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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이기는 게 ‘월척’ … 흔들리는 세월 낚는 진종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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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매달 너댓 번 출조할 만큼 낚시를 즐기는 진종오는 “낚싯대를 잡으면 잡념이 사라진다”고 했다. 대구 금호지에서 낚시하는 진종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매달 너댓 번 출조할 만큼 낚시를 즐기는 진종오는 “낚싯대를 잡으면 잡념이 사라진다”고 했다. 대구 금호지에서 낚시하는 진종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대한사격연맹회장기 전국사격대회가 열린 지난 1일, 10m 공기권총 경기를 마친 진종오(38·KT)는 서둘러 짐을 챙겨 대회장인 대구사격장을 떴다. 부리나케 달려간 곳은 사격장 인근 금호지. 그는 자신의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에 늘 낚싯대를 갖고 다닌다. 물속에 낚싯줄을 던지고서야 숨을 돌렸다.

소문난 낚시광인 ‘사격의 신’ #낚시도 사격도 결국 자신과 싸움 #몰입하다 보면 집중력·인내심 생겨 #마음 비우는 국궁·사진촬영도 취미 #유럽 텃세에 주종목 50m 폐지될 판 #“처음엔 때려치울까 생각 했지만 … ”

'사격 황제' 진종오는 '낚시광'이다. 가짜 미끼를 쓰는 '루어낚시(Lure Fishing)'를 즐긴다. 태클 박스(미끼통)에는 플라스틱이나 금속 등으로 만든 가짜 미끼들이 가득했다. 그는 권총의 방아쇠를 당기듯 신중하게 낚싯줄을 캐스팅했다. 그리고는 능숙하게 릴을 감았다. 낚시 중이던 금호지를 찾아가 그를 인터뷰했다.

매달 너댓 번 출조할 만큼 낚시를 즐기는 진종오는 “낚싯대를 잡으면 잡념이 사라진다”고 했다. 대구 금호지에서 낚시하는 진종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매달 너댓 번 출조할 만큼 낚시를 즐기는 진종오는 “낚싯대를 잡으면 잡념이 사라진다”고 했다. 대구 금호지에서 낚시하는 진종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어떻게 낚시를 시작하게 됐을까. 진종오는 "고향이 강원 춘천인데 강이 많아 10살 때부터 낚시를 했다. 2004년 아테네 올림픽을 앞두고 전북 임실에서 합숙훈련을 했는데, 코치를 따라 낚시를 갔다가 30cm짜리 배스를 잡고는 손맛과 스릴에 반했다. 한 달에 너덧 번 낚시를 한다. 나주에서 대회가 끝나면 나주호를 찾고, 창원에서 대회가 끝나면 낙동강으로 향한다"고 소개했다. 쏘는 실력만큼이나 낚는 실력도 좋다는 게 주변의 전언이다.

낚시가 사격에도 도움이 될까. 진종오는 "도움이 된다"며 "사격은 스트레스가 큰 종목이다. 잠시 총을 내려놓고 낚싯대를 잡으면 잡념이 사라진다. 물고기 잡는 데 몰입하다 보면 집중력과 인내심도 생긴다. 낚시는 수시로 변하는 물속 상황을 분석하고 대처하는 일종의 두뇌 플레이라서 사격과 비슷하다. 낚시도 사격도 결국 자신과의 싸움이다"고 설명했다.

<p>진종오는 낚시·사진 촬영 등이 취미다. 대물 배스를 잡고 기념 촬영하는 진종오. [사진 진종오]</p>

진종오는 낚시·사진 촬영 등이 취미다. 대물 배스를 잡고 기념 촬영하는 진종오. [사진 진종오]

진종오에겐 또 다른 취미가 있다. 이것 역시 쏘는 것(shooting), 바로 사진 촬영이다. 캐논의 DSLR 카메라(5d mark4)를 주로 쓰며, 전시회에 참가한 적도 있다. 그는 "국제대회 출전이 많은데, 외국 가보면 새롭고 예쁜 풍경이 많아 2006년부터 사진촬영을 시작했다"며 "사격의 격발과 카메라 셔터를 누르는 느낌이 비슷하다. 비록 전문가만큼은 잘 찍지 못하지만, 삼각대 없이도 찍을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며 웃었다. 50m 밖 표적을 권총으로 적중시키는 그이기에 맨손으로 카메라를 들어도 손떨림 없이 찍을 수 있는 것이다.

DSLR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확인 중인 진종오. [사진 진종오]

DSLR 카메라로 찍은 사진을 확인 중인 진종오. [사진 진종오]

이밖에 진종오는 활(국궁)도 즐긴다. 그가 쏜 총알이 만점표적(10.9점)을 꿰뚫는 것처럼, 그의 화살도 과녁에 꽂힌다. 그는 "사격과 국궁은 정중앙을 맞힌다는 점에서 비슷하다. 사격은 평정심을 유지하는 게 중요한데, 국궁이 그런 쪽에 도움이 된다"고 소개했다.

진종오가 직접 찍은 수목원 사진. [사진 진종오]

진종오가 직접 찍은 수목원 사진. [사진 진종오]

그러고 보면 취미도 한결같이 사격의 연장선 위에 있다. 낚시와 사진촬영, 활쏘기를 통해 그는 좌우명인 진공묘유(眞空妙有, 마음을 비우면 오묘한 일이 일어난다)를 완성했다. 그는 절박한 순간에도 마음을 비울 줄 안다. 2016 리우 올림픽 50m 권총에서는 6.6점을 쏴 7위까지 떨어졌지만, 대역전 금메달로 마무리했다. 그는 "제일 중요한 순간에 몰입하고 나머지는 다 끝난 뒤 생각하자고 되뇐다. 그래서 열심히 총 쏘고 그 다음엔 열심히 논다"고 말했다.

진종오가 지난 1일 대구사격장에서 열린 대한사격연맹회장기 전국사격대회를 마친 뒤 10m공기권총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진종오가 지난 1일 대구사격장에서 열린 대한사격연맹회장기 전국사격대회를 마친 뒤 10m공기권총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세계 사격계에서 진종오는 '사격의 신(神)'이다. 2008년 베이징부터 2012년 런던, 2016년 리우까지 올림픽 남자 50m 권총에서 금메달을 땄다. 120년 올림픽 사격 역사에서 개인전 3연패는 처음이다. 지난달 20일 국제사격연맹(ISSF) 뮌헨 월드컵 50m 권총에서는 세계신기록(230.5점)을 세웠다.

진종오가 지난 1일 대구사격장에서 열린 대한사격연맹회장기 전국사격대회 10m공기권총 경기 중 생각에 잠겨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진종오가 지난 1일 대구사격장에서 열린 대한사격연맹회장기 전국사격대회 10m공기권총 경기 중 생각에 잠겨있다. 대구=프리랜서 공정식

2020년 도쿄올림픽까지, 50m권총 4연패도 가능할까. 안타깝게도 방아쇠 한번 못 당겨보고 좌절될 위기다. ISSF가 50m 권총 등 3종목을 폐지하고, 대신 10m 혼성 공기권총 등을 신설하는 도쿄올림픽 종목 변경안을 확정했기 때문이다.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남녀 종목간 균형을 맞추라고 권고해서다.

일각에서는 "사격 종목 중 1896년 제1회 아테네 올림픽부터 계속된 건 남자 50m 권총과 25m 속사권총 뿐이다. 진종오 등 아시아 선수들이 강세를 보이자 유럽에서 텃세를 부리고 있다"고 비판한다.

진종오는 "내가 명색이 ISSF 선수위원인데 내 종목을 없애다고 하길래 처음엔 때려칠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고 탄식했다. 실낱같은 희망은 일부 ISSF 회원국과 총기 및 실탄업체들이 종목 조정에 반발한다는 점이다. 오는 25일 ISSF 임시총회에서 재논의 예정인데 뒤집을 가능성은 작지만 있긴 있다.

진종오 프로필

진종오 프로필

대구=박린 기자 rpark7@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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