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行自部장관 해임안 신중해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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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한나라당 지도부가 김두관 행정자치부장관의 해임건의안을 국회에서 밀어붙일 태세다. 한총련 소속 일부 대학생의 미군부대 장갑차 점거 시위사건을 예방치 못한 데 대한 문책 성격이라고 한다. 그러나 이 사건이 행자부장관을 문책할 성격의 것인지, 과녁이 빗나가지는 않았는지 한나라당은 신중히 판단해야 한다.

물론 이 사건은 한.미 간에 외교적.군사적으로 큰 파문을 일으킨 사건이었다. 미군이 그 정도로 대응했기에 망정이지, 불상사라도 생겼다면 온 나라가 그 소용돌이에 휘말렸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경찰의 정보수집 미흡과 대책 소홀의 책임은 물어야 한다. 현행 집시법상의 결함이나 경찰 인력의 한계 등 경찰로서도 할 말이 많겠지만, 사건 발생 10여일이 지나도록 조사만 진행되고 있을 뿐 아무런 문책조치가 취해지지 않고 있는 데 대해선 질책받아 마땅하다. 정부는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수준으로 조속히 문책조치를 내놓아야 한다.

그렇다고 해도 행자부장관 해임건의안을 내는 것은 아무래도 지나치다. 법적으로 행자부장관은 총경 이상의 제청권과 경찰위원회 설치권, 치안에 관한 중요정책 수립 지휘권을 갖는다. 이는 실질적 지휘권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또 경찰 업무 전반을 지도.감독하는 위치에는 있지 않다. 정부조직법상 경찰청은 행자부의 독립외청이기 때문이다. 경찰이 집회 신고와 같은 일상적 업무를 행자부장관에게 보고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그런데도 야당이 행자부장관 해임건의안 의결을 강행한다면 정략적 목적이란 비판을 받을 수 있다. 혹시 일부 야당 지구당 피습사건에 대한 분풀이거나, 이 기회에 다른 장관들에게 본때를 보여주려는 것이 아니냐는 의심을 받을 수도 있다. 야당 내에서도 "소 잡는 연장으로 닭 잡으려 하느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는 상황 아닌가. 각료 해임건의안은 일종의 극약처방이다. 그렇기에 국민이 충분히 납득할 수 있고 대통령이 거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만 신중하게 검토돼야 한다. 지금 사회가 갈등으로 삐걱거리는 마당에 극한정치의 모습을 보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