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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조 넘는 예산, 10년 마다 원점에서 재검토 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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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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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오후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새 정부 재정 구조개혁 할 때다’를 주제로 열린 정책토론회에서 참석자들이 발언하고 있다. [사진 건전재정포럼]

“허투루 쓰는 돈이 없는지 최소 10년에 한 번씩은 대대적인 세출예산 개혁 작업이 필요하다”

건전재정포럼 정책토론회 #총액배분자율편성은 낡은 시스템 #기존 사업 기득권화 등 부작용 생겨 #국정기획위, 재정개혁 논의 필요

400조 원이 넘는 나라 살림의 쓰임새를 재점검할 시기란 지적이 나왔다. 31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건전재정포럼·한국재정학회 정책토론회에서다. ‘신정부, 재정 구조개혁 할 때다’를 주제로 열린 이 날 토론회에서 발제를 맡은 정해방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전 기획예산처 차관)는 “화석화된 예산사업이 늘어나는 등 2004년 참여정부 시절 제도화된 ‘총액배분자율편성(Top-down·톱다운)’ 방식의 예산편성 시스템이 한계를 나타내고 있다”고 지적했다.

톱다운 방식은 분야별 재원 배분계획을 먼저 확정하고 각 부처가 전문성과 자율성을 갖고 사업별 예산을 편성하는 제도다. 이 방식에선 각 부처가 대략 전년과 비슷한 수준의 예산을 받는다. 정 교수는 “기존 사업의 수준을 유지하면서 약간의 새로운 사업을 추진하는 데 무리가 없기 때문에 자발적인 구조조정이 이뤄지지 않는다”며 “그러면서 기존 사업은 점점 기득권화돼 필요성이 없어져도 예산을 줄이기 힘든 상황에 부닥쳤다”고 지적했다. 이 시점에 한 번 정도 ‘바텀업(Bottom-up)’ 방식으로 전환해 세출 구조를 제로 베이스에서 따져보자는 게 정 교수의 주장이다. 기존 사업의 기득권을 인정하지 않고 원점에서 세출의 당위성을 검토해보자는 의미다. 정 교수는 “특히 수많은 보조금은 기득권의 온상”이라며 “관리 차원이 아니라 아예 틀을 바꿔야 한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발제자인 김정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원장도 인식을 같이했다. 김 부원장은 “한국은 현재 복지 세출의 급증과 이에 따른 국가부채 관리의 어려움, 재정건전성과 활성화 간 재정 기조의 부조화 등 ‘트릴레마(삼중고)’를 겪고 있다”고 진단했다. 김 부원장은 “적극적 재정정책과 재정개혁을 병행하며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며 “재량지출과 법정·경직성 경비를 망라한 과감한 세출 구조조정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배국환 재정성과연구원 원장은 “인수위 격인 국정기획자문위원회가 가동 중이지만 재정개혁에 관한 논의가 없는 것이 걱정스럽다”고 말했다.

토론을 맡은 박진 KDI 국제정책대학원 교수는 “재정이 해야 할 일과 그만할 일을 구분하는 게 먼저”라며 “가장 시급한 건 경제기능의 축소”라고 지적했다. 경제기능은 정부가 재정을 통해 민간 기업을 지원하거나 사회간접자본(SOC)을 건설하는 것을 말한다. 박 교수는 “한국의 경우 예산의 경제기능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기준으로 현저히 높지만 사회통합기능은 크게 낮다”며 “경제기능은 축소하고, 사회통합과 질서유지, 정책조정 기능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재정의 지방분권도 강조했다. 그는 특히 사업별로 용도가 정해진 현행 국고보조금 제도를 손 봐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지방자치단체에 보조금 총액을 주고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포괄보조금제를 강화해야 한다”며 “법인세의 지역별 차등감면제도 도입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반장식 서강대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은 “단기간에 재정 규모가 크게 늘었고, 정권 교체기마다 새로운 사업이 신설돼 부담이 갈수록 커지고 있다”며 “이 참에 재정사업의 적폐를 해소하지 않으면 경제 안정과 소득재분배라는 재정의 기본 기능이 퇴색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반 원장은 “민관합동으로 재정 전문가가 광범위하게 참여하는 ‘재정사업구조개혁 특별위원회(가칭)’를 설치해 전 부처의 세출사업을 하나하나 들여다보자”고 제안했다.

지출의 효율성을 도모하되 사회 갈등과 사회적 비용을 유발하는 분야에 대해서는 자원 배분의 우선순위를 높여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배 원장은 “지금은 과거에 없던 시장의 실패와 국가의 실패가 공존하는 시점”이라며 “국민이 받아들이는 불평등·불공정의 강도가 갈수록 높아지는 만큼 갈등관리 영역에서 국가의 역할을 더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장원석 기자 jang.wonseo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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