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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고대훈의 시시각각

‘정치검찰’ 끝낼 수 있을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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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6면

고대훈 논설위원

고대훈 논설위원

‘검찰이 지배하는 대한민국’. 문재인 대통령의 인식이다. 그는 2011년 펴낸 『검찰을 생각한다』에서 “한국 검찰은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위해 행동한 적이 없다. 검찰과의 투쟁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이 책에는 ‘무소불위의 권력 검찰의 본질을 비판하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다. 그는 취임사에서 무소불위를 다시 언급했다. “그 어떤 권력기관도 무소불위 권력 행사를 하지 못하게 견제장치를 만들겠다”며 검찰을 적폐 청산 1호로 겨냥했다.

인적 청산과 권력 해체에 승부수 #조직적 저항과 반발 극복이 관건

문 대통령은 정검(政檢)유착을 비판한다. 그는 “검찰은 정치권과 소통하며 함께 통치하는 주체였다. 정치권력의 요구에 적극 부응한 대가로 검찰의 기득권을 지켜냈다”고 이해한다. 그래서 ‘정치검찰의 검찰정치’를 끊는 걸 검찰 개혁의 축으로 삼고, 인적 쇄신과 비대한 권력 해체라는 쌍끌이 방식으로 밀어붙일 기세다.

인사는 조직 장악을 위한 중요한 무기다. ‘암으로 죽어가면서도 다음 보직을 걱정하는 게 검사’라고 한다. 검사들은 자존심이 강하지만 출세와 사활이 걸린 인사 앞에선 약해진다. 계속 ‘물먹고’ 한직으로 밀려다니면 재기가 어려워지는 게 검찰의 조직 생리다.

조국 교수의 민정수석 발탁은 인사 태풍의 신호탄이다. 검찰을 배척하겠다는 선전포고다. 그는 문 대통령과 인식을 같이한다. 조 수석은 “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도 권력의 비리를 파헤치면서 권력과 타협하고 협상한다. 최고의 행동 준칙은 ‘조직을 옹위(擁衛)하라’다”고 단정한다(『진보집권플랜』, 2010년). 조 수석은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개입 의혹이 있는 정윤회 문건, 세월호, 최순실 사건을 재조사하겠다고 했다. ‘우병우의 검찰 인사와 수사 농단’을 파헤쳐 검찰 내 ‘우병우 사단’을 솎아내려는 전초전의 성격이 짙다.

법무부 장관과 검찰총장의 기용은 더 파격적일 공산이 크다. 특히 검사들의 인사권을 쥐고 있는 법무부 장관은 순혈주의, 관료이기주의, 서열주의를 깨는 인물을 앉힐 것이다. 2003년 초 노무현 정부의 첫 법무부 장관이던 강금실이 그랬다. 강금실 변호사를 천거한 사람이 문재인 당시 민정수석이었다. 강금실은 "검사 인사를 통해 힘을 보여주고 나니 조직이 장악되고 충성하는 분위기를 느꼈다”고 증언한다. 인사의 묘미와 무서움을 적절하게 나타낸 표현이다.

검사의 권위는 수사권과 경찰에 대한 수사지휘권에서 나온다. 사건을 창조할 수도, 있는 사건을 없는 것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는 절대 권력의 원천이다. 정치검찰이니 검찰정치니 하는 소리는 이런 독점적이고 배타적인 권한에서 비롯된다. 고위공직자의 비리에 대한 수사와 기소를 전담하는 고위공직자비리수사처(공수처) 설치, 수사권을 경찰에 넘기는 검경 수사권 조정은 검찰 권력의 무장해제를 의미한다. 권력형 부패 사건을 공수처에 넘겨주고, 일반 사건의 수사권마저 빼앗기면 검찰은 이빨 빠진 호랑이로 추락한다.

이처럼 초라한 숙명을 검찰이 순순히 받아들일까. 검찰은 여전히 막강한 권력집단이다. 검찰 일부에서 반격의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대형 게이트를 선제적으로 터뜨려 호의적 여론을 등에 업고 개혁 명분에 물타기를 하는 ‘희석용 수사’는 고전적 수법이다. 선거 과정의 고소·고발 사건도 언제든 불씨로 되살아날 수 있다. 송민순 회고록 파문 , SBS의 세월호 인양 고의 지연 의혹 보도 등은 수사 방향과 강도에 따라 어디로 튈지 모른다. 정치적 중립을 해치는 검찰 길들이기라는 논리를 앞세워 국민 정서에 호소할 수도 있다.

개혁의 성패는 검찰의 조직적 저항과 반발을 어떻게 돌파하느냐에 달렸다. 문 대통령은 노무현 정부에서 쓴맛을 이미 경험했다. 그리고 "모든 개혁은 문화의 개혁을 포함한다. 모든 제도의 뿌리에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라고 진단했다(『검찰을 생각한다』). 이 말대로 여론의 지지뿐 아니라 검사들의 자발적 공감을 끌어낼 때 개혁은 성공할 것이다.

고대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