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서울 응암초 학생들 채소 섭취 확 늘어난 이유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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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오전 서울 응암초 4학년 1반 학생들이 옥상텃밭에서 손수 키운 채소를 수확하고 있다. 이 학교는 전체 학년에서 '텃밭교육'을 한다. 김경록 기자

지난 25일 오전 서울 응암초 4학년 1반 학생들이 옥상텃밭에서 손수 키운 채소를 수확하고 있다. 이 학교는 전체 학년에서 '텃밭교육'을 한다. 김경록 기자

“이건 치커리고요, 여기 줄기가 도톰한 친구는 셀러리에요. 쟤는 로메인 상추인데 로마인들이 즐겨 먹었던 상추여서 그런 이름이 붙어대요."

전교생 주1회 텃밭교육…옥상·공터에서 '도시농부' #학생이 치커리·아욱 등 채소 10여 종 손수 재배 #매월 마지막 목요일은 '쌈채소의 날' 행사 #식물 보며 "나도 어른스러워져야겠다"는 생각 #전문가들 "생명 키우는 만족감에 아이들 성숙"

지난 25일 오전 서울 응암초의 옥상텃밭. 4학년 조남현(10)군이 자신이 직접 재배한 채소들을 소개하며 환하게 웃었다. “제가 직접 씨를 뿌리고 물도 준 거예요. 싱싱하죠?” 조군이 내민 소쿠리에는 청경채와 아욱·고추 등 채소 10여 종이 가득 담겨 있었다. “농약도 안 뿌려서 완전 유기농이에요. 점심때 친구들과 나눠 먹을 건데 같이 드실래요?”

응암초에는 조군과 같은 도시농부가 368명 있다. 이 학교는 지난해 6학년들에게만 했던 텃밭교육을 올해 전교생에게로 확대했다. 지금은 1~6학년 모든 학생이 매주 한 번씩인 '텃밭' 수업에 밭을 가꾼다. 쉬는 시간에도 틈틈이 밭에 나온다. 지난 3월 학생들은 학교 옥상과 공터 등에 토마토·고구마 등 채소 15종을 직접 심었다.
이날은 조군이 속한 4학년 1반 학생들이 채소를 수확하는 날이었다. “선생님! 상추가 자꾸 찢어져요.” 한쪽에서 상추를 따던 박소희(10)양이 도움을 요청했다. 담임인 양영신 교사가 몸을 숙이며 말했다. “상추와 배추처럼 줄기와 잎이 붙어 있는 채소는 윗부분을 잡고 뜯으면 안 돼. 최대한 뿌리 가까운 곳을 잡아야 하는 거야.”

아이들은 40분 동안 구슬땀을 흘렸다. 바구니엔 아이들이 수확한 채소가 수북이 담겼다. 김민솔(10)양은 “조그만 씨앗이 이렇게 커다란 채소로 자란다는 게 정말 신기하다”며 “열심히 물을 준 채소일수록 더욱 잘 자란 것 같다”고 말했다. 양 교사는 “텃밭은 학생들에게 살아있는 교육의 장”이라며 “직접 채소를 재배하면서 책임감도 기르고 협동하는 법도 배운다”고 소개했다.

텃밭교육은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인성에 좋은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강승구(10)군은 “내가 보살피는 식물이 무럭무럭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좀 더 어른스러워져야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강군은 또 “‘바보’ 같은 나쁜 말을 잘 안 쓰게 됐다”고 덧붙였다. 김물결(10)군도 “평소에 싸우던 친구와 같은 텃밭을 맡게 됐는데 협동을 잘 하면서 사이가 좋아졌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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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텃밭교육을 전 학년으로 확대하면서 1년 새 학교폭력이 크게 줄었다. 교육부가 실시하는 학교폭력실태조사(매년 4월) 결과, 가해 응답률은 지난해(2.3%)의 3분의 1 수준(0.8%)으로 급감했다. 피해 응답률도 2.8%에서 1.6%로 줄었다. 이 학교 김인옥 교장은 “직접 식물을 길러 본 경험이 생명의 소중함을 깨닫게 하는 데 효과가 있던 것 같다”고 말했다.

텃밭교육은 학생들의 식습관도 바꿨다. 6학년 딸을 둔 이은숙 학부모회장은 “우리 애가 고기만 좋아했는데 편식이 사라졌다. 마트에서 장 볼 때 먼저 채소를 사자고 조를 정도”라고 자랑했다.
응암초에선 매월 마지막 주 목요일 점심 급식은 ‘쌈채소의 날’ 행사를 한다. 이 덕분에 채소 섭취량이 크게 늘었다. 학생 1인당 섭취량이 3월엔 평균 18.1g이었는데 5월엔 31.6g으로 급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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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암초가 텃밭교육을 확대하게 된 데는 2015년 9월 부임한 김 교장의 역할이 컸다. “처음 학교 와서 보니 6학년생들의 눈빛이 다르더라고요. 다른 학년보다 예의도 바르고 뭔가 따뜻한 기운이 느껴졌죠.” 김 교장은 몇 달 뒤에 그 이유를 텃밭교육에서 찾았다. 6학년 학생들만 텃밭교육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

텃밭교육을 전체 학년으로 확대하는 것이 쉽지만은 않았다. 학교 구성원 일부는 "예산과 인력 등이 부족해 실현 가능성이 낮다"며 반대했다. 김 교장은 지역복지단체와 교육지원청 등에 수소문한 끝에 '푸드포체인지'(Food for Change)라는 단체를 소개받았다. '바른 음식문화 개선'을 지향하는 공익단체다. 푸드포체인지는 텃밭교육을 담당해줄 전문 인려을 이 학교에 지원해주고, 텃밭 조성도 도와줬다.

응암초처럼 텃밭교육을 하는 초·중·고교는 서울에만 약 170여 곳. 2012년 10여 곳이 서울시교육청의 시범학교로 지정돼 텃밭교육을 시작했다. 5년 새 10배 이상 늘었다. 시교육청 권순주 장학사는 “학교텃밭의 교육적 효과가 크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텃밭교육 학교가 계속 증가하고 있다”고 말했다.

텃밭교육의 효과는 서울 종암초에서도 발견된다. 이 학교는 지난해 전 학년 텃밭교육을 하고 전교생 670여 명에게 설문조사를 했다. 그랬더니 "여럿이 함께 협동하는 즐거움과 수확의 기쁨을 느꼈다"는 학생이 98.1%나 됐다. "식물과 벌레 등 생명의 소중함을 알고 자연을 사랑하는 마음을 갖게 됐다"는 학생도 83.6%를 차지했다. 권 장학사는 “텃발교육을 하는 학교 대부분에서 인성 함양과 집중력 향상 등 효과를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 같은 학교 텃밭의 효과를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주의회복이론’으로 설명했다. 인공적인 환경에선 집중과 긴장이 계속돼 스트레스가 높아지지만 자연 환경을 접하면 휴식과 안정을 취할 수 있어 주의력이 회복된다는 설명이다. 곽 교수는 “고층빌딩이 많은 도시일수록 뉴욕의 센트럴파크 같은 녹지 확보가 중요하다. 선진국일수록 도시농부가 늘어나는 건 자연스런 현상"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자기 손으로 생명체를 기른다는 것에서 오는 만족감과 책임감은 아이들을 더욱 성숙하게 만든다”고 설명했다.

윤석만 기자 sa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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