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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로운 죽음 인정해 달라는 게 과욕인가요" …고(故) 김초원 교사 아버지의 외로운 투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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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대가 녹았다더라구요. 얼마나 울부짖었는지….” 2014년 4월16일 가라앉는 세월호에서 학생들을 대피시키다 숨을 거둔 안산 단원고 고(故) 김초원(당시 26세)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59)씨의 목소리는 거칠었다. 지난달 성대를 떼어내고 인공 성대를 넣는 수술을 받았다.
12일 전인 4월16일은 딸의 생일이었다. “운명의 장난질에 하루도 목 놓아 울지 않은 날이 없었다”는 김씨는 ‘기간제 교사’였던 딸의 ‘순직’을 인정받기 위한 길고 고단한 싸움을 벌이고 있다. 2014년 6월 공무원연금공단이 순직 공무원의 유족에게 주는 보상금과 급여를 줄 수 없다고 거절한 뒤부터다. 현재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 도움을 받으며 법정 투쟁을 벌이고 있다.
딸과 함께 살던 경기도 안산의 집을 처분하고 낙향한 김씨를 28일 만났다. 김씨 부부는 경남 거창군 월평리 마을에서 노모(83)를 모시고 닭과 염소를 키우며 살고 있었다. 김씨는 “할머니에게는 미국에 유학갔다고 둘러대 초원이가 떠난 걸 아직 모른다”고 미리 주의를 당부했다.

김성욱씨, 3년 째 딸 순직 인정 위해 뛰어 "안 찾아가 본 데 없어. 울부짖다 성대 녹아" #4월16일은 김 교사의 26번째 생일…"주검이 된 딸 목엔 아이들이 선물한 목걸이 걸려" #안철수ㆍ문재인 "순직 인정 돕겠다" 약속에 작은 희망 …재판은 11일 결심 공판

28일 고향인 경남 거창군 월평리 집에서 만난 고(故)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는 "안산에 살 땐 대인 기피증도 생겼었는데. 고향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줘 이제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송봉근 기자

28일 고향인 경남 거창군 월평리 집에서 만난 고(故) 김초원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씨는 "안산에 살 땐 대인 기피증도 생겼었는데. 고향 사람들이 따뜻하게 대해줘 이제 살 것 같다"고 말했다. 사진=송봉근 기자

-순직을 인정받는 게 어떤 의미가 있나.
“그냥 죽은 것과 아이들을 구하려다 죽은 것은 의미가 다르잖아요. 자식도 남기지 못한 채 간 딸이 훗날 의인으로 기억되길 바라는 게 지나친 욕심인가요.”
-그것뿐인가.
“산재 보험금을 이미 받았기 때문에 ‘순직’을 인정받는다 해도 연금공단 보상금을 따로 받게 되는 것이 아니에요. 결혼도 안해서 국가유공자 혜택을 볼 가족도 없어요. 유공자로 등록되면 부모에게 국립공원 입장료 50% 할인 혜택이 있다고 합디다. 공무원들도 내가 돈 더 받으려고 떼쓰는 것으로 알더군요."

김씨는 딸의 명예를 찾아주기 위해 안 다녀본 곳이 없다고 했다. 국회의장도 만나고 국회의원도 만나 하소연했다. 국무총리실ㆍ인사혁신처ㆍ도교육청 등을 집요하게 찾아다녔다. 그 결과 대한변호사협회ㆍ국회 입법조사처ㆍ세월호 특별조사위원회 등이 세월호 참사로 희생된 11명의 교사 중 기간제 교사였던 김초원ㆍ이지혜 교사를 ‘순직 공무원’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취지의 의견을 냈고 최근에는 국가인권위도 인사혁신처에 순직 인정을 권고했지만 정부는 요지부동이다. 김씨는 “공무원들이 거부할 명분만 찾는다고 느꼈다”고 말했다. “처음에는 주당 근로시간이 35시간 미만이어서 안 된다더니 ‘주 40시간’이라고 적힌 임용 계약서를 들이밀었더니 ‘상시 근무자’가 아니라서 안된대요. 담임까지 맡아 다른 선생님들이랑 똑같이 일했는데 그게 무슨 궤변인가 싶더라고요.”

김씨가 딸을 마지막으로 본 건 수학여행을 떠나는 날 오후 짐을 챙기러 잠시 집에 들렀을 때였다.  “5층 숙소에서 선원들이랑 같이 나왔으면 무사히 탈출할 수 있었을텐데 4층으로 내려갔다더라고요. 떠올랐을 때 보니까 학생들한테는 전부 구명 조끼를 입혀줬는데 우리 애는 안 입었어요.”

-언제부터 선생님 되고 싶어했나.
“키도 크고 늘씬하니까 난 경찰이나 군인이 됐으면 했죠. 그런데 중3 때 화학선생님이 너무 예쁘다면서 그렇게 좋아했어요. 그때부터 자기도 선생님 되겠다고. 꿈꾸던대로 화학선생님이 됐지요. 공주대 사범대 4년 내내 전액 장학금 받고 다녔어요.”
-학생들은 선생님을 어떻게 기억하나.
“2학년 3반 담임 맡으면서 3학년 수업을 맡았아요. 학생들이랑 영화 보고 밥먹고. 지금도 학생들이 선생님이랑 같이 다니던 빵집 지나면 선생님 생각이 난대요. 사고 전날 밤에는 학생들이 친구가 아프다고 내려와 달래서 객실로 갔더니 케이크에 촛불 켜서 깜짝 생일파티를 해줬구요. 학생들이 돈 모아서 귀고리랑 목걸이 선물도 해주고. 시신 수습했을 때 보니 선물받은 귀고리ㆍ목걸이 걸고 있더라고요.”

요즘 김씨는 일말의 희망을 갖게 됐다고 했다. 대통령 선거 후보들이 앞다퉈 두 교사의 순직 인정을 돕겠다고 약속해서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와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지난 16일 안산 합동분향소에서 열린 세월호 3주기 추모행사에서 두 사람의 명예회복을 약속했다. 김씨는 “상식에 희망을 걸고 있다”고 말했다.

거창=유길용 기자 yu.gilyong@joongang.co.kr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학생들이 2015년 4월 16일 김초원 교사를 위해 생일 축하 편지를 써 앨범으로 묶었다. [김성욱씨 제공] 

세월호에서 살아 돌아온 학생들이 2015년 4월 16일 김초원 교사를 위해 생일 축하 편지를 써 앨범으로 묶었다. [김성욱씨 제공]

죽어서도 차별 … '기간제 교사'에 '순직'인정 길 열릴까

 지난 18일 세월호 참사 당시 학생들과 함께 숨진 안산 단원고 교사 이모(당시 32세)씨를 국가유공자로 예우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이씨의 아내가 ‘순직 군경의 유족’과 같은 예우를 해줄 수 없다고 처분한 인천보훈지청을 상대로 낸 소송이었다. 이 사건에서 인천지법 행정1단독 소병진 판사는 “거부 처분을 취소하라”며 이씨 아내의 손을 들어줬다.

지난달 8일 수원지법도 이씨와 함께 희생된 전모 교사 등 4명에 대해 같은 취지의 판결을 했다. 국가유공자법상 ‘순직 군경’으로 인정되면 ‘순직 공무원’에 비해 보상금·부양가족수당·유족 교육 및 취업지원 등과 관련해 더 나은 예우를 받게 된다. 소 판사는 “세월호 사건과 같은 특별한 재난 및 위급 상황에서는 자신의 생명과 신체에 대한 고도의 위험에도 불구하고 교사로서 어린 학생들의 생명을 보호해야 하는 것이 법령 등에 따른 임무”라며 “망인을 순직 군경에 준해 예우하고 보호해야 할 필요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세월호 참사 유족들에게 다소나마 위로가 돼 줄 판결이었지만 고(故) 김초원·이지혜 교사의 유족들에겐 도움이 되지 못했다. 두 교사는 ‘기간제 교사’라는 이유로 ‘순직 군경’은커녕 ‘순직 공무원’으로도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공무원연금공단과 인사혁신처는 “기간제 교사는 근로자일 뿐 공무원이 아니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김 교사의 아버지 김성욱(59)씨는 지난해 6월 공무원연금공단을 상대로 소송(유족급여 및 유족보상금 신청 반려 처분 취소 소송)을 냈다.

서울행정법원에서 진행 중인 재판에서 양측은 ‘상시 공무에 종사하는 자’의 범위를 놓고 팽팽히 맞서 있다. 공단 측은 “기간제 교원은 정규 교원의 결원을 보충하거나 특정 교과를 한시적으로 담당하게 하기 위한 한시적 임용 제도여서 상시 공무에 종사하는 자로 볼 수 없다”는 입장이다. 계약직인 기간제 교사는 신분·근무기간·보수 등에서도 차이가 있다는 점도 공무원연금법이 적용되지 않는 이유로 들고 있다.

이에 대해 김씨를 무료 변론하는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윤지영 변호사는 “당연히 상시 공무에 종사했던 교육공무원으로 봐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변호사는 “두 교사는 자신이 맡은 과목을 지도한 것 외에 2학년 3반과 7반 담임 업무와 생활기록부 행정 업무까지 맡았다. 다른 정규 교원과 다를 바 없이 일했다”고 설명했다. 또 “‘상시’의 반대말은 ‘미리 정하지 않고 그때그때 필요에 따라’라는 의미의 ‘임시’다. 미리 기간을 정해 일하는 기간제 교사는 임시 교사가 아니다”고 덧붙였다.

1년 남짓 계속된 재판은 5월 11일 결심 공판을 앞두고 있다. 지난해 교육부가 집계한 전국의 기간제 교원 수는 4만6666명이다.
임장혁 기자·변호사 im.janghyu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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