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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이사와보니 겉보기엔 고상해도 속은 다 일그러져 있더라"

중앙일보

입력

16일 첫 방송하는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의 백미경 작가. '사랑하는 은동아',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3연타를 노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6일 첫 방송하는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의 백미경 작가. '사랑하는 은동아', '힘쎈여자 도봉순'에 이어 3연타를 노린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23금 어덜트 드라마.’ 16일 첫 방송을 시작하는 JTBC 금토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를 쓴 백미경 작가는 이번 작품을 이렇게 정의했다. 10.2%(닐슨코리아, 유료가구 기준)로 JTBC 드라마 최고 시청률을 기록한 전작 ‘힘쎈여자 도봉순’이 유치원생부터 90세 노인까지 볼 수 있는 이야기였다면, ‘품위있는 그녀’는 “아이들은 보면 안되는” 완전한 성인극이라는 것이다.

16일 JTBC 드라마 '품위있는 그녀'로 #상류층 욕망 까발리는 작품 선보이는 #백미경 작가 전작 '도봉순' 넘을까 관심 #영어 강사에서 공모전 여왕으로 변신

드라마는 모든 걸 다 가진 재벌가 며느리 우아진(김희선 분)과 그 완벽한 삶에 갑자기 끼어들어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박복자(김선아 분)의 연기대결로 기대감을 모으고 있다. 2014년 데뷔작인 단막극 ‘강구 이야기’(SBS)를 시작으로 첫번째 미니인 순정멜로 ‘사랑하는 은동아’(JTBC·2015)까지 전혀 결이 다른 이야기들은 어떻게 탄생하게 됐을까. 12일 서울 서소문에서 백 작가를 만나 그 비결을 물었다.

재벌가 이야기라니 의외다.  
상류층의 부조리를 아주 적나라하게 한번 까발려보고 싶었다. 하류에서 시작한 사람이 유리천장을 깨고 상류층으로 갈 수 있을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반대로 위에서 아래로 떨어지는 유리바닥도 부서지지 않는다. 그 안에 얽힌 욕망이 가장 주된 키워드다.
그걸 체감한 순간이 있었나.  
물론이다. 대구에서 살다가 서울 강남으로 이사와 보니 이질감이 너무 컸다. 겉보기엔 하나같이 고상한데 그 속은 일그러져 있는 모습들이 너무 많았다. 고급 호텔에서 몇백만원 짜리 마사지를 받으면서도 하나도 행복해 보이지가 않더라. 취재를 할수록 진짜 품위에 관한 이야기에 대한 확신이 들었다.
백미경 작가는 "제작진에게 대본 수정 요구 한 번 없이 마무리된 작품은 처음"이라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백미경 작가는 "제작진에게 대본 수정 요구 한 번 없이 마무리된 작품은 처음"이라며 기대감을 표현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지금이야 전업 작가가 됐지만 그녀는 사실 오랫동안 작가보다 영어강사로 이름을 떨쳤다. 영문학을 전공해 대학교 1학년 때부터 강단에 서서 영어회화로 문법을 가르치면서 입소문을 탔다. 일찍이 2000년 시나리오 공모전에도 당선돼 영화계에 발을 디뎠지만 자신의 아이디어와 창작권을 인정받지 못하는 현실에 염증을 느끼고 고향으로 내려가 영어학원을 열었다. 10여년 간 운영하며 규모가 제법 커진 덕분에 분점 계획도 있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충격을 많이 받았어요. 돈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구나, 가치 있는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면서 다시 글을 쓰고 싶더라고요. 2호점 계약금으로 500만원을 걸어둔 상태였는데 그냥 날렸어요. 그래야 글을 열심히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그렇게 일주일 만에 쓴 ‘강구 이야기’가 단막 공모전에 당선되고, 인턴 도중 한 달만에 쓴 미니가 MBC에서 당선됐다.

장편 데뷔는 JTBC에서 했다.      
같은 작품이 JTBC에서도 당선이 됐다. 이미 수상 통보를 받았다고 하니 다른 작품은 없냐고 물어서 ‘은동아’를 보여줬고, 바로 편성이 결정됐다. 늦깍이 신인으로서 빨리 무대에 오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품위있는 그녀'에서 상류층 진입에 성공한 우아진 역을 맡은 김희선. [사진 JTBC]

'품위있는 그녀'에서 상류층 진입에 성공한 우아진 역을 맡은 김희선.[사진 JTBC]

그게 이번 작품인가.  
아니다. 그건 또 다른 이야기다. 극본과 제작에 참여하고 있는 영화 ‘흥부’와도 다른 작품이다.
다작과 수상의 비결이 뭔가.  
오랫동안 글을 쓰지 않았지만, 역설적으로 그래서 가슴 속에 적재돼 있는 이야기가 많았다. 이런 것도 재미있겠는데 상상한 것도 많고. 공모전에서는 심사위원도 일일이 읽지 못하기 때문에 한눈에 요약이 되는 로그라인이나 참신한 제목 등 초반에 눈길을 끄는 게 중요하다.
도전해 보고 싶은 장르가 있다면.  
느와르? 학원 운영을 오래 해서 그런지 나는 철저하게 비즈니스적 관점에서 접근하는 편이다. 그래서 남들이 안하는 걸 하고 싶다. 한국에서는 희극을 평가절하하는 경향이 있는데 거기에 대한 반발심도 있다. 어차피 웃을 것면서 왜 유치하다고 욕하나. 그냥 시원하게 웃으면 되지. 아마 다들 코미디를 하면 또 다른 걸 쓰려 할 것 같다.
‘도봉순’ 결말이 아쉽다는 비판도 있었다.  
워낙 많은 서사가 있었기 때문에 어느 정도 아쉬움은 있을 수밖에 없다. 로맨틱코미디를 기대하는 사람은 그게 아쉽고, 코미디를 좋아하는 사람은 왜 스릴러가 나오냐 하고, 스릴러 팬은 왜 뜬금없이 웃기냐고 하니까. 다들 보고 싶은 부분을 보는 거다. ‘은동아’ 시청률이 하도 안나와서 잠자고 있는 사람들이 일어나서 ‘대체 뭐야?’ 하며 보게 만들기 위해서는 굿판을 벌일 필요가 있었다.
'품위있는 그녀'에서  박복자 역을 맡아 감희선과 연기 대결을 벌이게 된 김선아. [사진 JTBC]

'품위있는 그녀'에서 박복자 역을 맡아 감희선과 연기 대결을 벌이게 된 김선아.[사진 JTBC]

시청률 경신 자신있나.
그러길 바란다. 나는 배우의 매력을 극대화하기 위해 노력하는 작가다. 우아진은 처음부터 김희선을 염두에 두고 쓴 캐릭터고, 박복자는 본디 여성적 매력이 없는 설정이었는데 김선아가 캐스팅되면서 훨씬 더 다채로운 매력을 갖게 됐다. 단순한 악역이 아니다.

집필에 앞서 음악 리스트부터 만든다는 백 작가는 ‘도봉순’을 쓸 때는 70년대 팝과 트로트를, 이번에는 클래식을 주로 들었다고 밝혔다. 그녀는 “한층 품격있는 코미디를 기대해도 될 것"이라고 밝혔다. 사전제작 드라마로, ‘내 이름은 김삼순’ 등을 맡은 김윤철 감독이 12년 만에 김선아와 호흡을 맞추는 것도 화제다.

민경원 기자 storym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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