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과열…선거가 불안하다|투표 보름앞두고 폭력·인신공격등 심각|이러다가 선거날까지 아무일 없을까 우려|자기외 누가돼도 안된다는 생각은 금물|공명선거하고 결과에 승복해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5면

선거판국이 어떻게 되어가는 것인가. 선거운동기간의 절반을 보내고 투표일까지 겨우 보름을 앞둔 시점에서 선거양상이 이상과열 조짐을 보이고 있다.
선거의 전반적인 모습을 불안스런 시각으로 보게 만드는 무기미한 분위기 같은게 감축되고 있다.
갈수록 치열해지는 비방, 인신공격, 흑색선전, 도를 더해가는 부정선거시비와 노골화되는 지역감정, 유세장의 폭력사태….
선거에 임하는 정부·여당 자세가 총력동원의 인상을 풍기고 그에 맞서는 야당측 또한 필사적이다. 그런만큼 불안감도 증대되는 것 같다.
이러다가 투표일까지 아무 일없이 가기는 하는 것일까, 누가 되더라도 선거결과에 승복할수 있을 것인가, 누가 되더라도 선거후 혼란이 오는 것은 아닐까…. 그런 불안들이다.
『선거를 하긴 해야지요. 그렇지만 빨리 끝났으면 좋겠어요』라는 어느 택시운전기사의 말이 그런 불안감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것이다. 아닌게 아니라 그런 걱정들이 사실로 나타날 징후들이 보이고 있다.
29일 민정당 노태우후보가 광주에서 유세를 서둘러 끝내는 사태가 또 벌어졌다. 김영삼민주당후보가 유세를 못한 이래 광주에서 두번째 일어난 사태다. 이번에도 국회의원이 다치는등 부상자가 발생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에서는 뭔가 지난번과 다른 분위기 같은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단순히 지역감정으로 몰아버릴수 없는 요소들이 나타나고있다. 그런 분위기는 같은 날 비슷한 시각에 있은 김대중평민당후보의 유세장인 서울여의도에서도 느껴졌다.
『광주학살 노태우가 대통령이 웬말이냐』- 이런 플래카드가 곳곳에 나붙고 광주사태 진상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다. 살벌하다고 해야할지, 섬뜩하다고 해야할지 그런 주장과 구호와 유인물이 주최측과는 상관없이 학생층에 의해 범람하고 있었다. 그런가하면 28일 김영삼후보의 대구유세장에서는 12·12사태당시 계엄사령관이었던 정승화씨의 포한의 발언이 있었다. 『군율을 어기고 인간적 윤리를 짓밟은 부도덕한 패륜아…』 광주사태, 12·12사태등이 선거전면에 클로스업되면서 한·보복감 같은 감정들이 뒤얽히고 진상규명·책임추궁의 문제가 다시 제기되고 있는 것이다.
선거가 대통령을 뽑는 절차가 아니라 마치 생사의 게임이 되어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치보복이 없을 것이라는 강조가 오히려 역설적으로 들리기까지 한다.
어떻게든 이기지 않으면 안되는 게임이 되고만 느낌이다. 쌍방이 부정선거를 놓고 격렬히 공방전을 벌이는 것도 그때문인 것같다.
야당측은 여당측이 살아남기 위해 엄청난 자금을 살포하고 공무원을 동원하는등 온갖 수단을 다 동원하고 있다는 것이고, 여당측은 두김측이 별별수단을 다 쓰고 있다고 비난하는 실정이다.
선거에 이기는 것이 단순히 정권을 차지한다는 것 이상을 의미하는 절대절명의 것으로 여겨진다면 거기에 정상적인 선거방법이 통용되지 않는 것은 오히려 당연할지 모른다.
야당 역시 마찬가지다. 선거결과에 따라서는 우리 정치의 한시대가 청산될 수밖에 없다. 그와 같은 절박성을 인식하는 이상 야당측 두김씨에게도 이번선거가 이길수도, 질수도 있는 승부는 벌써 아닐지 모른다.
지난 2주일동안 선거전의 양상이 그런대로 온전히 유지돼온 것은 각 후보가 나름대로 승산을 믿고 있기 때문이라는 풀이도 나온다. 모두 자기가 이길줄 알고 열심히 뛰고 있는 것이지 질것으로 보이면 더 험하고 치열한 방법으로 나올 가능성이 있지 않겠느냐는 우려 섞인 추측들이 나오는 것이다.
상식적으로 판단해도 그렇다. 여당이 불리하다고 느껴지면 이른바 여당 프리미엄을 더욱 극성스럽게 활용할 것이고, 야당후보들이 세불리를 느낀다면 더욱 폭로전과 과격한 방법을 동원할 충동을 느끼게될 것이다.
이런 상황탓인지 정가의 밑바닥에는 선거정국의 전도를 불안하게 점치는 루머들이 흐르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실제 선거과정에 위험요인은 여러 가지로 나타날수 있다.
후보의 신변에 대한 위해 라든가 하는 일이 발생한다면 선거가 중도에서 좌절되는 상황이 생길수도 있다는 의구심 같은게 바로 그것이다.
여야가 각기 급진좌우세력의 주장을 내세워 자기들이 되지않으면 선거후 혼란이 조성된다고 경고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반선거적이다.
누가 되면 혼란이 오고, 누가 되면 국민이 용서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서로 힘을 과시하는 방향으로 나간다면 거기엔 벌써 선거의 논리는 없는 것이다.
어느 쪽이 비토그룹의 논리를, 다른 쪽이 급진장외의 주장을 원용한다면 선거의 의미는 퇴색하게 마련이다.
내가 이기면 승복해야 하고, 남이 되면 판을 흔들겠다는 생각이라면 구태여 선거를 할 필요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선거를 있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그것이 온 국민의 요구였기 때문이다. 그보다 그 선거가 진정한 선거이게 하는 것도 중요하다. 국민이 결과를 선택할 수 있도록 해야하기 때문이다.
그 이외의 다른 무엇을 가지고 판 자체를 어쩌겠다는 생각을 해서는 안될 것이다.
이번 선거가 필사의 게임이 되어서는 안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번 선거의 핵심쟁점이 되고 있는 광주사태, 12·12사태, 그리고 정치보복과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문제에 대해 후보들의 명백한 입장 천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본다.
최소한 선거에 참여한 세력이라면 그 선거에 대해서만큼은 의미를 부여해야 하지않나싶다.
그리고 그 선거결과에 대한 승복이 이뤄지자면 어느 쪽도 선거운동과정에서 공명하고 정정당당해야 한다는 것이 절대적인 전제일 것이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