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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사이트] 테러·경제위기 해결할 파워맨 … 젊은 리더, 혁신 바람 타고 날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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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프랑스는 지난달 역사상 가장 젊은 대통령을 뽑았다.

41세 치프라스, 44세 트뤼도 이어 #마크롱, 만 39세에 프랑스 대통령 #나이보다 능력 중시하는 풍토 #“유럽 국가들 30대 장관 수두룩” #인터넷 기술 급속한 발달도 한몫 #SNS, 거대자금 캠페인보다 효과

1977년 12월 21일생인 에마뉘엘 마크롱은 올해 만 39세다. 프랑스 국민 평균 연령인 41세보다 두 살 적다.

마크롱 이전에 프랑스 최연소 대통령은 1848년 40세 나이로 권력을 잡은 루이 나폴레옹 보나파르트(나폴레옹 3세)였다. 현 정치체제가 들어선 이후엔 1974년 48세에 대통령이 된 발레리 지스카르데스탱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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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연합(EU) 통계청에 따르면 1950년 이후 프랑스 대통령의 선출 당시 평균 연령은 60세였다. 전례에 비춰 마크롱의 당선은 파격적이다. 하지만 영국·독일·프랑스·미국 등 주요 4개국에서 젊은 대통령 또는 총리 선출은 꾸준히 느는 추세다. 4개국의 대통령·총리와 해당 국민의 평균 연령차는 1960년대 38세에서 지난해 20세로 줄어들었다(EU 통계청).

영국에선 1954년 80세 윈스턴 처칠이 총리에 재선됐지만 70년대 중반 이후엔 60세가 넘는 총리가 나온 적이 없다. 독일도 60년대 콘라트 아데나워가 87세까지 14년간 총리를 지낸 후 그 연령이 점차 낮아져 98년 앙겔라 메르켈은 51세 때 당선됐다. 포스트 냉전시대 최연소 총리였다.

2000년대 들어 유럽 지도자는 확연하게 젊어졌다. 마크롱 같은 30대 지도자가 적지 않다. 2014년 샤를 미셸 벨기에 총리도 당시 39세 나이로 총리가 됐고, 마테오 렌치 전 이탈리아 총리도 마찬가지였다. 다만 렌치는 지난해 헌법 개정 국민투표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했다. 위리 라타스 에스토니아 총리와 볼로디미르 흐로이스만 우크라이나 총리는 지난해 마크롱보다도 한 살 적은 38세에 권력의 정점에 올랐다.

유럽 현대 정치사에서 젊은 지도자 최고봉은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다. 그는 1998년 35세에 총리에 올랐다. 2002년 총선 패배로 물러난 오르반은 2010년 다시 선출돼 현재까지 총리직을 맡고 있다.

알렉시스 치프라스 그리스 총리는 2015년 41세 나이로, 그리스 역사상 150년 만에 최연소 총리에 올랐고, 안제이 두다 폴란드 대통령은 2015년 43세로 대통령이 됐다. 드미트리 메드베데프 전 러시아 대통령 역시 2008년 43세로 러시아 최연소 대통령이 됐다.

데이비드 캐머런 전 영국 총리는 2010년 44세 나이에 다우닝 10번가(총리 관저) 주인이 됐다. 앞서 토니 블레어 전 영국 총리는 1997년 43세에 총리에 올랐다.

미국에서 최연소 대통령은 1901년 43세에 대통령이 된 시어도어 루스벨트. 하지만 저격 사건으로 숨진 전임 윌리엄 매킨리 대통령을 승계한 것이었고, 선출된 대통령으론 1961년 44세 때 취임한 존 F 케네디가 있다. 빌 클린턴은 46세, 버락 오바마는 47세에 대통령 취임 선서를 했다.

최근 영미권 최연소 지도자는 2015년 44세에 취임한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다. 그렇다면 왜 젊은 지도자들이 늘 까.

우선 테러와 경제난 등 현안을 제대로 해결 못하는 기성 정치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란 분석이다. 유럽은 몇 년 전부터 테러에 시달리고 있다. 중동에 근거를 둔 극단주의 추종자들은 서방의 대테러 작전에 맞서 유럽에서 테러를 벌이고 있다. 유럽엔 미국보다 중동 출신이 많고, 시리아 내전 등으로 난민까지 밀려들고 있다. 유럽이 테러의 온상이 되고 있는 이유다. 또 장기 불황에 빠진 경제는 유럽의 아랍인들을 더욱 어려움에 빠뜨리면서 사회적 불안을 키우고 있다. 결국 테러·난민·불황 등 어느 것 하나 기성 정치가 속 시원히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전혜원 국립외교원 교수는 “유럽은 전통적으로 좌우 정당정치가 뚜렷했는데 테러·난민·불황은 이념으로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며 “기성 정치에서 답을 찾지 못하자 변화와 개혁을 내세운 젊은 리더에게 표가 쏠린 것”이라고 말했다.

마크롱은 기성 정치에 실망한 유권자의 심리를 발 빠르게 포착했다. 지난해 사회당을 나와 중도정당 ‘앙마르슈(전진)’를 창당했다. 기성 정치와 멀어지자 오히려 지지율이 올랐다. 좌우를 넘나드는 실용적인 공약도 먹혔다.

덩컨 맥도널 그린피스대 교수는 허핑턴포스트에 “유럽의 모든 국가에서 사람들의 정당 지지 성향이 바뀌고 있다”며 “좌파·우파 등 이념적 성향을 버리고 현실적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춰 표를 던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런 면에서 마크롱은 1997년 좌도 우도 아닌 ‘제3의 길’을 내세워 총선에서 승리한 블레어 전 영국 총리에 비견되기도 한다. 유권자가 원하는 비전을 제시해 대권을 잡은 면에서, 타임지는 마크롱을 ‘유럽판 케네디’에 비유했다.

서정건 경희대 정치외교학부 교수는 “1960년대 미국의 미사일 기술이 소련에 추월당해 안보 위기가 고조됐을 때 케네디가 ‘뉴프런티어’ 슬로건을 들고나왔다”며 “유권자의 욕구를 잘 간파해 기존 정치권과 차별화에 성공한 건 클린턴, 오바마 전 대통령도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안정보다 변화를 추구할 때 젊은 지도자를 고른다는 연구 결과도 있다.

국제 사회과학저널 ‘리더십 계간지(The Leadership Quarterly)’ 2014년 보고서에 따르면 새로운 정보로 전례 없는 상황을 돌파해야 할 때 사람들은 젊은 지도자를 선호했다. 두 그룹에 각기 안정과 변화가 필요한 상황을 제시한 뒤 어떤 지도자를 고를지 선택하도록 했을 때 변화가 필요한 상황에선 젊은 지도자를, 안정 추구 상황에선 나이 든 지도자를 택했다는 것이다.

이 저널은 “기술·자원·사람의 이동이 변화무쌍한 현대사회에선 나이 든 지도자의 ‘경험’보다 젊은 지도자의 ‘창의력’을 높이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고 분석했다.

조홍식 숭실대 정치학과 교수는 “90년대에 인터넷 기술이 급속히 발달한 것도 젊은 정치인이 부상하게 된 요인”이라며 “과거엔 정당 시스템 속에서 자기 세력을 넓혀야 했다면, 지금은 소셜미디어 등을 통해 직접 대중에게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마크롱은 앙마르슈 창당 당시 IT 스타트업처럼 온라인 회원가입을 통해 지지자를 모집했다. 기성 정당이 전국에 사무소를 두고 거대한 자금을 지원하며 세력을 확대한 것과는 딴판이다.

오바마 전 대통령도 2008년 미 대선 때 정당 밖에서 대학생 등 자원봉사자들이 주축이 된 선거 캠페인을 펼쳐 효과를 거뒀다.

프랑스 정치를 전공한 조 교수는 유럽에서 젊은 지도자가 증가세를 보인 데 대해 “능력이 있으면 나이를 개의치 않는 문화적 배경도 한몫했다”며 “30대 장관이 수두룩한 이유”라고 말했다.

유럽 동구권에서 상대적으로 젊은 지도자가 많은 건 1989년 냉전 종식과 관련이 깊다는 분석이다. 전혜원 교수는 “사회주의가 붕괴하면서 자연스럽게 구세대가 퇴출되는 분위기가 조성됐고, 영어가 유창하고 자본주의 체제에 익숙한 젊은 정치인들이 승승장구하게 됐다”고 말했다.

세계는 지금 지도자 세대교체

글로벌 무대에 젊은 지도자 바람이 불고 있다.

유럽·영미권 정치 지도자 연령은 1950년대 이후 70~80대에서 50~60대, 2000년 들어선 30~40대로 내려오고 있다. 대형 테러, 경제 위기 등 돌발변수가 늘고, 기술 발전으로 현대사회가 복잡해지면서 과거와 차별되는 지도자상을 찾고 있다는 분석이다. 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는 젊은 정치인이 부상할 수 있는 유리한 환경이란 것이다.

반면 아프리카는 여전히 고령 지도자들이 군림하고 있어 대조적이다. 아시아는 유럽·영미권과 아프리카의 중간쯤 된다고 보면 된다. 한국의 상황은 어떨까.

백민정 기자 baek.minjeo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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