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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멘트, 페인트, 합판....이런 재료가 잘 맞는 이유는 터미널 매점 설치부터 직접 한 덕분이죠

중앙일보

입력

작품 앞에서 설명을 들려주고 있는 씨 킴.사진=이후남 기자

작품 앞에서 설명을 들려주고 있는 씨 킴.사진=이후남 기자

 "어렸을 때 남들과 못 어울리고 혼자 놀곤 했어요. 부모님이 제가 사회생활을 제대로 못 할거라고 생각하셨죠. 혼자 있는 것에 대한 열등감도 있었어요."
 작가 씨킴(Ci Kim, 66)의 말은 좀 뜻밖이다. 세상에 널리 알려진 그의 또다른 호칭은 '아라리오 회장 김창일', 다시말해 천안종합버스터미널과 신세계백화점 충청점 등을 운영하는 성공한 기업가이기 때문이다. 부모의 걱정과 달리 사업으로 큰 부를 일군 그는 이를 미술이란 호사에 쏟아부은 걸로도 유명하다. 세계적인 현대미술 콜렉터로서의 면면은 서울·제주에 운영중인 미술관은 물론이고 천안의 백화점 앞과 갤러리 입구에 누구나 볼 수 있게 전시해둔 데미안 허스트, 수비드 굽타 등의 대형 작품에서도 드러난다. 때론 수십억원을 호가하는 이같은 작품만 아니라 국내 젊은 작가의 작품도 꾸준히 사모아 후원자 역할을 해온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에 더해 그는 직접 작가로 변신, 2000년대초반부터 2년마다 꼬박꼬박 개인전을 열어왔다. 불혹을 한참 지나 미술, 그것도 풍경화나 정물화 같은 고전적 취향이 아니라 동시대 현대미술에 뛰어든 독특한 늦깎이다. 한때 열등감까지 안겨줬던 '혼자 놀기'는 그의 표현을 빌면 "예술을 하면서" 의미가 달라졌다. 창작의 과정이자 재료가 된 것이다. 요즘은 제주에 작업실을 마련, 사업은 전화로 돌보며 작품활동에 힘을 싣고 있다. 현재 아라리오갤러리 천안에서 열리고 있는 '논(㯎)-논다놀아'는 그의 9번째 개인전이다.

작품 앞에 선 씨 킴.사진=아라리오갤러리

작품 앞에 선 씨 킴.사진=아라리오갤러리

 회화, 설치, 조각, 사진 등 70여점이 자리한 전시장을 둘러보면 가장 눈에 띄는 건 재료다. 큼직한 화폭에 화려한 색상을 두툼한 질감으로 펼친 그림은 여느 물감이 아니라 시멘트에 페인트를 섞어 칠한 것이다. 때로는 캔버스의 일부를 뜯어내 안쪽의 베니어 합판을 그대로 드러낸다. 철판도 있다. 철판 위에 사물을 올려놓고 일부러 비를 맞게해 부식효과를 냈다. 대개 미술보다 건축에 제격인 재료다. 이를 그는 70년대말 버스터미널에 매점을 운영하며 사업을 시작한 이력과 함께 설명했다. "매점 설치를 직접 했어요. 한때 식당도 25개 운영했는데 그 인테리어도 했죠. 그런 영향인지 이런 재료가 잘 맞아요." 처음부터 미술가를 꿈꾼 것도, 미술을 전공한 것도 아닌 그는 "작업을 하면 할수록 가장 힘들었던 건 정체성"이라며 "아내가 저한테 '당신 그림을 사랑하냐'고 하는데 내 그림은 내 실험의 대상"이라고 했다.

무제, 2017, 캔버스에 시멘트와 페인트, 320X244cm, 6개   사진=아라리오갤러리

무제, 2017, 캔버스에 시멘트와 페인트, 320X244cm, 6개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씨 킴의 작품 'By Destiny', 2015-2016, 비닐 위에 혼합재료, 250X200cm, 9패널.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씨 킴의 작품 'By Destiny', 2015-2016, 비닐 위에 혼합재료, 250X200cm, 9패널. 사진=아라리오갤러리

사진 작품 앞에 선 씨 킴. 그의 사진작품은 비오는 날 자동차 앞 유리를 통해 다양한 풍경을 필름으로 촬영, 불투명하고 몽상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사진=이후남 기자

사진 작품 앞에 선 씨 킴. 그의 사진작품은 비오는 날 자동차 앞 유리를 통해 다양한 풍경을 필름으로 촬영, 불투명하고 몽상적인 분위기가 두드러진다. 사진=이후남 기자

무제, 2017, 혼합재료, 가변크기 설치. 사진=아라리오갤러리

무제, 2017, 혼합재료, 가변크기 설치. 사진=아라리오갤러리

 낯선 재료의 사용만 아니라 버려진 재료에 의미를 더하려는 시도도 엿보인다. 전시장에는 백화점에 흔한 마네킹들에 시멘트를 칠하고 가발을 씌운 작품도, 작품에 쓰고 난 시멘트통이나 빈 쇼핑백을 일종의 설치작품인양 쌓아둔 것도 있다. 그는 갤러리 꼭대기에 자리한 작업실까지 가감없이 보여줬지만 전시에 대한 긴장은 떨치지 못한 듯 했다. 지난달 말 개막 직전 만났을 때 "어제 새벽까지 잠이 안 왔다"고 했다. 백화점 알림판에 개인전 소식이 보이자 겸연쩍은 듯 "저만 아니라 모든 전시를 다 저렇게 소개한다"고 묻지도 않은 설명을 들려줬다. 그의 작품에 대해서는 다양한 평가가 있을 수 있을 터. 적어도 하나는 분명해 보였다. 현대미술이 곧잘 역설하는 '무엇이든 예술이, 누구든 예술가가 될 수 있다'는 정신을 그는 삶을 통해 직접 실천하고 실현하고 있다.
 이후남 기자 hoon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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