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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떻게 생각하세요] 반려동물 자가진료 범위 놓고 수의사들 반발 왜? "동물복지" VS "밥그릇 챙기기"

중앙일보

입력

지난 7일 오후 2시 경기도 수원시 세류동 두리동물병원. 이 병원 성낙현 원장(수원시수의사회 회장)이 4차 종합예방접종 전 유기견 세순이(생후 8개월)의 건강상태를 확인하는 중이었다.

자가진료 허용범위 안 '피하주사' 행위 포함 여부 논란 #수의계 “무분별한 자가진료 행위 학대나 다름 없어” 주장 #경남 김해서 자가진료 부작용으로 반려견 숨지는 사고 #백신접종 단순한 진료행위 아냐 숙련된 수의사가 해야 #동물약사계 “서민 부담 가중시키는 직능 이기주의” 맞서 #반려산업 커지면서 건강관리 외 비용지출도 만만치 않아

그는 세순이의 항문에 꽂았던 체온계 화면 속 온도가 38.3도로 정상을 나타내자, 눈으로 입안·귓속 등에 염증이 있는지 살폈다. 이후 청진기를 통해 고른 호흡상태까지 확인되자 냉장보관 중이던 백신 제제를 꺼냈다.

이어 간호사가 움직이지 못하도록 팔로 세순이의 몸을 감싸자 성 원장은 익숙한 솜씨로 세순이의 등 부위에 백신 1㎖를 접종했다. 그는 “자칫 투약량을 초과하거나 잘못 찌를 경우 심각한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7일 오후 수원 두리동물병원 성낙현 원장이 반려견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7일 오후 수원 두리동물병원 성낙현 원장이 반려견에게 백신을 접종하고 있다. 김민욱 기자

세순이가 맞은 주사는 ‘피하주사’다. 근육을 건드리지 않고 피부 아래층에 놓는 주사법이다. 요즘 이 피하주사를 놓고 ‘수의계’ 대 ‘동물약사계’를 중심으로 논란이 한창이다. 핵심은 반려견 피하주사를 반려견 보호자의 자가진료 허용범위 안에 포함하는 문제다.

수의계는 “무분별한 자가진료 행위는 학대나 다름없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동물약사계는 “시민의 부담을 가중하는 직능 이기주의”라고 맞서고 있다. 일반 시민들 역시 의견이 엇갈린다.

◇피하주사 논란 발단은= 농림축산식품부는 지난해 5월 비인간적인 ‘강아지 공장’ 문제가 불거지자 수의사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바뀐 법령은 다음 달 1일부터 전면 시행된다. 개정 이유는 분명했다. 현행 시행령이 자기가 기르는 가축에 대한 진료행위를 가능하게 하다 보니 제왕절개를 한 공장주를 처벌할 근거가 없었기 때문이다.

제12조(수의사 외의 사람이 할 수 있는 진료의 범위) 3항 ‘자기가 사육하는 동물에 대한 진료행위’를 삭제하고, 축산농가 조항을 신설했다. 강아지 공장은 축산농가에 해당하지 않는다.

하지만 시행령 개정에 맞춰 마련한 녹식품부 세부 행동지침(안) 자가진료 허용범위에 ▶약을 먹이거나 연고 등을 바르는 행위 ▶수의사의 진료 후 처방과 지도에 따라 행하는 투약행위 등 외에 ▶동물의 피하에 약을 주사하는 행위 등이 포함된 사실이 확인되자 논란이 촉발된 것이다.

반려견 백신제제.

반려견 백신제제.

지난달 19일 대전 인터시티호텔에서 열린 대한수의사회 임원 워크샵에서 이같은 농식품부의 지침이 알려졌다. 이후 피하주사 허용을 반대하는 수의계는 “피하주사 허용은 동물학대”라고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찬성하는 동물약사계는 “대표적인 직능이기주의”라고 맞서고 있다. 두 단체는 성명서를 내고, 농식품부에 자신들 단체의 입장을 지속적으로 전달하고 있다.

◇"피하주사 허용은 동물학대" 주장= 현직 수의사들은 심할 경우 죽음에까지 이르게 하는 자가진료-피하주사의 부작용을 너무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한다. 이 때문에 행동지침이 시행령 개정 취지를 퇴색시키고 있다는 게 수의계의 설명이다.

자가진료 중 백신 주사 바늘이 부러지면서 몸에 박힌 반려견의 엑스레이 사진. [사진 경기도수의사회]

자가진료 중 백신 주사 바늘이 부러지면서 몸에 박힌 반려견의 엑스레이 사진. [사진 경기도수의사회]

지난해 5월 경기도 고양 지역의 한 동물병원에 주사 바늘이 박힌 반려견이 이송된 사고가 있었다. 주인 A씨가 인터넷 검색을 통해 자가접종 방법을 배운 뒤 백신을 직접 구매, 접종하다 일어난 일이다. 반려견이 통증에 놀라 발버둥치면서 갑자기 주사바늘이 부러졌다고 한다. 통상 1만5000~2만5000원 사이인 예방접종비를 아끼려다 벌어진 일이다.

자가진료 부작용으로 혈변 등 증상을 보이고 있는 반려견. 끝내 숨졌다. [사진 경기도수의사회]

자가진료 부작용으로 혈변 등 증상을 보이고 있는 반려견. 끝내 숨졌다. [사진 경기도수의사회]

앞서 2014년 경남 김해에서는 백신 자가접종으로 인한 쇼크로 결국 반려견이 죽음에 이른 경우도 있었다. 5년생 말티즈 수컷이 자가접종한 후 과민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보호자가 급히 내원했을 때는 이미 아나필락시스 쇼크로 진행된 상태였다는 게 당시 내원 동물병원측의 설명이다. 이 반려견은 침흘림·구토·저체온·급성혈변 등 증상을 보이다 숨졌다.

인터넷상에서는 동물병원 외 백신접종이 가능한 애견숍을 묻는 질문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성식 경기도수의사회 회장은 “피하주사를 대수롭지 않게 주사하는 행위는 학대행위나 다름없다”며 “접종 전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 있는 병력청취나 건강상태 확인 등의 과정이 생략되고 과민반응에 대처할 골든타임도 놓치게 된다”고 말했다.

시민 윤혜연(25·여)씨는 “아토피가 심해 매월 20만원 가량의 진료비가 들지만 자가진료는 생각도 안해봤다”며 “괜히 주인의 잘못된 판단으로 반려견이 더 잘못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복수의 수의사들은 “반려견들이 말을 못하다 보니 보호자 입장에서는 여러가지 진료를 과잉행위로 볼 수 있다”면서 “하지만 의료비의 상당부분이 수년간 동결된 상태다. 수의계에서는 신뢰를 높이는 방안에 대한 자정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 4월 서울 강북구 북서울꿒의숲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고 있는 시민들 모습. [중앙포토]

지난 4월 서울 강북구 북서울꿒의숲에서 반려견과 함께 산책하고 있는 시민들 모습. [중앙포토]

◇"밥 그릇 챙기기" 비난도= 반려견들은 대체로 생후 1년생 전까지 5차례 종합백신을 맞는다. 이때 호흡기 질환을 예방하는 코로나 바이러스 백신 등을 차수에 따라 함께 맞기도 한다. 비용은 병원마다 다른데 보통 한 번 방문때 5만원 내외다.

5차 종합백신 이후에도 정기적으로 예방접종을 해야 한다. 동물약국에서 구입하면 3분의 1이하 가격으로 가격 부담을 줄일 수 있다고 한다. 애견숍에서 예방접종이 음성적으로 이뤄지는 이유다.

자가진료 범위에 피하주사를 포함해야 한다는 쪽은 서민부담 가중 완화를 이유로 들고 있다. 애견을 기르면서 기본적인 건강관리 외에도 사료·미용·질병치료 등에 상당한 비용이 지출되기 때문이다. 대한동물약국협회는 “사람의 경우에도 인슐린·성장호르몬 등을 자가 투약한다”며 “비용부담은 반려견 예방접종을 포기하게 만드는 결과를 불러올 것이다. 직능 이기주의 전형”이라고 비판했다.

이에 대해 이제용 농식품부 방역총괄과 사무관은 “행동지침을 놓고 수의사회 등과 협의를 진행 중이다”고 말했다.

수원·인천=김민욱 기자, 신유진(인천대 신방과 4년) 대학생 통신원 kim.minwo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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