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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속으로] 반품한 B급 상품 파는 리퍼브 시장, 4년 새 10배 성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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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5면

온라인 쇼핑 시대 반품족 증가 

직장인 김상희(30)씨는 각종 생활용품부터 의류, 가구에 이르기까지 대부분의 물건을 온라인 쇼핑을 통해 구입한다. 휴지와 세제, 식료품 등 생필품은 대형마트 온라인몰(online mall)을 이용하고, 백화점 온라인몰이나 온라인 쇼핑을 통해 옷을 구입하는 식이다. 5개월 전 이사하면서 들여놓은 가구도 모두 홈쇼핑에서 운영하는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구입했다.

온라인 반품족 늘어 #5명 중 1명 석 달에 한 번 이상 반품 #가전서 의류·생활용품까지 확대 #반품시장 활성화 #올랜드아울렛·리마켓 등 매장 늘려 #올해 1월 매출 규모 1억9500만원 #가성비 좋은 장점 #신제품과 큰 차이 없으나 반값 판매 #알뜰한 예비 신혼부부들도 몰려

김씨는 “평일엔 늦은 시간까지 야근하는 경우가 많고, 주말엔 백화점이나 마트 모두 사람들로 붐벼 주로 온라인 쇼핑을 이용한다. 최근엔 휴대전화만 있어도 대부분의 온라인 쇼핑이 가능해 오프라인 쇼핑을 할 일이 거의 없다”고 말했다.

이런 ‘온라인 쇼핑족’인 김씨가 직접 발품을 들여 쇼핑을 하는 곳이 있다. 리퍼브 매장이다. 리퍼브는 ‘리퍼비시드 프로덕트(refurbished product)’의 줄임말로 제조·유통 과정에서 흠집이 생긴 상품이나 매장 전시 상품, 반품 상품 등을 의미한다. 과거 리퍼브 제품은 TV나 냉장고 등 가전제품과 가구 위주였으나 최근엔 일반 의류나 생활용품 등으로 그 범위가 확대되고 있다. 김씨는 “온라인 쇼핑 후 반품을 몇 차례 하다가 반품된 제품을 모아 싸게 파는 리퍼브 매장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리퍼브 상품이 각광받는 건 온라인 쇼핑의 반사이익 때문이다. 통계청 집계에 따르면 지난해 4월 5조181억원 수준이던 온라인 쇼핑액은 지난 4월 6조750억원으로 늘었다. 불과 1년 만에 온라인 쇼핑 시장이 1조원 이상 급증한 셈이다. 특히 전체 온라인 쇼핑액 중 휴대전화를 활용한 ‘모바일 쇼핑’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 4월 처음으로 60%를 넘겼다. 그만큼 ‘쉽고 간편한 소비’를 선호한다는 의미다.

온라인 쇼핑의 단점은 구입하려는 물건의 실물을 확인할 수 없다는 점이다. 고객은 판매자가 남겨 놓은 설명과 사진 등을 통해서만 상품 정보를 파악할 수 있다. 이런 정보를 믿고 온라인을 통해 제품을 구입했다가 실망하는 경우가 자주 생긴다. 당연히 반품이 늘게 되는 이유다.

신한카드 트렌드연구소가 지난해 11월부터 3개월간 신한카드 이용 고객 1033만 명의 소비 패턴을 분석한 결과 이 중 191만 명(18.5%)은 해당 기간 동안 반품한 이력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온라인 쇼핑족 5명 중 1명이 최소 3개월에 한 번 이상 반품한다는 의미다. 3개월간 3번 이상 반품한 이력이 있는 고객도 51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이렇게 반품이 일상화하자 제조 또는 판매업체의 고민이 쌓였다. “반품된 물건을 어떻게 처리해야 하나?” 물론 돌려받은 물건을 다시 못 파는 건 아니다. 하지만 반품된 물건의 경우 포장된 뒤 택배 등을 통해 장거리를 오간 경우가 많아 흠이 생길 확률이 높다. 가구처럼 부피가 큰 제품은 반품되는 과정에서 곳곳에 상처가 생길 수도 있다. 의류는 반품한 고객의 착용을 거치며 모양이 변형될 수도 있다. 쉽게 말해 신상(신상품)이 B급 상품으로 전락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새 상품에 가까운 B급 상품을 버릴 수 없어 고민한 끝에 고안한 게 리퍼브 시장이다.

신한카드 분석에 따르면 리퍼브 시장은 2013년에 비해 10배 가까이 규모가 커졌다. 신한카드에 등록된 80개의 리퍼브 매장을 기준으로 했을 때 2013년 1월 2800만원 수준이던 매출 규모는 4년 만인 2017년 1월 1억9500만원을 넘어서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국내 최대의 리퍼브 전문 매장인 올랜드아울렛은 2010년 경기도 파주에 첫 매장을 오픈한 뒤 7년 만에 전국 각지에 15개의 매장을 운영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올랜드아울렛 관계자는 “기업들 입장에선 유통·제작 과정에서 제품에 사소한 하자가 생겼거나 반품된 상품을 재판매할 수 있고, 소비자들은 신상품에 가까운 상품을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다”고 말했다.

올랜드아울렛 파주 본점에 진열된 가구들. 리퍼브 상품들이 소비자가격의 절반에 판매된다. [사진 올랜드아울렛]

올랜드아울렛 파주 본점에 진열된 가구들. 리퍼브 상품들이 소비자가격의 절반에 판매된다.[사진 올랜드아울렛]

리퍼브 제품의 외관이나 성능은 새 제품과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새 상품은 아니어서 상대적으로 가격이 저렴하다. 올랜드아울렛 파주점에선 280만원의 TV를 반값에 가까운 150만원에 판매 중이다. 대부분의 전자제품과 가구의 판매가 또한 소비자 가격 대비 50~70%에 형성돼 있다. 리퍼브 제품이 ‘가성비(가격 대비 성능)’가 좋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리퍼브 전문 매장은 ‘B급 상품’만을 취급하지만 나름의 룰이 있다. 특정 소비자가 이미 사용한 상품의 경우 B급 상품이 아닌 ‘중고 상품’이기 때문에 취급하지 않는다. 사용에 불편을 느낄 정도의 하자가 있는 상품은 매장에 진열하지 않는다. 리퍼브아울렛의 경우 계약을 맺은 생산업체를 통해 주기적으로 B급 상품을 대량으로 들여온 뒤 자체 기준에 따라 가격을 책정한다. 제품의 상태와 구입 비용, 물류 비용 등을 감안해 거품을 뺀 가격에 판매한다.

최근 리퍼브 업체가 공략 중인 수요층은 결혼을 앞둔 예비 신혼부부다. 대부분의 신혼부부가 가전제품과 가구, 생활용품 등 각종 살림을 한꺼번에 장만하느라 경제적 부담이 크다는 점을 노린 것이다.

리퍼브 상품으로만 구성된 가전제품 코너. [사진 올랜드아울렛]

리퍼브 상품으로만 구성된 가전제품 코너. [사진 올랜드아울렛]

직장인 김성목(32)씨는 오는 8월 결혼을 앞두고 매주 주말 예비 신부와 함께 리퍼브아울렛을 방문했다. 무리해서 서울 시내에 신혼집을 마련한 만큼 기타 결혼 비용을 최소한으로 줄이기 위해서다. 김씨는 지난 2주간 리퍼브아울렛을 돌며 냉장고와 세탁기, TV, 침대, 소파 등 각종 신혼 살림 구입을 끝냈다. 백화점을 돌며 애초 짜놓은 예산인 4500만원보다 2000만원 이상 저렴한 2300만원에 모든 신혼 살림 장만을 마쳤다.

김씨는 “새로 장만하는 신혼 살림을 리퍼브 제품으로 구입한다는 찝찝함이 있었지만 막상 물건을 받아본 뒤에는 그런 마음이 사라졌다”며 “사실상 새 제품을 절반 가격에 구입할 수 있어 결혼 비용이 부담되는 신혼부부에게 추천하고 싶다”고 말했다.

다만 전문가들은 리퍼브 제품의 경우 새 제품을 구입할 때보다 소비자들이 꼼꼼하고 철저하게 물건을 살펴본 뒤 구입해야 한다고 조언한다. 이미 하자가 있는 B급 상품이라는 점 때문에 환불이나 반품이 불가능한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특히 온라인 리퍼브몰을 통해 물건을 구입했다가 제품에 큰 결함을 발견했을 경우 소비자와 판매자 간 책임 공방이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

정지연 소비자연맹 사무총장은 “소비자 입장에서 선택의 폭이 넓어진다는 점에서 리퍼브 시장은 긍정적인 틈새시장이지만 그만큼 ‘현명한 소비’가 필요하다. 특히 온라인 리퍼브 몰 등에선 중대한 하자가 있음에도 이를 숨기고 판매할 가능성이 있는 만큼 꼼꼼하게 따져보고 상품을 구입해야 한다”고 말했다.

[S BOX] 유통기한 임박한 값싼 식품도 인기

최근 리퍼브 시장에서 인기를 끄는 새로운 품목은 ‘식자재’다. 통상 식자재는 제품별로 ‘유통기한’이 설정돼 있어 그 안에 판매돼야 한다. 소비자들도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은 구입하지 않는다.

식자재 리퍼브 제품은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자재지만 섭취 시 건강상의 문제가 없는 상품을 말한다. 식품의약품안전처에 따르면 유통기한은 판매점에서 유통할 수 있는 기한일 뿐 실제 식품을 먹을 수 있을지 여부를 결정하는 직접적인 변수는 아니다. 해당 식품을 먹었을 경우 건강상의 문제가 생기는지는 ‘소비기한’에 따라 결정된다.

통상 유통기한은 각종 식품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소비기한의 60~70% 정도로 설정된다. 유통기한이 지난 식품일지라도 최소 1~2일에서 최대 수개월까지는 문제가 없는 상품일 수 있다는 의미다.

식약처는 제품별 소비기한을 정해 놓았다. 요구르트는 유통기한 경과 후 10일, 계란은 유통기한이 끝난 후 25일, 치즈는 유통기한이 지난 뒤 70일 등으로 식품별 소비기한을 책정했다.

‘떠리몰’ ‘임박몰’ 등 온라인 사이트를 통해 유통기한이 임박한 식재료를 판매하는 업체들은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차이를 활용해 새로운 리퍼브 틈새시장을 개척했다.

이준형 임박몰 대표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이라도 냉장 보관 등을 통해 소비기한을 크게 늘릴 수 있다. 소비자는 이런 식품을 시중 가격의 30~50% 수준에 구입할 수 있다”고 말했다.

정진우 기자 dino8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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