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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극계 대모 윤소정 떠나다

중앙일보

입력

연극계가 어머니를 잃었다. 고 윤소정의 갑작스런 부음에 연극계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중앙포토]

연극계가 어머니를 잃었다. 고 윤소정의 갑작스런 부음에 연극계가 깊은 슬픔에 빠졌다. [중앙포토]

 한국 연극계가 어머니를 잃었다. 연극계의 대모 고(故) 윤소정의 갑작스런 부음에 연극계가 충격과 함께 깊은 슬픔에 빠졌다.
 한국연극협회는 고 윤소정의 장례를 오는 20일 오전 9시 30분 서울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연극인장으로 엄수된다고 밝혔다. 이날 장례식에서는 배우 길해연씨가 조사를 낭독하고 영결식을 마친 뒤 유족과 연극인이 고인의 영정을 들고 대학로 곳곳을 둘러본다.
 고인은 16일 오후 7시쯤 패혈증으로 별세했다. 73세. 폐렴 증세로 입원 치료를 받던 중 패혈증이 발발해 갑자기 세상을 떠났다. 고인은 TV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는 개성파 배우로 알려졌지만 연극계에선 어머니와 같은 존재였다. 최근에는 연극계 거목인 남편 오현경의 암투병을 간호하면서도 연기활동을 중단하지 않아 주위의 안타까움을 샀다. 후배 배우 정동환은 “갑작스런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며 오열했다.
 “43년 4개월째 알고 지냈다. 이달 초 같이 운동하기로 약속하기도 했다. 16일 오후 무작정 병원을 찾아갔다. 사정사정해서 오후 4시쯤 중환자실에서 고인을 만났다. 의식은 없었지만 손에서 힘이 느껴졌다. 바로 일어날 줄 알았는데 서너 시간 뒤 부음을 들었다.”
 빈소가 마련된 서울성모병원에는 주말 사이 문화계 인사의 조문행렬이 이어졌다. 도종환 문체부 장관을 비롯해 동료 배우 박정자ㆍ신구ㆍ손숙ㆍ사미자ㆍ명계남 등이 빈소를 지켰다. 특히 고인은 2014년 먼저 세상을 떠난 고 김자옥과 각별한 선후배 사이였다.
 동갑내기 배우 손숙은 “무대에서는 빛났고 후배들에게는 따뜻했고 친구한테는 늘 마음을 열었다”고 고인을 기억했고, 같은 극단 출신의 후배 배우 권병길은 “배우로서 질투를 느꼈다. 연극계의 자부심이었다”며 고인을 기렸다. 연극평론가 김미도 서울과학기술대 교수도 “기품 있는 배우이자 엄청나게 노력하는 배우였다”고 추모했다.
 고인은 1944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아버지가 춘사 나운규와 함께 영화 개척기를 이끈 영화감독이자 배우 윤봉춘 선생이었다. 6세에 무용을 배웠고 학창시절 수많은 무용대회에서 수상했다. 데뷔작은 중학교 1학년 때 출연한 아동영화 ‘해바라기 피는 마을’이다.
 64년 동양방송(TBC) 공채 1기 탤런트와 무용수 2개 부문에서 선발됐으나 영화감독 오빠 윤삼육의 권유로 연기자의 길을 걸었다. 66년 김혜자ㆍ선우용녀ㆍ최불암ㆍ박정자ㆍ고 김무생 등과 함께 극단 ‘자유극장’ 창단 맴버로 결합하면서 연극계에 발을 디뎠다. 당시 국립극장(지금의 명동예술극장)에서 공연된 창단 공연 ‘따라지의 향연’은 연극사에서 길이 남는 작품이다.
 고인이 배우로서 주목을 받은 작품은 73년작 ‘초분’이다. ‘초분’에서 고인은 무용가 출신다운 격렬한 움직임으로 높은 평가를 받았다. 고인처럼 몸을 자유로이 쓰는 여배우가 없었던 시절이다. 79년 정동환과 출연한 ‘부도덕행위로 체포된 어느 여인의 증언’으로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수상했다. 고인은 82년작 ‘올페’로 두 번째 동아연극상 여자연기상을 받았다.
 배우 윤소정 하면 떠오르는 작품이 두 개 있다. 83년 10개월간 장기 공연됐던 연극 ‘신의 아그네스’와 97년 상영된 영화 ‘올가미’다. 특히 영화에서 보여준 시어머니 연기는 지금도 기억하는 팬이 많다. 2004년 60세 나이에 딸 오지혜와 함께 출연한 연극 ‘잘 자요, 엄마’와, 고인에게 대한민국연극대상 여자연기상을 안겨준 2010년작 ‘33개의 변주곡’도 대표작으로 꼽힌다. 고인의 마지막 연극무대는 지난해 공연된 ‘어머니’이고, 유작은 현재 방영 중인 TV 드라마 ‘엽기적인 그녀’로 촬영은 모두 끝난 상태다.
 유족으로는 대한민국예술원회원인 남편 오현경, 고인과 같은 소속사 소속인 딸 오지혜, 아들 오세호, 사위 이영은, 며느리 김은정이 있다. 빈소 서울성모병원 장례식장 31호, 발인 20일, 장지는 충남 천안공원묘원.

16일 갑작스런 패혈증으로 별세 20일 대학로에서 연극인장으로 장례 #64년 TBC 탤런트 1기로 시작 연극 영화 드라마에서 종횡무진 활약 #최근에는 암투병 중인 원로배우 남편 오현경 병수발 들며 연기 생활

 손민호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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