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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멸종 처한 북극곰, 레서판다도 실과 천으로 재탄생시키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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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신의 작품 '고래' 앞에서 인형들을 안고 포즈를 취한 백은하 작가. 김춘식 기자

자신의 작품 '고래' 앞에서 인형들을 안고 포즈를 취한 백은하 작가. 김춘식 기자

강제로 사료를 먹여 비대해진 거위, 갈라진 거위 뱃속의 붉은 꽃무늬, 접시 위의 푸아그라…. 불편한 모습이 연상되지만 실제로는 알록달록한 실과 천으로 짜인 수예(手藝) 작품 '구스다운'이다. 5년차 작가인 백은하 작가(30)가 만들었다. 이달 28일까지 열리는 '라이프(LIFE)-천과 실로 그린 동물이야기' 전시회(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46길 6)를 열고 있다. 거위·토끼·호랑이 등 대중에 친근한 동물부터 부채머리수리·레서판다 등 희귀동물까지 다양한 동물이 묘사된 작품 30점이 전시돼 있다. 작품 크기(15x15cm~55x55cm)도 다양하다. 작품당 스무 가지 이상 원단이 고루 활용됐다.

이달 28일까지 '라이프' 전시회 여는 5년차 백은하 작가 #부채머리수리, 레서판다 등 희귀동물 등을 실과 천으로 일러스트화 #"대중이 관심 가졌으면 하는 바람"

구스다운, 2015

구스다운, 2015

백씨는 이처럼 실과 천을 소재로 활용하는 독특한 아이디어로 업계 주목을 끌고 있다. 그는 "천과 실은 의류 소재로 쓰이는 등 대중이 친근감을 느끼는 소재"라고 설명했다.

백씨는 작품으로 묘사하는 대상도 독특하다. 모피 등 의류 제작에 '희생'되거나, 멸종 위기에 처한 동물이다. "대중이 동물 보호에 관심을 가졌으면 하는 바람"에서란다.

그가 동물 보호에 관심을 들인 건 대학생 때다. 원래 미술가를 꿈꾼 백씨는 이화여대 패션디자인학과에 진학, 의류 제작을 공부했다. 그는 "실습에서 피모(皮毛)가 갈라진 동물을 보고 가슴 한켠이 먹먹했다"며 "동물의 아픔을 구현해 동물 보호의 관심을 끌어 올려야 겠단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헬로 아프리카(Hello Africa), 2017.

헬로 아프리카(Hello Africa), 2017.

헬로, 아틱(Hello Arctic), 2017.

헬로, 아틱(Hello Arctic), 2017.

백씨는 실과 천이 '동물 묘사'에 어울리는 소재란 점도 강조했다. "동물의 신체 일부가 잘리거나 산 채로 털이 뽑히는 모습은 대중이 불편하게 느낄 수 있어요. 거위의 갈린 배 안을 붉은 꽃무늬로 수놓는 식으로 작품의 거부감을 훨씬 줄일 수 있지요."

영감을 받는 계기도 다양하다. 2015년엔 영화 '대호'를 관람한 뒤 멸종 위기에 처한 시베리아 호랑이에 관심을 들여 '마지막 호랑이'를 제작했다. 지구 온난화 뉴스를 접하고 나선 북극을 배경으로 한 '안녕, 북극'(Hello Arctic)을 만들었다. 첫 전시회(2013년) 이후 백씨가 묘사한 희귀동물이 100종에 달한다.

마지막 호랑이, 2016.

마지막 호랑이, 2016.

고래, 2017.

고래, 2017.

반응도 좋다. 최근 한 관람객은 "다신 모피를 안 입겠다"고 했고, 세계자연기금(WWF) 관계자들이 동물 보호 프로젝트를 제안하기도 했다. 내달 일본서 열릴 전시회를 위해 출국한다는 백씨는 "사람들이 위기에 처한 동물에 공감하는데 이번 전시회가 도움이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조진형 기자 enish@joongang.co.kr

작품 '헬로 아프리카' 앞에서 인형을 가득 안고 포즈를 취한 백은하 작가. 김춘식 기자

작품 '헬로 아프리카' 앞에서 인형을 가득 안고 포즈를 취한 백은하 작가. 김춘식 기자

동물의 초상 시리즈, 2017.

동물의 초상 시리즈, 2017.

부채머리수리(Harpy eagle), 2017.

부채머리수리(Harpy eagle), 2017.

레서판다(lesser panda), 2017.

레서판다(lesser panda), 2017.

카라칼, 2017.

카라칼,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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