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운 자식에게도 떡 주고 ‘고기 잡는 법’ 가르쳐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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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06면

혈연 해체 부르는 자녀 간 소송 막으려면

“다른 형제 편을 든 부모에게 XX놈, ○○년이라며 막말하는 경우도 있다.”

재산은 다 쓰고 가는 것도 방법 #유언 활성화해 분쟁 선제적 차단 #상속하지 말고 노후자금으로 활용

상속재산분할 심판, 부양료 심판 등 혈연 간 분쟁을 주로 담당해온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가 전한 법정 모습이다. 태어날 때부터 수십 년간 참아온 서운한 감정이 소송을 계기로 분출되는 탓에 당사자 대부분이 서로를 다시 안 보게 될 정도로 심하게 다툰다는 얘기다. 그는 “형제간에 서로를 원·피고라 부르는 건 그나마 나은 경우”라며 “어떤 결론을 내리든 혈연 해체라는 파국을 막기는 힘들다”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혈연 간 소송을 줄이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까. 전문가들은 무엇보다 자녀들을 차별 없이 공평하게 키우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마음 가는 자녀에게 더 많이 지원하고 재산도 몰아주고 싶은 생각이 들 수는 있지만 자신의 사후 벌어질 자녀들 간 소송을 막기 위해서는 이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특히 법률적으로는 유류분을 침해하지 않게 재산을 나눠주는 게 중요하다. 변희찬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는 “생전에 한 자식에게 증여를 많이 했다면 남은 재산은 다른 자녀들에게 더 많이 줘 최소한 유류분권(자신의 상속지분의 절반)은 보장하는 게 기본이다. 미운 자식에게도 떡을 줘야 한다는 얘기다. 전 재산을 사회에 기부하더라도 자식들 얘기를 잘 들어보고 먼저 설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재산을 다 쓰고 가는 것도 방법이다. 서울가정법원의 한 판사의 제안이다. “농반진반이지만 사석에선 자신이 살 집을 빼고 남은 재산을 모두 금반지로 바꾸라고 얘기한다. 그리고 자녀들이 찾아오면 금반지를 하나씩 주는 거다. 그렇게 하면 자녀들이 자주 찾아와서 좋고 사후에 다른 소리 하기도 힘들어진다. 미리 자녀들 기여에 맞게 적절히 베풀고 가는 방법도 고려해볼 만하다.”

부모 재산을 바라보는 사회적 시각과 문화도 달라져야 한다. 우병창 숙명여대 법학과 교수는 “헛된 기대를 많이 할수록 분쟁이 생기기 쉽다. 부모가 자기 재산을 감춰둘수록 자녀들은 생각이 많아진다. 제일 좋은 건 부모가 ‘나는 고기잡는 법을 알려주마. 너희는 스스로 잡아라. 내가 잡은 고기는 가난한 사람에게 나눠주고 간다’는 식으로 교육시키는 것이다. 그러면 다툴 일도 줄어들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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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언장을 쓰는 것도 중요하다. 재산 원소유자가 유류분을 고려해 재산을 배분해서 분쟁 소지를 미리 차단하자는 얘기다. 임채웅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는 “사후 법률관계를 유언 형식으로 미리 정해두는 것이 자녀들 간 분쟁을 막는 첫걸음이다. 다만 유언 효력을 인정하는 요건이 까다로운 만큼 치매 등 질환이 오기 전에 엄격히 따져서 하는 게 좋다”고 조언했다.

아예 유류분 제도 자체를 없애자는 주장도 나온다. 의무적으로 상속분을 보장해주지 말고 자기 재산은 자기 노후를 위해 알아서 처분하도록 하자는 얘기다. 서이종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상속은 한국 사회 불평등의 원인이다. 언론에선 대기업만 얘기하지만 중산층 사이에서도 상속은 많이 이뤄진다. 그런데 상속은 자녀들한테 다 해놓고 자기 노후는 국가가 복지를 통해 보장해 달라고 한다. 그건 공동체 지속을 위해 옳지 않다. 아예 돈 없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본인 노후는 본인이 책임지고 상속을 적게 하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고 지적했다.

박민제 기자, 나영인 인턴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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