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루이비통 CEO가 말했다 "실패한 파란 트렁크에 주목하라고"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프랑스 럭셔리 패션 브랜드 루이비통은 헤리티지와 레거시(유산)를 중시하는 한편 '혁신'을 최고 가치로 삼는다. 사실 브랜드의 출발부터가 그러하다. 1854년 자신의 이름을 딴 매장을 낸 루이 비통(1821~92)은 위가 둥근 모양이라 여러 개를 쌓기 힘든 여행용 트렁크를 평평한 사각 형태로 바꿨다. 공간이 좁은 철도 여행이 늘어날 것이라는 예측에서였다. 1890년대 자동차, 1900년대 항공 등 새로운 교통수단이 나타날 때마다 그에 맞는 트렁크를 선보였다. 루이비통이 포브스 추산 세계 브랜드 가치 20위(자산가치 32조 4000억원)에 오른 배경이다.

20t세기 초 하늘길이 열리면서 비행사와 승객들을 위해 제작된 에어로 트렁크와 다양한 여행가방. [사진 루이비통]

20t세기 초 하늘길이 열리면서 비행사와 승객들을 위해 제작된 에어로 트렁크와 다양한 여행가방. [사진 루이비통]

6월 8일부터 8월 27일까지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열리는 전시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루이비통'은 이를 한 눈에 확인시켜주는 자리다.

쿠사마 야요이(맨 뒤쪽), 스테판 스프라우스와 협업한 가방들. 이도은 기자

쿠사마 야요이(맨 뒤쪽), 스테판 스프라우스와 협업한 가방들. 이도은 기자

트렁크의 변천뿐 아니라 당대 탐험가·예술가·사회명사 등을 위한 맞춤 트렁크, 현존하는 가장 비싼 작가 데미언 허스트, 일본을 대표하는 쿠사마 야요이, 논란을 몰고다니는 사진 작가 신디 셔먼 등 아티스트와 협업한 액세서리 등 브랜드의 대표 유산 1000여 점을 한 자리에 모았다. 전시는 2016년 파리에서 시작된 세계 순회전으로, 도쿄를 거쳐 서울을 찾았다.

루이비통 마이클 버크 회장을 DDP에서 열리는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루이비통' 전시장에서 만났다. 김경록 기자

루이비통 마이클 버크 회장을 DDP에서 열리는 '비행하라, 항해하라, 여행하라-루이비통' 전시장에서 만났다.김경록 기자

6월 7일 오프닝 행사 참석차 방한한 마이클 버크(Michael Burke·60) 루이비통 최고 경영자(CEO)를 만났다. 그는 인터뷰에 앞서 직접 전시를 설명하며 '혁신적 브랜드'에 대한 강한 애정을 드러냈다. 그는 1986년 LVMH에 입사한 이래 펜디·불가리 CEO를 거쳐 2012년 루이비통 경영 수장이 됐다.

실패를 두려워 않는 혁신 사례로 소개된 파란 트렁크. 사진과 달리 실제로 보면 푸른빛이 돈다. 이도은 기자

실패를 두려워 않는 혁신 사례로 소개된 파란 트렁크. 사진과 달리 실제로 보면 푸른빛이 돈다. 이도은 기자

-전시 주인공이 옛날 트렁크다. 현재에 시사하는 바는 뭔가.
"혁신이란 가장 먼저 하는 것, 정확하게는 모방하지 않는 것이라는 점이다. 또 실패를 두려워 말아야 한다. 아까 전시장에서 본 그 파란 트렁크를 기억하나? 1916년에 만든 건데 검정·갈색밖에 없던 트렁크에 파란색을 입혔다. 비밀이지만 당시 이를 사는 사람이 없어 소량만 만들다 끝났다. 상업적으로는 대실패였다. 하지만 루이비통이 초창기부터 혁신적 마인드를 지녔다는 걸 보여주는 중요한 제품이다. 최근 루이비통이 미국 현대작가 제프 쿤스와 협업한 마스터 컬렉션(핸드백에 루벤스·레오나르도 다빈치 등의 명화를 찍어낸 가방)도 비슷하다. 실패할 수도 있지만 혁신은 이를 감수해야 한다. 챔피언이란 그 자리에 가기까지 몇 번은 좌절하지 않나. 이 마음가짐을 유지하는 게 수장으로서의 내 임무다. "

철도여행이 늘어나면서 루이비통의 트렁크도 편편한 사각형에 가벼운 소재로 달라졌다. 이도은 기자

철도여행이 늘어나면서 루이비통의 트렁크도 편편한 사각형에 가벼운 소재로 달라졌다. 이도은 기자

증기선 여행 중 빨래 가방으로 사용한 스티머백(왼쪽)은 2016년 '시티 스티머백(가운데)'의 모티브가 됐다. 이도은 기자

증기선 여행 중 빨래 가방으로 사용한 스티머백(왼쪽)은 2016년 '시티 스티머백(가운데)'의 모티브가 됐다. 이도은 기자

-제프 쿤스 이전에도 루이비통의 협업은 모험처럼 보인다.
"루이비통은 초기부터 외부에 열려 있었다. 쿠튀르 하우스(고급 맞춤)가 아닌 럭셔리 하우스이기 때문이다. 꼭 인 하우스 디자이너의 스케치만이 아니라, 고객 하나하나가 디자이너가 돼 맞춤 트렁크를 만들었다. 협업에서도 혁신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창의성과 대담함이다. 복사해 붙이는(Ctrl+C, Ctrl+V) 식은 안 된다."

 루이비통과 제프 쿤스가 협업한 '마스터 백'. [사진 루이비통]

루이비통과 제프 쿤스가 협업한 '마스터 백'. [사진 루이비통]

-카피와 관련한 이야긴가.
"구찌 2018 크루즈 컬렉션 일부가 1980~90년대 할렘 출신 디자이너 대퍼 댄(Dapper Dan)을 모방했다는 의혹이 있었다. 실제로 구찌 옷을 보면, 루이비통의 열렬한 팬이기도 한 댄이 루이비통의 과거 LV 로고로 작업한 옷과 거의 다르지 않았다. 물론 댄과는 아무 논의도 없이 구찌가 벌인 옳지 않은 일이었다. 아마도 구찌 디자이너가 빈티지를 보고 그것이 왜 1980년대와 연관이 있는지, 왜 대퍼 댄이 루이비통 모조품을 만들었는지 맥락을 전혀 이해하지 못한 것 같다. 우리의 협업은 이런 것과는 완전히 다르다. 제프 쿤스와의 협업은 2년이 걸렸다. 명화가 있는 박물관에 일일이 협조를 구하고, 프로젝트의 의미를 설명했다. 얼마 전 손잡았던 슈프림도 마찬가지다. 트렁크 하나를 만들기 위해 디자이너들이 뉴욕과 파리를 오가며 2년 간 소통했다. 요즘같은 디지털 세상에서 '올바른 방식'이 아니면 되겠나."

루이비통 로고를 모티브로 장식한 대퍼 댄의 모피 재킷(오른쪽)과 구찌의 2018 크루즈 컬렉션 의상. [사진 @Irpeoples 인스타 캡처] 

루이비통 로고를 모티브로 장식한 대퍼 댄의 모피 재킷(오른쪽)과 구찌의 2018 크루즈 컬렉션 의상. [사진 @Irpeoples 인스타 캡처]

-'디지털 세상'의 핵심이 뭘까. 
"대중이 모든 걸 알고 있다. 특히 주 소비층이 된 밀레니얼 세대는 진실성(authenticity)을 중시한다. 가르치려 들고 해석해주기보다 직접 전달되는 정보를 선호한다. 내가 아무리 루이비통에 대해 이야기한들, 친구들끼리 이 브랜드에 대해 말하는 것보다 더 귀를 기울이지 않는다. 한국의 카카오톡 같은 플랫폼이 중요한 이유다. "

'비행하라, 항해하라,여행하라' 한국 전시 맞춰 #마이클 버크 글로벌 CEO 국내 언론과 첫 단독 인터뷰 #"혁신은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무모함"

루이비통이 슈프림과 협업한 트렁크. 이도은 기자

루이비통이 슈프림과 협업한 트렁크. 이도은 기자

-비중이 커지는 온라인 판매에는 어떻게 대응하나. 
"루이비통은 1996년 이미 루이비통 닷컴(louisvuitton.com)을 만들면서 럭셔리 업계에서 가장 먼저 온라인 판매를 시작했다. '파란색 트렁크'처럼 좀 많이 이르긴 했다(웃음). 당시 사람들이 온라인에서 정보를 찾고 싶어해서한다는 걸 간파했기 때문이다. 온라인 판매를 좋고 나쁘다로 접근하면 안된다. '고객이 원한다'가 중요하다. 온·오프는 경쟁이 아니라 공존이다. 실제 두 플랫폼을 모두 이용하는 고객의 구매액이 한 곳만 이용하는 고객보다 평균 3배 정도 많다. 하지만 온라인이 아무리 중요해도 고객과 대화가 절단되는 상황에까지는 가고 싶지 않다. 알리바바에는 제품을 론칭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를 공유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

김연아 선수를 위해 제작된 스케이트 보관 트렁크. 이도은 기자.

김연아 선수를 위해 제작된 스케이트 보관 트렁크. 이도은 기자.

-어떤 가치인가.
"제품의 아름다움·서비스·팀워크·비전 등을 아우른다. 흔해 보이는 이러한 가치가 브랜드를 계속 트렌디하게 만드는 힘이다. 경영이라는 게 단순히 상업적인 접근만이 아닌 일종의 여정이다."

-한국을 포함해 아시아 시장의 성장이 둔화될 거라는 전망도 있다.
 "가짜 뉴스다. 중국은 특히 지금 시작에 불과하다. 1980년 루이비통이 처음 발 들일 때보다 훨씬 세련된 시장으로 발전했고 기성복이 가장 잘 팔리는 나라다. 일부 브랜드에서 유통 채널을 도매나 온라인으로 국한시키며 표면적 관계를 유지하고 있는데 이 시장에 좀더 진정성을 부여할 필요가 있다. 한국은 중국과 다르다. 훨씬 예민하고 패셔너블하다. 오히려 미국에 가깝다. 자동차·연예오락·음악 등이 할리우드와 경쟁하는 유일한 아시아 국가다. 럭셔리 시장에서 다양한 시나리오가 나타날 여지가 충분하다. "
이도은 기자 dangdol@joongang.co.kr

'클래식 트렁크' 세션에서 포즈를 취한 루이비통 마이클 버크 회장. 김경록 기자

'클래식 트렁크' 세션에서 포즈를 취한 루이비통 마이클 버크 회장. 김경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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