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K 석유 캐기 전계열사 총공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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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유정제업과 석유 개발사업을 하는 SK㈜뿐 아니라 SK그룹 주력 계열사들이 힘을 합쳐 해외 유전 확보에 나선다. SK㈜가 자금을 들고 입찰에 뛰어들던 기존 방식에서 벗어나겠다는 것이다. 전 계열사들이 함께 나서 전자정부 구축 등 국가 인프라까지 건설해 준다는 카드를 들고 유전 보유국과 협상하는 '패키지 딜(Package Deal)' 방식을 활용키로 했다.

SK그룹 관계자는 13일 "최근 열린 그룹 글로벌위원회에서 이 같은 방침을 정했다"며 "현재 알제리.리비아.베트남 등의 산유국과 패키지 딜을 할 채비를 갖췄다"고 밝혔다. SK그룹 글로벌위원회는 계열사의 해외 사업 협력을 논의하는 기구로 신헌철 SK㈜ 사장이 위원장을 맡고 있다.

SK그룹은 유전 보유국에 ▶SK㈜는 유전 탐사와 개발 등을 맡고▶SK텔레콤은 무선통신 시설을 구축하며▶SK건설은 각종 석유화학 플랜트나 도로.항만을 건설하고▶SK C&C는 정보기술(IT) 인프라를 설치해 준다는 제안을 한다. 예컨대 3000억원짜리 해외 유전이 있다면 돈은 1000억원쯤 내고 나머지 2000억원은 그에 상당하는 인프라를 건설해 주는 방식으로 유전을 확보한다는 게 SK의 전략이다. 인프라 구축에 참여하는 계열사는 유전 지분을 나눠갖고 나중에 퍼올린 원유를 팔아 수익을 낼 수 있다.

SK그룹이 해외 자원 확보에 계열사의 역량을 총 동원하는 것은 이 분야가 고수익 사업이어서다. 지난해 SK㈜는 석유개발 사업에서 매출 3354억원, 영업이익 2096억원의 실적을 올렸다. 영업이익률이 62.5%에 달한다. 또 지금까지 이 분야에 모두 15억 달러를 투자해 16억6000만 달러의 수익을 올렸다.

유전 개발은 이렇게 짭짤한 사업이어서 SK㈜는 물론 세계 에너지 기업들은 모두 유전.가스전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다. 그러나 SK㈜로서는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열세다. SK㈜는 올해 3400억원을 해외 자원 개발에 투자할 계획이다. 한 해 100억 달러(10조원) 이상을 쏟아 붓는 엑손모빌.BP 등 이른바 '석유 메이저'들과는 비교조차 안 된다. 그러나 패키지 딜 방식이라면 겨뤄볼 만하다. SK 입장에선 현찰이 훨씬 덜 들고, 유전 보유국 입장에선 인프라 구축이라는 부수 효과가 있어 입맛이 당긴다.

SK 유전개발 담당자는 "보유 유전을 입찰에 부치는 나라들 대부분이 인프라 구축에 목을 매는 개발도상국이어서 패키지 딜은 성공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그는 "산유국 중에 SK그룹에 플랜트 건설 등의 대가로 유전 개발권을 주겠다고 먼저 제의한 곳도 있을 정도"라고 덧붙였다.

현재 SK는 글로벌위원회 아래 해외 유전개발 사업 담당 임원을 두고 계열사 간의 협력 방안을 논의.조정하고 있다. 지난해 8월 한국전력은 한국석유공사와 함께 입찰에 참여해 나이지리아 해상 광구 국제 입찰에서 성공한 바 있다.

한전은 추정 매장량 20억 배럴 규모의 유전 두 곳 탐사권을 따냈다. 당시 나이지리아에 발전소를 건설해 주겠다고 한 것이 효과를 거둔 것으로 알려졌다. SK는 2005년 말 현재 페루.베트남.브라질 등 12개국 19개 광구에서 원유와 가스를 탐사.개발.생산한다. 지금까지 확보한 매장량은 총 4억2000만 배럴이다. 하루 생산량은 2만4000배럴로 국내 하루 소비량의 1% 정도다.

권혁주.임미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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