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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중생 교복에 매일 담배 냄새가"...더위와 함께 찾아온 침입자, 층간흡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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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대문구의 A아파트에 거주하는 김모(여·43)씨의 아침은 괴롭기만 하다. 잠을 깨우는 담배연기 때문이다.
흡연자는 김씨의 가족이 아니다. 아랫집 이웃이 베란다에서 피우는 담배연기가 열린 창문을 통해 김씨의 집안에 들어온 것이다.

담배연기는 비흡연자에겐 참기 힘든 고통이다. 여름철을 맞아 층간흡연 분쟁이 늘어나는 이유다. [중앙포토]

담배연기는 비흡연자에겐 참기 힘든 고통이다. 여름철을 맞아 층간흡연 분쟁이 늘어나는 이유다. [중앙포토]

◇"교복에 담배냄새" 항의하자 "내 집에서 내가 피우는데…"  

중학생인 김씨 딸은 담배 냄새를 맡고 헛구역질을 하기도 한다. 베란다에 널어둔 딸의 교복에 담배 냄새가 벤 적도 한두 번이 아니다. 참다못한 김씨는 최근 아랫집에 항의했다. 하지만, 흡연자는 “내 집에서 내가 피우는데 무슨 문제냐”며 되레 화를 냈다. 김씨는 “더워지는 날씨에 창문을 닫고 지내야 하는 것인지…”라고 답답해 했다.

10가구 중 7가구가 담배연기 피해자 #층간흡연 민원이 층간소음 앞질러 #흡연문제로 말다툼·폭행까지 발생 #‘금연아파트’ 서울 34곳 등 증가 추세 #“합의 이끌어내 공동주택 흡연 제한해야”

서울 도봉구의 B아파트 주민 박모(여·38)씨 역시 지난달 흡연 문제로 아랫집과 크게 다퉜다. 박씨는 올초 갑상선 암 수술을 받았다. 그런데 아랫집 남성들이 화장실에서 수시로 피우는 담배연기가 환풍기를 통해 올라왔다. 사정을 얘기해도 소용이 없자 “살인행위”라고 따졌다. 하지만 흡연자는 “왜 흡연 권리를 간섭하느냐. 법대로 해결하자”고 큰소리쳤다.

◇흡연 증거 확보하려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도

김포에 사는 C(40)씨는 아랫층 주민이 피워대는 담배로 몇차례 말다툼을 했다. "담배를 피운 적 없다"고 발뺌하는 통에 언성이 높아진 것이다. 참다 못한 C씨는 담배 냄새가 올라올 때를 기다려 보초를 서기도 했다. 결정적인 증거를 잡기 위해 아랫층 창밖으로 담뱃불과 담배연기가 보이는 장면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C씨는 "사진을 들이밀면서 사과를 받아내기는 했지만, 이후에도 가끔씩 담배연기가 올라온다"며 한숨을 쉬었다.

◇층간소음보다 민원 더 많아

흡연자의 담배연기가 공동주택의 다른 층에 번지는 ‘층간흡연’ 문제가 날씨가 더워지면서 다시 논란이 되고 있다. 담배연기는 ‘소리없는 침입자’처럼 담배를 피지 않는 이웃을 패닉 상태에 빠트린다. 하지만 사적 공간인 집안에서의 흡연은 여전히 규제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서울의료원에 따르면 서울의 비흡연가구 10가구 중 7가구가 층간흡연 피해를 입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층간흡연 피해 민원은 726건으로 층간소음 민원(517건)을 앞질렀다. 2014년 1월부터 2016년 6월까지 국민권익위원회 국민신문고에 접수된 민원을 분석한 결과다.

특히 층간흡연 피해 민원은 창문을 열고 지내는 7~9월에 집중됐다. 2014년은 민원의 38%, 2015년은 민원의 41%가 7~9월에 발생했다.

층간소음보다 많은 층간흡연 민원.

층간소음보다 많은 층간흡연 민원.

문제는 담배연기가 이웃 간의 심각한 마찰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성북구에 사는 정모(남·36)씨는 지난 1일 새벽 4시에 아랫집의 문을 거세게 두드렸다. 새벽에 수시로 담배를 피우는 아랫집 때문에 잠을 이루기 힘들어서였다. 정씨는 “흡연자는 오히려 ‘새벽에 남의 집에서 소란을 피우니 경찰에 신고하겠다’고 협박을 했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차상곤 주거문화개선연구소장은 “층간흡연으로 인한 올해 상담건수는 한 달 평균 10건 내외로 지난해보다 크게 늘었다. 흡연문제로 이웃끼리 말다툼은 물론 몸싸움까지 벌이는 일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공동주택 주요 흡연 장소 살펴보니

공동주택 주요 흡연 장소 살펴보니

◇금연아파트가 해법될까

층간흡연 분쟁을 예방하기 위해 아예 ‘금연아파트(공동주택 금연구역)’ 지정도 증가하고 있다. 서울의 금연아파트 단지는 지난해 8개 자치구 13곳에서 올해 13개 자치구 34곳으로 늘었다.

보건복지부가 지난해 9월부터 도입한 이 제도는 현행법(국민건강증진법)상 전체 가구의 50% 이상이 동의하면 구청 등에 신청할 수 있다. 복도·계단·엘리베이터·주차장 등이 금연구역으로 지정된다. 위반하면 1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

'층간흡연'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금연아파트' 지정이 늘고 있다.12일 '금연아파트'로 지정된 서울 송파구 위례아이파크 1단지에서 이혜정 송파구보건소 주무관(왼쪽)과 양영수 관리사무소장이 금연 팻말을 부착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층간흡연' 갈등을 예방하기 위한 '금연아파트' 지정이 늘고 있다.12일 '금연아파트'로 지정된 서울 송파구 위례아이파크 1단지에서 이혜정 송파구보건소 주무관(왼쪽)과 양영수 관리사무소장이 금연 팻말을 부착하고 있다. 김성룡 기자

하지만 한계가 있다. 정작 흡연이 가장 많이 이뤄지는 베란다·화장실 등 집안(52.6%, 국민신문고)은 금연구역 지정에서 제외되기 때문이다.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캐나다 온타리오주 등 해외에선 공동주택에서 흡연을 전면 금지하는 곳이 많다.

서울의 '1호 금연아파트'인 강남구 개포동 개포현대1차아파트 단지 앞에 금연아파트임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사진 강남구청] 

서울의 '1호 금연아파트'인 강남구 개포동 개포현대1차아파트 단지 앞에 금연아파트임을 알리는 팻말이 붙어있다.[사진 강남구청]

김규상 서울의료원 환경건강연구실장은 “한국 국민의 70%가 공동주택에 살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해결책이 시급하다”면서 “충분한 논의를 바탕으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 내 한국 실정에 맞게 공동주택 흡연을 제한해야 한다”고 말했다. 차상곤 소장은 “주민자치위원회 구성 등 층간흡연 문제를 주민들이 자율적으로 해결하는 제도 도입도 대안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다.

임선영 기자 youngc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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