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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리포트] ‘장애인의 날’ 대선 후보를 보는 그들의 시선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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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별 철폐, 등급제 폐지, 인권 증진, 예산 확충…. 제37회 장애인의 날이었던 20일 각 대선 후보들은 '장애인 표심'을 잡기 위한 장밋빛 정책을 앞다퉈 제시했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강원도 춘천에서 열린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 참석했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는 장애인 단체 관계자들과 간담회를 가졌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와 유승민 바른정당 후보, 심상정 정의당 후보도 '장애인 차별 해소'를 한목소리로 내세웠다.

20일 제37회 장애인의 날 맞춰 후보별 '장밋빛 공약' 제시 #장애인들은 "공약 나와도 달라진 거 없어, 실천이 중요" #"장애인 삶에 대한 관심부터...맨날 속지만 또 속아봐야죠"

 하지만 이날 대선 후보들의 유세 현장에서 만난 장애인들과 그 가족의 표정에선 '공약'과 '현실'의 온도 차가 느껴졌다. 1400여 개 장애인 단체로 구성된 '2017 대선장애인연대'는 "중요성 인식과 실천 의지가 없는 허울뿐인 장애인 공약을 확인했다"는 논평을 내놓기도 했다. 대선을 바라보는 장애인들의 생각, 그리고 그들이 원하는 대통령은 어떤 모습일까.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일 강원 춘천시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7회 장애인의 날 강원도 기념식을 찾아 장애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20일 강원 춘천시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서 열린 제37회 장애인의 날 강원도 기념식을 찾아 장애인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춘천에선
문 후보가 이날 오전 11시께 장애인의 날 기념식 참석차 강원대 백령아트센터에 들어서자 입구에 있던 사람들 사이에서 환호성과 박수가 쏟아졌다. 하지만 전동 휠체어를 탄 신상덕(70)씨는 이런 모습을 멀찌감치서 지켜보고 있었다. 신씨는 "경추를 다쳐서 하체가 마비됐고 등 쪽도 감각이 둔해요. 감각이 살아있는 건 그나마 가슴 위쪽 정도다"면서 "지체 장애 1급이고 장애 얻은 지는 46년 됐어요"라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에게 ‘대선’이라는 단어를 꺼내자 "어제(19일) 토론회 보니까 장애인 공약이 없던데…"라는 답변이 바로 돌아왔다. 그는 "공약이 나와도 안 바뀌니까 기대가 안 된다. 선거일만 지나면 다 까먹는 거지"라며 "4월 20일 장애인의 날도 마찬가지다. 매번 바꾸겠다고 하지만 달라진 게 없어"라면서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장애인에게 제일 와 닿는 정책은 뭘까. 신씨는 "장애인 정책은 현장에 가봐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장애인도 맘 편히 돌아다닐 수 있는 이동권이 제일 필요하다. 화장실 같은 공공 시설 활용도 체형과 장애에 따라 제각각인데 이를 고려한 정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문재인 후보 주위로 몰린 인파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지체 장애인 신상덕씨의 뒷모습. 정종훈 기자

문재인 후보 주위로 몰린 인파를 멀리서 바라보고 있는 지체 장애인 신상덕씨의 뒷모습. 정종훈 기자

장애인 가족들도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지적발달장애를 가진 '아들' 김모(21)씨의 손을 잡고 기념식을 찾은 '엄마' 최모(47)씨는 한숨부터 쉬었다. 최씨는 "장애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부터 바꿔야 해요. 하지만 예산 늘리고, 법 바꾸는 것만 공약하지 장애인의 삶에 대한 배려와 관심은 전혀 깔려 있지 않죠“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선에 대한 관심을 접지는 않겠다고 했다. "장애인이든 비장애인이든 똑같이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줄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번 선거는 무조건 투표할 거에요. 맨날 속지만 그래도 한 번 더 속아봐야죠…."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0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내 장애인복지 관련 단체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 후보가 20일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 내 장애인복지 관련 단체를 방문해 직원들을 격려하고 있다. [사진공동취재단]

#서울에선
이날 오후 2시 서울 영등포구 이룸센터에 안 후보가 들어섰다. 이룸센터는 ▶중앙장애아동발달장애인지원센터 ▶한국장애인개발원 ▶한국장애인단체총연합회 등 장애인 단체들이 자리잡고 있다. 19대 국회 때 민주당 비례대표였던 최동익 전 의원이 안 후보를 맞이했다. 최 전 의원은 시각장애인이다.

안 후보가 도착하기 전 간담회 장소에선 작은 소란이 있었다. 안 후보 양옆에 기다란 소파가 있었는데 행사에 참여한 장애인 단체에서 ”장애인들과 함께 하는 행사에선 한쪽은 휠체어를 탄 사람들을 위해 비워줘야 한다”고 말해 소파를 치웠다.

전동 휠체어를 탄 조민규(39)씨는 현장에서 안 후보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장애인들도 사회 활동을 자유롭게 할 수 있도록 제도를 갖춰야 한다"며 "장애인 정책을 들어보러 왔다"고 말했다. 조씨는 안 후보가 약속 시간보다 10분 가량 늦자 중간 중간 휴대폰을 켜서 시간을 확인하며 "시간을 안 지키네"라고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안 후보의 공약 발표를 들은 조씨는 "사실 후보별 장애인 공약은 대동소이하다"며 "누가 약속을 지킬지가 더 중요한데 그런면에서 안 후보나 문 후보 대신 그동안 약자의 편에서 싸워온 심상정 정의당 후보를 지지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안철수 후보와 장애인 단체들의 간담회장에서 한 청각장애인이 자신의 요구 사항을 스케치북에 적어서 안 후보에게 질의하는 모습. 안효성 기자

안철수 후보와 장애인 단체들의 간담회장에서 한 청각장애인이 자신의 요구 사항을 스케치북에 적어서 안 후보에게 질의하는 모습. 안효성 기자

 이룸센터에 있는 장애인 단체에서 일하는 박지수(31)씨는 이날 안 후보의 정책 발표 막바지에서야 간담회장에 들어왔다. 안 후보의 지지자라고 밝힌 박씨는 "엘리베이터가 만원이라서 늦게 왔다"며 "그래도 직접 얼굴을 보니 신뢰가 간다"고 말했다. 안 후보의 공약에 대해서는 "지난번에도 공약 설명회를 해서 공약 내용은 어느 정도 알고 있다"며 "중요한 건 역시 장애인 공약을 실천하는 게 아니겠냐"고 말했다.

'장애인의 날' 대선 후보 공약은...

 임상욱(41)씨는 안 후보의 공약을 들은 후 "너무 광범위하게 말해 추가적으로 공약 내용을 좀 더 알아봐야겠다"며 "매 대선마다 비슷한 공약이 나오는데 역시 하나를 하더라도 제대로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마침 이날 문 후보와 안 후보는 장애등급제 폐지와 부양의무제 단계적 폐지 등 유사한 공약을 내놨다.

정종훈·안효성 기자 sakeho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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