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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파이더맨에 뒤늦게 ‘흥분’한 까닭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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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호 14면

지난 3월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뉴욕 월스트리트 황소 조각상 앞에 세워진 ‘용감한 소녀’상. 작가끼리 저작권 침해 논란이 발생한 가운데 조각가 앨릭스 가데가 소녀에게 오줌싸는 강아지 상을 설치했다가 여성단체로부터 비난을 받고 작품을 철거했다.

지난 3월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뉴욕 월스트리트 황소 조각상 앞에 세워진 ‘용감한 소녀’상. 작가끼리 저작권 침해 논란이 발생한 가운데 조각가 앨릭스 가데가 소녀에게 오줌싸는 강아지 상을 설치했다가 여성단체로부터 비난을 받고 작품을 철거했다.

서울역 앞 슈즈트리가 철거됐다. 환경예술가인 황지해 작가는 ‘소비문화’와 ‘환경’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으나 ‘흉물’이라는 여론에 밀려 9일간의 설치에 만족해야 했다. 3만 켤레의 낡은 신발이 비에 젖어 악취가 나고 파리까지 들끓으면서, 서울로7017의 친환경적 이미지와 대조되는 정크아트가 된 것은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 #공공장소 예술작품의 수난

몇 년 전 프랑스 파리의 방돔광장에도 ‘트리’라는 작품이 설치됐었다. 미국 작가 폴 매카시의 작품인데, 사람들이 버트 플러그(butt plug·옛날 사람들이 엉덩이에 꽂았다는 요상한 물건) 모양이라며 혐오감을 표시해 하루 만에 전격적으로 철거당했다.

공공장소에 설치되는 예술 작품은 기구한 운명을 겪게 되는 경우가 많다. 환경문제, 정치문제도 종종 이유가 되지만 불쾌감 혹은 혐오감이 첫째가는 이유다.

유은석 작가의 ‘스파이더맨’

유은석 작가의 ‘스파이더맨’

혐오감 때문에 철거된 국내 예술작품의 대표 사례는 2014년 6월 철거된 이른바 ‘흥분한 스파이더맨(원작 명은 그냥 ‘스파이더맨’)’일 것이다. 백화점 건물 꼭대기에 거꾸로 매달려 있는 스파이더맨 조각품인데, 요상한 자세를 취한 히어로의 그 부분(?)이 흥분돼 있었다는 게 문제다. 작가 유은석은 “아침의 자연스러운 생리현상을 영웅에게도 적용하여 거짓 없고 가식 없는 아침의 모습을 코믹하게 표현했다”고 제작의도를 밝혔으나, “스파이더맨의 팬으로서 기분 나쁘다”(원작 모독), “백화점에 아이들도 가는데 성인물을 설치했다”(선정성), “다들 꼬리 내리고 사는 부산에서 스파이더맨 혼자 건방지게 꼬리를 들고 있어 기분 나쁘다”(불쾌감)는 등 수많은 항의에 직면한 백화점 측은 고심 끝에 철거했다.

작품의 일부분을 수정하면 안 되나 하는 누구나 생각할 만한 대안을 일부 독자분께서 떠올리셨을 수도 있는데, 당연히 작가는 이를 당당하게 거부했다(궁금해 하실 분들을 위해 말씀드리자면, 지금 이 ‘스파이더맨’은 전북 부안의 모 한의원 건물에 붙어 있는데 원장님 말씀이 압권이다. “이 작품이 건강을 추구하는 우리 한의원의 철학과 일치한다 생각했다.”).

2015년 5월에는 세종시 국세청사 앞에 설치되었던 ‘흥겨운 우리 가락’이라는 작품이 저승사자를 연상시킨다는 주장이 제기돼 인근 대로변으로 옮겨졌다. 이 경우는 작품 이미지(저승사자)와 장소(국세청)의 일치성이 의도치 않게 높아지는 바람에 신속하게 조치한 사례인 듯하다.

잘 알려진 리처드 세라의 작품 ‘구불어진 호(Tilted Arc)’는 시민들의 불편을 초래하여 철거된 예다. 1981년 뉴욕 페더럴 플라자에 설치된 이 대형 곡면 철판은 광장을 가로지르는 사람들의 동선을 변경시키는 ‘의도적인’ 장애물인데, 출퇴근 길에 그곳을 지나야만 하는 많은 시민들의 원성을 산 나머지 결국 철거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다. 결과적으로 ‘예술’적인 의도는 잘 전달된 셈이지만, 감상자의 ‘생활’을 침해하는 자충수로 생명이 단축된 것이다.

불쾌감과 혐오감이 예술이 될 수 있을까

혐오감이나 불편성은 공공 미술품의 운명에 대한 감상자들의 ‘합의’를 이끌어내기 쉬운 요인이지만, 정치적·사회적 이슈야 말로 공공 예술품의 철거 여부에 대한 의사결정을 가장 힘들게 만드는 요인이다. 지난 3월 세계여성의 날을 기념해 뉴욕 월스트리트에 세워진 ‘용감한 소녀상’(Fearless Girl크리스틴 비스발 작)은 여성의 권리뿐 아니라 예술가의 권리에 대해서까지 다양한 논쟁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소녀가 맞서고 있는 ‘황소상’의 작가가 저작권 침해를 주장하면서 철거를 요청했지만 소녀상의 인기에 영합한 더블라지오 뉴욕시장은 내년 2월까지 소녀상을 그 자리에 두기로 결정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조각가 앨릭스 가데가 용감한 소녀상에 오줌을 싸는 강아지상을 설치하여 “소녀가 황소의 공간을 침범한 데 항의하기 위해” 소녀상의 공간에 침범하는 역공을 단행했다(강아지상은 몇 시간 후 철거되었으나 예술에 대한 모독을 항의하던 그는 여성을 모독한 죄로 SNS 상에서 맹공격을 받아야 했다).

샘 듀런트 작가의 ‘교수대’

샘 듀런트 작가의 ‘교수대’

최근 미니애폴리스 워커센터의 아름다운 정원에 설치된 2층 구조의 교수대도 마찬가지다. 조각가 샘 듀런트의  ‘교수대(Scaffold)’는 1862년 미네소타 만카토에서 38명을 교수형에 처한 교수대를 그대로 재현했으니 아름다운 조각일 리 없다. 잘못된 폭력적인 역사를 굳이 들추어낸 것도 공분을 불러일으켰지만, 작품 선정 과정에 흑인이 배제됐다는 사실이 문제가 됐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단 이틀 만에 작가는 아름다운 결말에 합의했다. 교수대를 불태우고 소정의 기념식을 갖기로 한 것. 바로 지난 2일 있었던 일이다.

선정위원회에 일반인 참가했으면

수많은 사람이 지나다니는 외부 공공장소에 세워 두는 이상 공공 미술작품은 논란을 피해 가기 어렵다. 갤러리나 미술관에 있었으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았을 작품들도 바깥 세상에 놓여 사람들의 눈길을 끄는 순간, 호불호의 평가를 겸허한 마음으로 기다려야 하는 것이다(유은석의 스파이더맨은 설치 후 1년 동안 아무 문제가 없었다. 흥분 상태로 빌딩 끝에 달려있는 그를 아무도 유심히 보지 않았으므로).

이 글에서 공공미술의 정책이나 향방에 대해 무거운 논의를 늘어놓을 생각은 추호도 없다. 하지만 몇 마디 사견은 털어놓고 싶다. 첫째로, 공공장소에 설치할 미술품의 선정과정이 중요하다. 선정위원회에 전문가들 외에 일반인 감상자를 대표할 수 있는 이들을 포함시키는 것이 좋겠다. 둘째, 작품의 제작과정에 의뢰인(특히 빌딩주나 공무원)이 개입하지는 않는 게 좋겠다. 작품의 완성도는 이름을 건 작가의 몫이다. 또, 초기에 평가가 다소 엇갈리더라도 중대한 이유(mighty good reason) 없이 철거하는 것은 좀 참아주었으면 한다. 마지막으로, 얼마를 쓴 건데 고작 이거냐, 하는 식의 돈 얘기는 좀 안 했으면 좋겠다. 예술작품의 투자 효과를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 같다. 굳이 따지자면 사실 미적 효과(?)는 꽝이었어도 슈즈트리로 인한 서울로7017의 ‘홍보 효과’는 1억 이상의 가치가 있지 않았을까. 지난해 2월 베를린 콘서트하우스 기둥을 신발이 아닌 1만4000개의 오렌지색 구명조끼로 뒤덮었던 아이 웨이웨이의 작품도 거센 철거 요구와 싸워야 했지만 그로 인해 난민 보호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더 널리 알리는 ‘효과’가 있었다.

앞으로도 많은 공공장소의 미술품이 철거의 수난을 겪겠지만 그래도 나쁠 건 별로 없다. 작품이 철거되어도 논란과 철거의 과정에서 논의된 이슈들은 예술로 고스란히 남을 테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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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훈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술경영협동과정 겸무교수. 아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트렌드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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