 화젠 그룹의 저임금ㆍ과도한 초과 근무ㆍ미성년 채용 등 광범위한 실태 보고서를 펴낼 계획이었다.

그간 CLW의 성과는 중국 노동 환경을 전 세계에 알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블룸버그는 전문가들의 말을 인용해 “공장의 실태를 면밀히 조사할 수 있는 기구가 존재하고, 이들이 ‘노동 착취에 대한 문제 제기’에 대한 주장을 뒷받침할 근거를 수집하는 것은 노동ㆍ인권 문제에 있어 매우 중요한 일”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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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현재 리창은 모든 프로젝트를 임시로 중단한 상태다. 세 명의 노동운동가들이 체포된 이후, 다른 활동가들이 위험에 빠질 것을 우려해서다. 실제 중국 공안당국의 노동운동가들에 대한 감시는 점점 심해지고 있는 실정이다.

그렇다면 리창은 왜, 중국에서 물건을 생산하는 수많은 기업 중에서도 이방카의 브랜드를 주목하는 것일까.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 드레스 [사진 해당 업체 홈페이지]

이방카 트럼프 브랜드 드레스 [사진 해당 업체 홈페이지]

이방카와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이방카와 트럼프 대통령. [AP=연합뉴스]

그는 “이방카의 행동이 중국의 노동 조건을 변화시킬 수 있고, 그 영향으로 다른 업체들이 운영하는 공장의 노동 환경 또한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백악관의 실세 이방카의 영향력이 미국을 넘어 전 세계에 미치고 있는 만큼, 이방카의 브랜드와 그 하도급 공장이 움직이면 ‘긍정의 나비효과’가 일 것이란 예측이었다.

실제 이방카는 중국 내 공장에서의 노동 착취로 막대한 부를 쌓아올리고 있다는 비난을 여러 번 받아왔다. 아버지인 트럼프는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며 국제 무역 질서까지 뒤흔들고 있지만, 정작 트럼프 일가는 중국인들의 노동을 착취하며 부를 일군다는 비판이었다.

여기에 최근 이방카가 중국에서 건설ㆍ법률 서비스ㆍ통신ㆍ교육ㆍ보험 등 다양한 부문에서 75개 상표권을 보장받은 사실이 알려져 비판은 더욱 뜨거워졌다. 리창이 이방카를 주목한 이유다.

물론 이방카는 아버지의 대통령 취임 후 “모든 사업에서 손을 떼겠다”고 한 후 사업 일선에선 물러난 상태다. 하지만 리창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모든 일을 쥐락펴락 할 수 있는) 이방카가 나서야 한다”며 “그는 이 모든 일을 올바르게 만들 책임이 있다”고 강하게 말한다.

이방카 측은 ‘묵묵부답’으로 일관하고 있다. 리창은 “지난 4월 개인적으로 편지를 보내 ‘중국 내 노동 착취에 대한 조치를 취해달라’고 부탁했지만 아무 답을 받지 못했고, 이번에도 ‘우리 노동운동가들이 풀려날 수 있게 도와달라’는 편지를 보냈지만 역시 답을 받지 못했다”고 말했다. 블룸버그의 입장 표명 요청에도 이방카 측은 어떤 대답도 주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리창은 멈추지 않을 생각이다. 그는 “많은 노동자에게 노동 환경은 생존의 문제이기 때문에, 나는 중국 노동자의 권리를 위해 계속 싸울 것이고 이방카에게도 이를 계속 요구할 것”이라고 블룸버그에 밝혔다.
임주리 기자 ohmaj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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