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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자가 남자한테 물 뿌려?" 검열 이유도 가지가지…만화 검열의 역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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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계 블랙리스트' 사태로 창작의 자유와 문화적 다양성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 요즘, 눈여겨 볼만한 전시회가 17일 한국만화박물관에서 열린다.

한국만화박물관 '빼앗긴 창작의 자유 展' 기획전시 #5월 17일부터 7월 19일까지 작품 40여점 전시 #만화가 영상 인터뷰 등 다양한 자료도 함께

한국 만화 검열의 역사를 주제로 한 전시 '빼앗긴 창작의 자유 전'(한국만화영상진흥원 주관)이다. 전시는 한국 만화의 역사가 시작됐다고 할 수 있는 1900년대 초부터 시작된다. 크게 두 파트로 나뉜다. 첫 번째 '검열의 시간'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오늘날까지 이어져 온 만화 검열의 역사를 10년 단위로 시대순으로 확인할 수 있다. 한국 만화가 겪었던 사건들이 당시의 사회·정치적 상황을 알려주는 다양한 자료와 함께 전시된다.

두 번째 파트는 '빼앗긴 창작의 자유'다. 검열로 피해를 본 대표작들이 시사만화와 대중문화로 나뉘어 시대별로 전시된다. 시사만화 부문에서는 1909년 일제의 검열 때문에 먹칠된 채로 '대한민보'에 발표됐던 이도영의 삽화에서부터 1950년 이승만 정권을 비판했던 김성환의 '고바우 영감' 등 9개 작품이 전시된다.

대중만화부문에서는 주인공 이름을 변경해야 했던 박기준의 '두통이'에서부터 미성년자보호법 위반혐의로 6년간 법정 다툼을 치른 이현세의 '천국의 신화' 등의 작품이 공개된다. 이번 전시회를 통해 공개될 작품은 총 40여점이다.  전시는 7월 19일까지.

일부 전시된 작품과 당시 검열당했던 이유를 소개한다.

◇박기정 <레슬러>

박기정_레슬러(1965)[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박기정_레슬러(1965)[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1965년 박기정 '레슬러'의 최초 표지는 당시 세상의 빛을 보지 못했다. 표지 그림 속의 여자가 남자에게 물을 뿌린다는 이유였다.

◇김종래 <삼팔선>

김종래_삼팔선(1969)[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김종래_삼팔선(1969)[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1969년. 김종래의 '삼팔선'은 국군의 후퇴장면이 담고 있었다. 이때문에 "국군의 명예를 훼손한다"는 이유로 심의에 걸렸다.

◇장태산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

장태산_야수라 불리운 사나이(1979)[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장태산_야수라 불리운 사나이(1979)[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날로 먹는다"는 요즘 시쳇말이 검열의 이유가 된 작품도 있다. 1979년 장태산의 '야수라 불리운 사나이'에서 작가는 주인공의 공허한 감정을 어두운 빈 칸으로 그려넣었다. 이를 두고 당시 당국 심의실에서는 "날로 먹으려는 것 아니냐"고 문제를 제기해 지적을 받아야 했다.

◇길창덕 <0점 동자>

길창덕_0점동자(1981)[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길창덕_0점동자(1981)[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1981년 길창덕의 '0점 동자'는 책 제목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작품 연재가 조기 하차됐다. 하지만 정작 무엇이 저속하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아직까지 명확하지 않다.

◇이희재 <거미줄>

이희재_거미줄(1982)[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희재_거미줄(1982)[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1982년 이희재는 만화 '거미줄'에서 갓 태어난 쌍둥이 형제를 알몸으로 그렸다고 당국으로부터 수정 요구를 받는다. 하지만 작가가 이를 거부했고, 결국 편집부에서 기저귀를 그려 넣었다.

◇이현세 <공포의 외인구단>

이현세_공포의외인구단(1983)[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현세_공포의외인구단(1983)[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인물 표현도 함부로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1983년 이현세 작가는 '공포의 외인구단'을 그리며 인물의 심정을 표현하기 위해 눈 밑 그늘을 진하게 그려넣었다. 이에 당국에선 "눈 밑 그늘이 짙어 우울하다"며 눈을 그려 놓도록 지적했다.

◇이상무 <비둘기 합창>

이상무_비둘기합창(1987)[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이상무_비둘기합창(1987)[사진 한국만화영상진흥원]

남녀칠세부동석도 검열의 기준이 되던 시절이었다. 1987년 이상무는 '비둘기 합창'에서 단칸방에서 온 가족이 모여 자는 모습을 그려넣었다. 이를 두고서도 "큰 누나와 어린 남동생이 한 방에 자는 것은 적절치 않다"며 지적을 받았다.

노진호 기자 yesn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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