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속 전 죄수복 입히는 관행 바뀐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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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4면

2015년 12월 명예훼손 혐의로 영장실질심사(구속 전 피의자 심문)를 받은 이모씨 등 3명은 심문 후 교도소로 이송됐다. 해당 법원에서 교도소보다 더 가까운 경찰서 유치장이 있었으나 이들은 관행대로 교도소로 보내졌다. 현재 형사소송법에는 영장실질심사 후 교도소·구치소 또는 경찰서 유치장에 유치할 수 있다고 돼 있어 항의할 수도 없었다. 아직 구속영장이 발부되지 않은 상황에서 이씨 등은 교도소 수용자들과 동일한 수감 절차를 밟았다. 옷과 소지품을 맡기고 죄수복을 입었다. 교도관들의 통제 속에서 목욕을 하고, 항문 검색 등 알몸 신체검사까지 받아야 했다.

인권위 권고에 검찰·법원 “수용” #수의 대신 운동복, 간단한 신검

같은 날 오후 법원은 이씨 등에 대한 구속영장을 기각했고, 이들은 집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이후 이씨는 “영장 결정 대기 중에 피해자들을 교도소로 보내 수용자처럼 취급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국가인권위원회에 진정을 냈다. 인권위는 지난해 11월 이들의 진정을 받아들여 지난 1월 해당 지방검찰청과 법원에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됐지만 아직 구속 여부가 결정되지 않은 피의자들을 일률적으로 교도소에 유치해 알몸 신체검사 등 일반 수용자와 동일한 입소 절차를 밟게 한 건 헌법 제10조에서 보장하는 인격권을 침해한 행위다”며 이 같은 관행을 개선하도록 권고했다.

하지만 관행은 계속됐다. 지난 1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박영수 특별검사팀이 첫 번째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해 구속영장 실질심사를 받은 뒤 서울구치소에 수감됐다. 이 부회장은 법원이 이튿날 새벽 구속영장을 기각하자 서울구치소에서 나와 귀가했다.

법무부는 30일 구속영장 발부 전에는 ▶내의를 입은 상태로 전자영상장비가 아닌 육안으로 신체검사를 하고 ▶대기 중 수용자복 대신 체육복을 입게 하며 ▶미결수용자와 분리해 수용하도록 절차를 고쳤다고 밝혔다. 법원 역시 “구속영장 발부 시 유치 장소를 교도소로 하지 않고 해양경비안전서 혹은 경찰서로 하겠다”고 인권위에 전했다.

이번 결정은 문재인 정부 들어 인권위가 처음 발표한 사법기관의 권고 수용 사례다. 지난 25일 문 대통령은 취임 후 첫 수석비서관회의에서 “각급 기관의 인권위 권고 수용률을 높이라”고 지시한 바 있다

인권위 내부에서는 전 정부들을 거치며 약화됐던 인권위 권고의 효력이 다시 커질 것이란 기대감이 퍼져 있다. 인권위 관계자는 “이 사례를 시작으로 인권위 권고에 대한 정부와 사법기관의 전향적인 움직임들이 더 확산될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홍상지 기자 hong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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