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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품 말고 작품을 팔아라!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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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14면

덴마크의 디자이너 쓰레기통 ‘빕(Vipp)’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90년간 소비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덴마크의 디자이너 쓰레기통 ‘빕(Vipp)’은 높은 가격에도 불구하고 90년간 소비자들로부터 사랑받고 있다.

100만 원짜리 쓰레기통이 있다. 원통형으로 돼 있고, 발로 뚜껑을 열 수 있게 해주는 페달이 달려있으며, 모던한 디자인에 금속 마감이 정말 매끈하다. 1931년 설립된 덴마크 회사 빕(Vipp) 제품이다. 가격대는 다양한데 50만원 정도의 쓰레기통이 가장 잘 팔린다. 아, 변기 청소용 브러시는 20만원 정도면 살 수 있다.

김상훈의 컬처와 비즈니스 : 제품의 예술적 가치

전통적으로 기능적 가치가 중요한 쓰레기통과 같은 제품에 미적(aesthetic) 혹은 예술적 가치(artistic value)가 더해졌을 때 그 제품은 얼마만큼의 가격을 받아야 할까. 고작 변기 청소용 브러시에 20만원을 지불한 소비자는 분명 기능적 가치보다 미적 가치에 더 많은 대가를 지불한 것이 틀림없다. 결국 빕 쓰레기통을 사는 이유는 한 가지다. “넘넘 예뻐요!”(색색의 땡땡이가 프린트된 데미안 허스트 에디션도 있다) 이것을 빕의 제트 에그런트(Jette Egelund) 회장과 직원들이 모를 리 없다.

2007년 필라델피아에서 있었던 전미 경영학회의 심포지엄에서 이 브랜드가 논란이 됐다. ‘예술과 경영의 접목’을 주제로 한 세션에서 빕 쓰레기통의 성공사례에 대한 발표를 들은 경영학 대가 헨리 민쯔버그(Henry Mintzberg) 교수가 “제조원가 5만원짜리 제품을 50만원에 판다는 게 말이 되는가? 그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니다. 나는 소비자들이 3만원짜리 쓰레기통을 사고 나머지 돈을 기아와 질병 해결을 위해 싸우는 자선기관에 기부하기 바란다”고 말한 것이다.

그의 말이 옳다면, 과연 어느 정도의 기아 문제가 해결된 후에 전시회나 오페라에 갈 수 있는 자격이 발생하는가. 결국 이 논쟁은 ‘예술의 가치(value of art)’에 대한 극단적인 의견충돌을 보여주었다.

빕 쓰레기통은 제품(product)이 아니라 작품(work of art)이다! 그래도 그렇지 쓰레기통이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나요? 공장에서 대량으로 만들어지는 건데? 라고 반문하는 분들이 있겠지만, 증거가 있다. 빕 쓰레기통은 덴마크디자인센터에 영구 소장된 작품이다. 2006년에는 루브르 기획전시에 포함되었으며, 2009년에는 뉴욕 현대미술관(MoMA) 컬렉션이 되었다. 디자이너 카림 라시드는 빕을 “일상속에서 우리의 감각을 일깨우는 아트 오브제(objet d’art)”라 못박았다.

애플 아이팟은 뉴욕 MoMA가 소장한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애플 아이팟은 뉴욕 MoMA가 소장한 작품 중 하나가 됐다.

쓰레기통이 50만원, 그런데 잘 팔린다  

21세기 들어서면서 제품의 예술적 가치가 더욱 중시되고 있다. 실제로 애플 아이팟은 MoMA의 소장품 목록에 올라 있다. TV도 휴대폰도, 심지어 세탁기도 작품이 되었다.

물론 디자인을 완전 무시하고 만든 윤남택 가습기도 탁월한 기능적 가치 덕에 잘만 팔린다. 하지만 이 제품이 디자인까지 좋았더라면 업계를 평정하고 틀림없이 가습기계의 애플이 되었을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은 어느 때보다도 제품의 예술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비자가 많은 시대다. 요즘 유행하는 ‘가와이이(일본어로 ‘어머나 귀여워’라는 뜻) 마케팅’도 이런 트렌드를 반영한다. 요즘 소비자들은 예쁘게, 귀엽게만 만들어 준다면 얼마든지 충분한 대가를 지불할 용의가 있다. 어떤 이들은 심지어 미적 가치를 위해 기능을 희생할 의향도 가지고 있다. 필자도 ‘까짓 줌이 안되면 어때, 앙증맞은 빨간 라이카 로고가 붙은 짱 예쁜 카메라인걸’하고 거액을 지불한 경험이 있다.

요즘은 “이건 예술이야” “완전 작품이네”하는 제품들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가구나 인테리어 소품은 물론이고, 주방용품조차 예술적 가치가 많이 높아진 덕이다. 실제로 휘슬러(Fissler)는 냄비와 프라이팬을 예술로 승격시켰다. 종종 전시회를 열 정도다. 일본 사람들이 사족을 못쓰는 독일 마이센(Meissen)과 같은 명품 도자기는 물론, 스마트폰을 비롯한 디지털 기기와 선풍기·청소기·면도기 같은 가전제품, 오토바이와 자전거도 예술적 가치가 오히려 기능적 가치를 압도하기 시작했다. 다이슨·브라운·밀레·로지텍·두카티·브롬톤 등이 이 분야의 리더다. 거실에 두는 오디오와 스피커도 이제는 듣기 위해 사는 건지 보기 위해 사는 건지 헷갈릴 정도다. 하다못해 망치와 대패도 충분히 아름다우면 오브제가 될 수 있다(실제로 아는 미대 교수님 한 분이 수입산 대패를 매일 안아주고 쓰다듬고 한다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예쁘면 비싸도 산다, 예술을 ‘수혈’하라

그렇다면 어떻게 제품의 예술적 가치를 높일 수 있을까. 당연히 제품을 설계하고 제조하는 과정에서 예술가의 마음으로 장인정신을 가지고 한땀 한땀 세심함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하지만 (꼼수 같긴 하지만) 다른 방법도 있다. 아티스트에게 일부 제작을 의뢰하거나 컬래버레이션을 실행하는 것이 그것이다. 샤토 무통 로칠드는 와인 라벨을 피카소를 비롯한 저명 화가들에게 의뢰했고, 축하 카드로 유명한 홀마크는 살바도르 달리 같은 화가에게 크리스마스 카드 디자인을 의뢰했다.

아티스트나 작품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을 사용하는 것도 한 가지 대안이다. 광주요에서 만든 전통 증류식 소주 ‘화요’는 2010년 디자이너 엄주원씨의 도움을 받아 고려청자 버드나무 무늬병에서 영감을 받은 디자인으로 교체한 후 큰 성공을 거두었다. 프랑스의 시트로엥 자동차는 피카소에서 영감을 받았다고 하면서 감각적인 디자인의 시트로엥 C4 피카소 시리즈를 출시했다.

럭셔리 명품 브랜드들은 전시회를 자주 활용한다. 제품을 점포가 아닌 미술관에 전시하는 것은 특별한 예술적 의미를 획득하는 지름길이다. 에르메스·구찌·샤넬·디올·반클리프 아펠 등의 전시는 이미 우리에게 익숙하다. 직접 전시를 하지 않더라도 미술관이나 예술 행사와 브랜드와의 연관성을 높이는 것도 효과가 있다.

2016년 뉴욕 MoMA에서 공개된 삼성 세리프TV

2016년 뉴욕 MoMA에서 공개된 삼성 세리프TV

삼성전자는 가구 디자이너 로낭 & 에르완 부훌렉 형제가 디자인한 세리프TV를 영국 런던디자인페스티벌에서 처음 공개했고 이듬해인 2016년에는 뉴욕 MoMA에서 미국 론칭 행사를 했다. MoMA 뮤지엄숍에서 판매하는 유일한 TV다. 프랑스에서는 퐁피두예술문화센터와 봉마르셰 백화점에서만 판매한다. 이것은 “우리 TV는 예술이거든요”라고 말하는 영리한 방식이다.

제품의 예술적 가치를 높이는 것을 단순한 마케팅 술수로 생각해선 곤란하다. 아티스트 이름을 빌리고 높은 가격표만 붙여 놓는다고 예술적 제품이 되지는 않는다는 뜻이다. 소비자는 절대 바보가 아니기 때문이다. 기능적 가치든 예술적 가치든 제대로 된 가치를 제공하지 않으면 반짝 성공할 수는 있어도 빕 쓰레기통처럼 오래오래(90년간) 사랑받을 수 없다.

쓰레기통도 프라이팬도 ‘작품’이 될 수 있다! 아름다움에 가치를 부여하고, 예술적인 제품에 마땅한 대가를 지불하는 것은 결코 나쁘지 않은 일이다. 제품의 예술적 가치를 인정하는 사회가 되어야 예술가들의 가치 또한 인정받는 세상이 된다. 그것이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다. ●

김상훈 : 서울대 경영대학 교수. 미술경영협동과정 겸무교수. 아트 마케팅, 엔터테인먼트 마케팅 등 문화산업 전반에 걸쳐 마케팅 트렌드와 기법을 연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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