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취임 100일 ‘정치인’ 트럼프의 두 얼굴(2)] 중국과 북한엔…매드맨 행세하며 협박과 위협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시진핑 이어 김정은도 일보 후퇴 … 불확실성 증폭시키면서 상대방 굴복시켜

지난 4월 6일(현지시간) 정상회담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사진. 중앙포토

지난 4월 6일(현지시간) 정상회담 중인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오른쪽)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 사진. 중앙포토


미국의 항공모함 ‘칼빌슨’은 일본의 해상자위대와 공동훈련을 하면서 태평양을 북상, 동중국해를 지나 4월 하순 동해로 들어섰다. 미국 최대 원자력 항공모함과 일본 해상자위대(나가사키현 사세보 기지를 출항한 호위함 아시가라,사미다레 2척이 참가)의 동해에서의 훈련은 이례적인 것으로 미·일이 일체가 돼 북한에 대해 강력한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의도로 풀이된다. 또한 4월 25일, 토마호크 순항미사일 150발 이상을 탑재할 수 있는 세계 최대규모의 원자력잠수함 ‘미시건’이 부산항에 입항했다. 이는 조선인민군창설 85주년 기념일(4월 25일)을 시점으로 한 북한의 도발을 억제하기 위해 미국의 핵전략자산이 전격 출동한 것으로 보인다. 또한 이들 미국의 '무적함대'들을 한반도 해역에 출항시킴으로써 북한에 대한 압박의 수위를 계속 높이려고 했던 것 같다.

그에 앞서 3월 14, 15일에는 한·미·일 3국은 한국과 일본의 주변 해역에서 북한의 탄도미사일 탐지·추적훈련을 실시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4월 24일(미국시간), 일본 아베 총리와의 전화회담에서 북한을 더욱 압박하기로 의기투합했고, 4월 23일 밤에는 중국의 시진핑 주석과의 전화회담에서도 핵과 탄도미사일에 의한 도발행위를 일으킬 가능성이 있는 북한에 대해 중국이 더욱 압력을 가해 줄 것을 촉구했다.

‘트럼프라면 실제 북폭을 할 수도 있다’는 공포

4월 26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 첫 번째)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가운데)이 상원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한 대북정책 브리핑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 사진. 중앙포토

4월 26일 미국 백악관에서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왼쪽 첫 번째)과 마이크 펜스 부통령(가운데)이 상원의원 전원을 대상으로 한 대북정책 브리핑을 마친 뒤 이동하고 있다. / 사진. 중앙포토

북한이 6차 핵실험과 대륙간 탄도탄을 발사하면서 미국의 파워를 시험하려 든다면, 미국이 4월 7일 시리아를 공격했고, 4월 13일 ‘모든 폭탄의 어머니’로 불리는 대형폭탄 ‘GBU-43’으로 아프가니스탄의 이슬람국가(IS)를 공격한 것처럼, 북한에 대한 외과수술적 공격을 감행할 수도 있다는 게 트럼프 각료들의 최근 북한에 대한 경고이기도 했다. ‘모든 선택지는 테이블 위에 있다’는 미 국무장관 틸러슨의 말을 상기해 봐도 ‘북폭’ 시나리오가 개연성이 없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가 이렇게 북한에 대한 포위망을 강화하면서 ‘미친 듯이’ 실제행동으로 북한을 압박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북한은 4월 25일 일단은 도발적인 언동으로 미국에 맞섰다. 이날 조선 중앙TV는 ‘핵을 축으로 한 강력한 무력으로 미국의 숨통을 끊어 놓겠다’며 미국에 응수했다. 또한 김정은은 같은 날 핵실험과 탄도미사일 발사를 대신해, 장거리포 등 300~400문을 투입하여 동해안 원산 부근에서 실시된 최대규모의 포격훈련에 참가, 동해 등 한반도 해역에서 활동태세에 들어간 미 항공모함과 핵잠수함 등에 대한 견제와 무력시위를 지휘했다.

북한의 이 대규모 포격훈련의 진의는 무엇일까. 트럼프가 선제타격 등 군사옵션까지 만지작거리며 대북 압박작전을 전개하는 가운데, 김정은이 미국의 기세에 눌려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면, 이는 북한의 '젊은 카리스마' 김정은에게는 (정치적으로) 참을 수 없는 굴욕일 수 있다. 그것이 이번 원산 화력훈련으로 표출된 것으로 보인다. 김정은이 권좌에 오른 후 3회(2013년 2월, 2016년 1월, 2016년 9월)나 핵실험을 단행하고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을 개발·발사해 온 것은, 여차하면 돌발행위를 일으켜 상대방에 치명타를 입힐 수 있다는 공포를 심어 주기에 충분했다. 이른바 ‘매드맨 이론(Madman Theory)’에 입각한 행동으로, 상대방에 언제든지 핵무기를 탑재한 미사일을 쏠 수 있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위협을 가해, 상대방으로부터 양보를 얻어내려는 ‘미친 전략’인 것이다. 이 전략은 트럼프보다 앞서 김정은이 먼저 실행한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미국과 한국, 일본, 중국, 러시아 등 그 어느 나라도 컨트롤하지 못하는 ‘매드맨’으로 악명을 떨쳐온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 앞에 새로운 ‘강적’이 등장했다. 바로 도널드 트럼프다.

시진핑 ‘플로리다의 굴욕’

도널드 트럼프의 매드맨 전략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5월 5일 서해 최전방인 장재도 방어대를 시찰하고 있다. / 사진. 중앙포토

도널드 트럼프의 매드맨 전략에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이 어떻게 대응할지 주목된다. 김 위원장이 5월 5일 서해 최전방인 장재도 방어대를 시찰하고 있다. / 사진. 중앙포토

트럼프는 취임 후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겠다고 주장했고, 중국으로부터의 수입품에 고관세를 매기는 것을 검토할 수도 있다며 시진핑을 궁지로 몰았다. 올 3월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올해 경제성장율 목표를 6.5% 전후로 잡고 있었던 시진핑으로서는, 미국으로부터 고관세를 얻어맞고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되면 중국경제가 동력을 잃고 삽시간에 주저앉을 수 있는 것을 두려워했다. 트럼프는 4월 7일 시진핑을 플로리다주의 그의 리조트로 불러 놓은 자리에서 시리아에 대한 공격을 지시, ‘매드맨’으로서의 강한 인상을 시진핑에게 또 한 차례 심어줬다. 그 후 시진핑이 4월 12일과 24일(한국시간) 트럼프와의 전화회담에 응했고, 4월 25일에는 중국으로부터의 석유 수송에 이상이 생겼는지 평양 주유소들이 유류판매를 제한하거나 일부 휴업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4월 하순 들어 중국군의 북중 국경경계수준도 1급 전비 태세로 올려 졌고, 중국군은 북중 국경지대에 10만~20만 규모의 병력을 전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 과정을 보면, 트럼프 외교의 승리로 비친다. 그러니까 우선 ‘매드맨’처럼 행세하며 상대방에게 협박과 위협을 가해 (실제로 행동으로 옮길지 여부는 그 다음의 문제로 차치하면서) 양국 간 또는 국제관계에서 불확실성을 최대로 키워놓는 방식으로부터 시작한다. 그 불확실성을 피하려고 노력하는 상대방으로부터 타협이나 양보나 굴복을 얻어내면 성공하는 것이다. 상대방은 어디로 튈지, 무엇을 터뜨릴지. 어떤 돌발행위를 할지 모르는 트럼프를 두려워해 트럼프가 내미는 카드를 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한편 시진핑은 트럼프의 압박에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국내사정이 있었다. 외부에 알려진 것과 달리, 시진핑의 중국 내 지위는 그리 튼튼하지 못하다. 올 가을 당대회에서는 최고지도부(정치국 상무위원과 정치국 위원 25명) 선출을 놓고 최대파벌 공청단파(후진타오, 리커창, 후춘화 등)와 일대 결전을 치러야 한다. 또한 중국경제는 부동산 버블과 과잉설비 문제로 몸살을 앓고 있고, 미국 금리인상에 따른 자금(달러) 유출 가능성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진핑이 트럼프에게 계속 버텼다면, 중국이 환율조작국으로 지정돼 중국경제가 결정타를 맞고 중국체제의 위기를 가속화시켰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런 중국의 국내 사정이 시진핑에게 ‘플로리다의 굴욕’을 안겼을 것이라는 게 국제문제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매드맨 이론에 의거하는 트럼프의 ‘미친(또는 미친듯이 보이는)’ 행동의 다음 표적은 북한 김정은 조선노동당 위원장이다. 미국은 수시로 각종 한미연합군사훈련을 실시해 유사시 북한 사태에 대비해 왔고, 올 조선인민군 창설 85주년(4월 25일) 전후 시점에서는 원자력 항모와 잠수함을 한반도 해역에 배치시켜 북한을 더욱 압박하고 있다. 트럼프는 4월 24일 UN안보리 멤버국(회원국) 대사들을 백악관으로 불러 회담하면서 북한에 대해 지금까지 이상으로 강력하게 대응해 줄 것을 재촉하기도 했다. 또한 미국은 UN안보리 결의 등을 통해 북한에의 석유 수출 금지, 북한으로부터의 석탄과 희토류 등의 수입 금지, 북한의 금융자산 동결 등 경제제재에도 열을 올리고 있다. 그야말로 군사-외교-경제 등 전 부문을 연동시키며 북한 고사작전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것이다.

미중 회담 후 북한에 대한 입장 강경해진 중국

트럼프가 북한에 다양한 압박과 위협을 가하고 있는 가운데서도, 가장 강력하고 최종적인 수단은 역시 군사공격 시나리오인 ‘선제타격’이거나 ‘예방전쟁’ 옵션이다. 김정은 정권은 북한에 대한 이러한 군사공격 옵션이 거론되는 것만으로도, 시진핑에 이어 매드맨 이론에 입각한 트럼프 행동의 두 번째 타깃이자 ‘희생자’가 될 수도 있다. 선제공격을 실제로 할지 안 할지는 누구도 알지 못하는 불확실한 상황을 만들어 놓고, 북한에 대한 선제타격을 계속 떠드는 것만으로도 북한에게는 큰 위협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을 것이다.

‘미치광이’로서의 트럼프 효과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최근 중국 공산당 기관지인 환구시보의 논조가 바뀌고 있는 것도 한 예다. 4월 12일자 환구시보 사설은 “이달에 북한이 다시 도발행위를 일으킨다면, 중국사회는 북한으로의 석유 수출(북한의 석유수입)을 제한하는 등 이전에는 없었던 강력한 UN제재를 마다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라고 썼다. 이후에도 북한에 대한 비판적 기사와 경고를 이어오고 있다.

중국으로서는 ‘매드맨’ 트럼프의 군사공격 옵션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 북한을 컨트롤(제어)하기 위해 저리 나서고 있는 것으로 비쳐진다. 4월 12일은 시진핑과 트럼프가 전화통화를 한 날이다. 이 무렵 트럼프는 “북한의 위협에 대하여 중국의 국가주석과 어젯밤 아주 좋은 전화를 했다”고 트위터에 올렸다. 트럼프는 시진핑 주석과는 뜻이 잘 통하며 그는 미국에 협력할 것이라고 흥분된 어조로 전화 뒷얘기를 전했다.

그런데 환추시보는 그걸로 끝나지 않았다. 환구시보는 만약에 북한이 새 핵실험을 하거나 미국 쪽으로 ICBM을 발사해, 그 결과 미국이 최종옵션으로 북한에의 군사공격을 단행한다면, 중국이 ‘조중상호방위조약’을 지키기 위해 북한에 개입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분위기가 영향을 미쳤는지 북한도 한 발짝 뒤로 후퇴하는 모양새다. 4월 25일자 조선노동당 기관지 ‘노동신문’은 ‘미국이 남조선과 함께 무모한 선제공격의 망상을 계속한다면 사전통고 없이 북조선식의 무자비한 선제타격을 하여 침략의 본거지를 불마당으로 만들겠다’고 독설을 썼다.

김정은보다 더 매드맨처럼 행동하는 트럼프

4월 15일 김일성 탄생 105주년 기념 군사 퍼레이드에서 최룡해 조선노동당 부위원장은 “만약 미국이 무모한 핵 공격을 일으킨다면 북한식의 핵공격전으로 대항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4월 24일 조선중앙TV는 적들이 조금이라도 도발의 움직임을 보인다면 미국을 뿌리 채 초토화시켜 버리겠다고 강변했고, 같은 날 박용식 인민무력부장은 적들이 군사적으로 무모한 길을 선택한다면 핵 선제공격으로 침략자의 아성을 완전히 무너뜨리겠다고 호들갑을 떨었다. 언뜻 보면 엄청나게 센 도발적 말투였지만 자세히 들여다 보면, ‘미국이 먼저 무엇을 한다면 돌려주겠다’는 가정법으로 되어 있다. 이는 자기들부터 먼저 하지는 않겠다, 미국이 군사공격을 먼저 하지 않는다면 자기들은 그냥 조용히 있겠다는 우회적인 의사표시로 보여 진다.

4월 25일 조선인민군 창설 85주년에는 핵실험도 탄도미사일 발사도 없었다.

이렇게 되면 트럼프의 ‘매드맨’ 행동은 중국에 이어 북한에 대해서도 그대로 적중돼 효과를 봤다고 할 수 있다. 국제무대에서 ‘미치광이’로 행동하면, 그 ‘미치광이’로부터 그 다음에는 무슨 행동이 나올지 불확실성이 커지고, 그 불확실성이 곧 상대방을 위협하는 외교카드가 되어 상대방으로부터 양보나 타협이나 굴복을 받아낸다는 국제전략이다. 공화당계의 보수파 ‘싱크탱커’들은 원래 트럼프를 좋아하진 않았지만, ‘오바마 대통령이라면 결코 못 썼을 이 외교전략을 트럼프 정권에서는 쓸 수가 있겠구나’ 하고 가능성을 발견했을지 모른다. 그래서 트럼프의 성정(성깔)을 ‘전략상품화’해 ‘세련된 외교카드’로 만들어낸 것 같다. 공화당계인 아메리칸 엔터프라이즈 연구소와 백악관 일부 참모들이 '미치광이 트럼프 전략'을 만들어냈을 것이라는 전언도 있다.

연유가 어찌 됐건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개발을 못하게 되면, 그것은 곧 소극적 의미에서라도 국제평화에 기여할 수가 있을 것이다. ‘미친’ 트럼프는 급기야 2017년의 노벨상 후보로 떠오를 수도 있다. 시진핑이 거기에 ‘꼽사리’ 낄지도 모를 일이다. ‘매드맨 이론’을 신봉하고 실행한 사람이 노벨상을 받게 된다면 그 또한 엄청난 패러독스이다. 세상은 요지경이다. 그런데 트럼프가 나타나기 전의 예측불능의 ‘슈퍼 매드맨’은 김정은이었는데, 트럼프의 출현으로 김정은의 매드맨으로서의 ‘선점적 가치’는 크게 떨어진 것으로 여겨진다. 트럼프와 김정은 중 ‘과연 누가 더 매드맨인가’의 싸움은 일단 트럼프의 손이 올라간 것으로 보인다.

이규석 국제문제 컬럼니스트(동북아국제문제연구소장)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