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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업 초기부터 글로벌 시장 겨냥하는 스타트업에 눈길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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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20면

오스트리아 호프부르크궁에서 열린 ‘파이오니어스 페스티벌’

지난 1일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열린 스타트업 컨퍼런스 ‘파이오니어스 페스티벌’.

지난 1일 오스트리아 빈의 호프부르크 궁전에서 열린 스타트업 컨퍼런스 ‘파이오니어스 페스티벌’.

유럽의 스타트업 생태계가 꿈틀거린다. 유럽연합(EU) 공동체 안에서 젊은이들이 자유롭게 움직이면서 창업에 뛰어든다. 곳곳에서 저절로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스타트업이 만들어진다. 혁신적인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해 유럽 각국은 다양한 유인책을 만들며 경쟁에 뛰어들고 있다. 유럽의 강소국 오스트리아도 예외가 아니다. 서쪽으로는 독일·스위스, 남쪽으로는 이탈리아, 동쪽으로는 체코·헝가리·슬로바키아에 접해 있는 오스트리아는 유럽 중앙부에 위치한 교통의 요지다. 한국보다 조금 작은 면적의 국토, 인구는 870만 명으로 한국의 6분의 1 수준인 작은 나라다. 하지만 1인당 국민소득은 4만4000달러에 달하는 부자 국가다.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이 큰 우량 강소기업인 ‘히든챔피언’을 독일·일본과 함께 세계에서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는 나라이기도 하다.

‘교통 요지이며 삶의 질 높다’ 강조 #세금 혜택, 실리콘밸리 연계 지원 #아디다스에 팔린 벤처 ‘런타스틱’ #직원 200명에 국적 40개 다국적군

지난 1일 오스트리아 정부는 한국을 비롯한 전 세계 스타트업 종사자 21명을 유럽 최대 스타트업 콘퍼런스인 ‘파이오니어스 페스티벌’에 초대했다. 파이오니어스 페스티벌은 합스부르크 왕조 시절인 13세기에 지어진 빈의 호프부르크 궁에서 열리는 스타트업 축제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바이오·핀테크 등 신기술에 대해서 전 세계에서 초청된 연사들이 발표하는 자리다. 오스트리아·독일뿐만 아니라 EU 전역에 흩어져있는 스타트업 분야 인재들이 총출동했다.

피트니스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런타스틱 공동창업자 플로리안 게슈반트너(오른쪽).

피트니스 애플리케이션을 제작하는 런타스틱 공동창업자 플로리안 게슈반트너(오른쪽).

에인절투자금의 20% 정부서 지원

해외 스타트업을 유치하기 위해 우선 오스트리아 정부는 우선 살기 좋은 교통 요지로서 빈의 매력을 강조한다. 유럽의 어떤 주요 도시든지 3시간 이내에 갈 수 있는 교통의 요지라는 의미다. 또 인구 180만명의 수도인 빈이 머서컨설팅에서 세계에서 가장 삶의 질이 높은 도시로 8년 연속 선정됐을 정도로 살기 좋은 곳이라는 것도 매력이다. 아파트 임대료가 런던이나 파리의 3분의 1 정도밖에 안될 정도로 싸고, 식료품비와 대중교통 요금이 아주 저렴하다. 고기·야채 등의 식료품은 서울보다 휠씬 싸다. 독일어가 공용어나 비즈니스를 하는데 있어서 영어가 문제없이 통용된다. 스타트업이 정착하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것이다.

둘째로 초기 스타트업을 위한 투자금과 혜택이 풍부하다고 강조한다. 2016년 국내총생산(GDP)의 3.14%인 110억 유로(13조7800억원)를 연구개발(R&D)에 썼을 정도로 오스트리아는 R&D 예산 비중이 높은 나라다. 이중 상당수가 혁신 스타트업에 투입된다는 것이다. 오스트리아 연방개발은행(AWS)이나 연구진흥기구 등이 스타트업의 초기 성장 단계에 필요한 각종 자금을 지원한다. 오스트리아 정부는 여기서 한발 더 나아가 스타트업에 대한 민간투자를 늘리기 위한 정책을 최근 내놨다. 혁신 스타트업의 R&D 투자 비용에 대해서는 25%인 법인세율을 12%로 낮춰 준다. 또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에인절투자자에 대해 최대 5만 유로(6300만원) 한도에서 투자금의 20%까지 정부가 지원해 주는 제도도 최근 마련했다. 스타트업 투자에 각종 혜택을 주는 한국의 접근방법과 거의 비슷하다는 인상을 받았다.

오스트리아 정부의 노력 가운데 또 하나 인상적인 부분은 실리콘밸리와의 연계 노력이다. 오스트리아 스타트업 생태계와 실리콘밸리를 연계하기 위해 지난해 10월 ‘오픈오스트리아’ 사무실을 샌프란시스코에 개설했다.

마틴 라우치바우어 오픈오스트리아 대표는 “오스트리아 창업자와 스타트업, 그리고 과학자들을 실리콘밸리와 연결하는 역할을 하는 연락사무소라고 보면 된다”며 “실리콘밸리의 트렌드를 오스트리아로 신속하게 전하는 역할도 맡고 있다”고 말했다. 오픈오스트리아는 실리콘밸리 스타트업 생태계에 오스트리아를 소개하고 홍보하는 데 여념이 없다.

대학·기업도 벤처 창업 지원 나서

오스트리아 대학생들의 창업 요람인 빈 대학창업센터.

오스트리아 대학생들의 창업 요람인 빈 대학창업센터.

스타트업을 장려하는 분위기 속에 오스트리아의 창업 생태계를 자극하는 극적인 성공스토리도 등장했다. 2015년 2억2000만 유로(약 2800억원)에 세계적 스포츠 브랜드 아디다스 그룹에 매각된 오스트리아의 스타트업 런타스틱(Runtastic)이 그 주인공이다. 오스트리아에서 3번째로 큰 도시인 린츠에 위치한 런타스틱 본사에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목장밖에 보이지 않는 시골 도로를 달리다 갑자기 큰 쇼핑몰을 만났는데 그 안에 런타스틱의 사무실이 자리 잡고 있다.

2009년 조깅 운동량을 측정하는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앱)으로 플로리안 게슈반트너 등 4명이 공동 창업한 런타스틱은 몇가지 점에서 특이하다. 첫째, 벤처캐피탈의 투자를 받지 않고 자력으로 성장했다. 오스트리아 정부지원금을 받은 일은 있지만 초기부터 자체 매출을 올리며 성장했다. 둘째, 독일어를 모국어로 하는 오스트리아 스타트업으로는 드물게 창업 초기부터 영어로 업무를 진행했다. 대상 시장이 글로벌이다 보니 그렇게 됐다고 한다. 덕분에 린츠 인근의 대학에 유학한 유학생들을 직원으로 많이 채용하게 됐다. 지금 런타스틱 직원은 약 200명인데 이들의 출신국가는 40여개국에 달한다.

현재 15개 언어로 전 세계에 서비스되고 있는 런타스틱 앱의 누적 다운로드 횟수는 1억6000만 건을 넘어섰다. 국내에서도 다운로드 횟수가 160만 건에 달한다. 그렇지만 런타스틱은 아디다스의 인수 이후에도 초기 스타트업 문화를 그대로 유지하면서 독립적으로 회사를 운영하고 있다. 이 회사의 아시아담당인 일본인 히무카이 토모에는 “린츠에서 유학한 이후 독일인 남편의 소개를 통해 런타스틱에서 일하게 됐다”며 “육아부담이 있기 때문에 원격으로 재택근무를 하며 일주일에 하루만 사무실에 출근한다”고 말했다. 런타스틱의 창업자들은 15개의 오스트리아 초기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스타트업 생태계의 선순환에 일조하고 있다.

창업 생태계를 만들기 위한 대학의 노력도 인상적이다. 200년의 역사를 지닌 빈대학 등 오스트리아의 각 대학은 학생들의 기업가 정신을 증진하고 각 대학의 창업 생태계를 엮기 위한 ‘앙트러프러너십 애버뉴’라는 행사를 매년 3월과 5월 사이에 개최한다. 올해에도 2500명 이상의 학생들이 참가해 창업에 대해서 배웠다.

현지에서 이동통신 시장 점유율 1위 업체인 오스트리아텔레콤은 빈 시내에서 스타트업캠퍼스 ‘A1’을 운영하고 있다. 스타트업에게 초기 투자금, 사무실 공간, 컨설팅, 판로개척 등의 도움을 주는 곳이다. 또 스마트 교통 시스템에서 세계 1위인 오스트리아의 캡쉬트래픽콤도 올해부터 ‘팩토리원’이라는 스타트업 액셀러레이터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자사의 미래기술과 연관된 글로벌 스타트업을 키우고 있다.

한국인이 모여 한국어 서비스만 해선 한계

오스트리아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둘러보면서 스타트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한 세계 각국의 노력이 치열하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초기 투자를 활성화하기 위한 정부 지원, 대기업의 혁신스타트업 지원, 기업가정신 증대를 위한 대학의 노력 등은 모두 한국에서 벌어지는 일과 비슷했다. 오히려 정부의 적극적인 지원, 벤처캐피털 투자규모 등은 경제규모가 큰 한국이 더 앞선다.

하지만 한국과 오스트리아의 큰 차이점은 글로벌 지향성이라고 느꼈다. 인구 800만 명 시장인 오스트리아에서 시작하는 스타트업은 내수시장이 아니라 출발부터 글로벌 시장을 목표로 한다. 작게 봐도 인구 1억 명이 넘는 독일어권을 대상으로 삼는다. 그러다 보니 팀 구성도 다국적군이 된다. 이렇게 해서 성장한 스타트업은 자연히 글로벌에서 성공하는 스타트업이 되고 런타스틱의 경우처럼 자연스럽게 수천억원 가치로 엑시트(스타트업 졸업)를 하게 된다.

매년 6월 빈에서 열리는 파이오니어스 페스티벌은 처음부터 끝까지 완벽하게 영어로 진행된다. 기조 연사부터 참여하는 스타트업까지 전 세계에서 온 글로벌 컨퍼런스다. 이 행사를 통해 오스트리아는 해외 스타트업 인재를 대상으로 빈으로 와서 창업하라고 손짓한다. 반면 한국 스타트업은 대부분 국내 시장만 바라보고 창업을 한다. 팀 구성은 한국인 일색이다. 팀내 공용어는 한국어다. 정부나 벤처캐피탈도 거의 한국 스타트업에만 투자하고 지원한다.

이러다 보니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는 해외와 연결되지 못하고 고립되며 글로벌 스타트업이 나오기 어렵게 된다. 앞으로는 한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글로벌화에 더 힘써야겠다는 생각을 오스트리아에서 더욱 굳히게 됐다.

빈=임정욱
스타트업얼라이언스 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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