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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재일기]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 독립시켜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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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5면

고란경제부 기자

고란경제부 기자

“당신네 기관 이름에는 왜 ‘서비스(Service)’가 들어가느냐?”

국민연금공단 기금운용본부 관계자가 해외 투자자들로부터 가끔 듣는 질문이란다. 공단 영문 이름은 ‘National Pension Service’다. 컨설팅 업체 타워스왓슨이 집계한 상위 20개 기금의 영문 이름은 대부분 ‘펀드(Fund)’로 끝난다. ‘보장(Security)’이 들어간 경우가 있긴 하지만 서비스가 들어간 다른 사례는 없다 .

이는 공단의 ‘미션(임무)’ 때문이다. ‘연금과 복지 서비스로 국민의 행복한 삶에 공헌’하는 것이다. 이를 위한 전략 목표가 ‘기금운용의 안정적인 수익 증대’이고, 이 목표 달성을 위한 산하 조직이 운용본부다.

운용본부는 웃자란 아이 같다. 정부 기관 사이에서 위상은 저만치 아래인데 굴리는 돈은 564조원(2월 말 현재)에 이른다.

대우조선해양 채무재조정 협상 때 웃자란 아이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허약한(?) 조직의 위상 탓에 끌려다녔다. 산업은행은 ‘이해관계자의 고통 분담’ 원칙을 들어 회사채 투자자에게도 50% 출자전환을 강제했다. 운용본부 입장에선 최선을 다했겠지만 제3자 입장에 보자면 일방적으로 밀렸다.

양 기관의 수장이 협상 막바지에야 만난 걸 보면 그렇다. 산은 회장은 차관급 인사가 가는 자리다. 반면 운용본부장은 차관급 공단 이사장의 산하 부서장에 불과하다.

평소 같았다면 ‘급’이 맞는 공단 이사장이 나섰겠다. 지금은 이사장이 공석이다. 문형표 전 이사장은 ‘최순실 게이트’에 연루돼 구속됐다. 설사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해도 협상을 주도했을지는 의문이다. 공단 이사장은 대체로 연금 전문가 몫이다.

여기에 공단 본부가 전주로 이사 가면서 벌어진 의사결정의 지연은 비효율의 전형을 보여줬다. 운용본부는 글로벌 투자가들이 많이 방문하는 곳이다. 국내 금융회사와 의사소통도 원활해야 한다. 그런데 운용본부는 공단 산하 조직이라는 이유로 국제공항도 없는 곳에 있다.

운용본부를 이대로 둘 수 없다. ‘서비스’도 해야 하는 공단에서 분리해 ‘기금’ 운용에 집중할 수 있는 독립 기관으로 만들어야 한다. 운용본부장은 한국은행 총재급의 위상으로, 최고 의사결정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는 금융통화위원회에 준하는 정도의 역할을 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하지만 “내년엔 지방선거, 그 다음엔 총선이 있는데 누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겠느냐”는 내부자의 말이 어째 뇌리에서 사라지지 않는다.

고란 경제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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