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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믿습니까?” 물으면 “아멘!” … 이건 중세시대 박제화된 신앙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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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종교개혁 500년 ② 이정배 전 감신대 교수

14일 서울 부암동 현장아카데미에서 인터뷰 하는 이정배 목사.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1절을 가슴에 품고 산다고 했다. “내가 너희를 자유하게 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이자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4일 서울 부암동 현장아카데미에서 인터뷰 하는 이정배 목사.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1절을 가슴에 품고 산다고 했다. “내가 너희를 자유하게 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이자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종교개혁은 제삿날 기억하듯이 기념하는 날이 아니다. 종교개혁은 지금도 계속돼야 하는 절실한 과제다.”

루터 종교개혁 본질은 ‘저항’인데 #요즘 교회, 순종을 믿음과 동일화 #‘오직 믿음, 오직 성서’의 메시지 #특권과 배타적 의식으로 왜곡도 #종교·제도·먹고사는 문제에 매인 #노예의 삶 벗어나는 게 부활의 길

14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북한산 기슭에서 이정배(62·현장아카데미 원장·목사) 전 감리교신학대 교수를 만났다. 올해는 종교개혁 500주년이다. 이 원장에게 ‘종교개혁의 심장’을 물었다.

그는 인터뷰 서두에 단어 하나를 꺼냈다. ‘프로테스탄트(Protestant)’. ‘저항’ 혹은 ‘저항하다’라는 뜻이다. 1529년 독일의 제국 의회에서 마르틴 루터가 황제 카를 5세 등 가톨릭 권력자들 앞에서 굽히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항변한 데서 유래했다. 이후 사람들은 종교개혁가들을 ‘프로테스탄트’라고 불렀다. 이 원장은 “종교개혁의 정신은 바로 이 ‘저항’이라는 말 속에 담겨 있다”고 했다.

루터가 독일 제국의회에 참석해 황제와 영주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항변하고 있다.

루터가 독일 제국의회에 참석해 황제와 영주 앞에서 주눅들지 않고 자신의 신앙을 항변하고 있다.

무엇에 대한 저항인가.
“자기가 믿는 종교 전통에 대한 저항이다. 불합리한 국가적 권위와 제도적 시스템에 대한 저항이다. 그리고 개인의 신앙 양식에 대한 저항이다.”
왜 그렇게 저항해야 하나.
“루터의 신앙은 한 마디로 ‘저항’이었다. 그건 본질과 근원을 향하는 저항이었다. 그럼 오늘날 우리의 신앙은 어떨까. ‘저항’이라는 단어를 잃어버렸다. 교회에는 그 자리에 다른 단어들이 들어서 있다.”
‘저항’의 자리에 들어선 건 어떤 단어들인가.
“순종이니, 복종이니 하는 말이다. 교회는 이런 말들을 ‘믿음’과 동일화시킨다. ‘순종=믿음’이고, ‘복종=믿음’이다. 그래서 종교에 대한 저항, 국가에 대한 저항, 개인적 삶의 양식에 대한 저항이 상실돼 버렸다. 500년 전 종교개혁의 핵심 키워드는 ‘저항’이었는데 말이다. 단순히 저항만을 위한 편협한 저항을 말하는 게 아니다. 예수로 돌아가고, 본질로 돌아가기 위한 저항이다.”
종교개혁 시리즈 지난 기사

중세의 유럽은 종교사회였다. 평민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었고 글도 몰랐다. 라틴어 성경은 성직자들의 전유물이었다. 사람들은 자기 구원을 위해 온갖 선행을 쌓아야 하거나 많은 돈을 주고 면벌부(면죄부)를 구입해야 했다. 구원을 위한 비용 부담은 너무나 컸다. 그로 인한 사람들의 고통도 컸다. 박제화된 교리, 박제화된 신앙 때문이었다.

이에 루터는 반기를 들었다. 이 원장은 그 이유도 설명했다. “도덕적 행위를 강조하는 게 중세의 신앙 양식이었다. 루터는 이걸 뒤바꾸었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를 주창했다. 한 개인의 내면적 하나님에 대한 신뢰, 그런 직접적 관계에 방점을 찍었다. 루터는 그게 신앙의 근본이라고 설파했다.”

루터가 숨어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던 방. 당시 루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루터가 숨어서 라틴어 성경을 독일어로 번역했던방. 당시 루터의 모습을 그린 그림이 걸려 있다.

그렇다면 오늘날은 어떤가.
“시간이 흐르면서 루터에 대한 온갖 교리가 생겨났다. 지금은 그런 교리를 따르고 신봉하는 것을 믿음이라고 여기는 풍토가 만연하다. ‘믿습니까?’ 물으면 ‘아멘!’하면 되는 식이다. 안타깝게도 루터가 무너뜨리고자 했던 중세의 박제화된 신앙으로 우리는 돌아가고 있다. 이런 방식의 신앙 구조는 심각한 문제를 낳는다.”
어떤 문제를 야기하나.
“우리는 기독교가 로마를 기독교화한 걸로 알고 있다. 그게 아니다. 로마가 기독교를 로마화한 거다. 그게 기독교 첫 1000년의 역사였다. 루터는 그걸 뛰어넘었다. 루터의 종교개혁으로 인해 비로소 ‘근대’와 ‘자본주의’라는 새로운 가치가 태동했다. 개신교 안에서 태어난 게 자본주의였다. 그런데 지금은 어떤가. 자본주의가 개신교를 철저히 자본주의화시키고 말았다. 이 시대는 다시 ‘루터’를 뛰어넘기를 요구한다.”

이 원장은 영국 BBC에서 발표했던 국가별 욕망지수(2008년)를 예로 들었다. “대한민국은 OECD국가 중에 가장 욕망지수가 높은 나라로 나왔다. 나는 거기서 제 역할을 하지 못한 개신교를 본다. 종교는 욕망과 반비례해야 옳은데, 욕망과 종교가 비례해버리고 말았다. ‘목사의 크기는 교회의 크기와 일치한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심지어 교회가 기업처럼 세습되기도 한다. 그게 한국 개신교의 자화상이다.”

내로라하는 대형 교회도 세습 강행을 서슴지 않는다. 왜 그런가.
“교회 안의 기득권 세력들이 주도권을 놓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담임목사만 세습되는 게 아니라 기득권 그룹까지 살아남게 된다. 북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김일성-김정일-김정은으로 내려오는 3대 세습뿐만 아니라 북한 사회의 기득권층도 동시에 세습이 이루어지는 거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는 종교개혁의 3대 원리다. 이건 욕망을 내려놓을 때 가능한 것 아닌가.
“맞는 말이다. 그런데 교회는 물질적 축복과 신의 은총을 동일시한다. 자본주의 세계에서 승리자가 되라고 한다. 교회가 크면 목사도 떵떵거리고 산다. 그런데 교회가 작으면 목사가 2중직, 3중직을 해야 한다. 퀵서비스도 뛰고, 야간 대리운전을 하는 목사도 꽤 있다. 작은 교회의 목사에게 그건 삶의 실존이다. 개신교 교회는 ‘빈익빈, 부익부’라는 자본주의 양식이 그대로 작동한다. 중앙집권적 체제인 가톨릭이나 원불교에는 큰 교회(교당)와 작은 교회(교당)간 분배의 양식이 있다. 개신교에는 그게 없다.”
14일 서울 부암동 현장아카데미에서 인터뷰 하는 이정배 목사.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1절을 가슴에 품고 산다고 했다. “내가 너희를 자유하게 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이자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14일 서울 부암동 현장아카데미에서 인터뷰 하는 이정배 목사. 신약성경 갈라디아서 5장1절을 가슴에 품고 산다고 했다. “내가 너희를 자유하게 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이자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했다. [권혁재 사진전문기자]

루터가 주창했던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는 “예수로 돌아가자, 진리로 돌아가자”는 강력한 메시지였다. 이 원장은 “오늘날 교회에서는 엉뚱하게 왜곡된 채 받아들여지고 있다. 오직 믿음, 오직 은총, 오직 성서의 ‘오직’이라는 말이 특권 의식과 배타적 의식을 갖게 했다. 믿지 않는 이들과 우리는 다르다는 특권 의식이다. 그게 자본주의적 가치와 결합하면서 ‘물질적 축복’을 신의 은총으로 강조하는 쪽으로 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왜곡된 ‘오직’의 의미는 루터의 본래 메시지와 분명히 다르다. 왜 사람들은 그걸 보지 못하나.
“기독교 신앙은 개인의 자각이 출발선이다. 그러려면 고독의 시간이 필요하다. 그런데 교회는 집단적 인습에 사람들이 길들여지도록 만든다. 교회에 가면 내가 무엇이 잘못됐는지 돌아볼 여지가 오히려 없어져 버린다. 교회는 사람들을 집단화한다. 개인을 고독하게 만들지 않는다. 우리는 고독을 통해 자신의 내면으로 들어간다. 루터의 종교개혁도 거기서 출발했다.”
루터의 저항 정신이 사회를 향할 때는 어찌 되나. 충돌과 불협화음만 만들지는 않나.
“중세의 교회는 성직자 중심의 하이어라키(hierarchy·위계) 사회였다. 루터는 그걸 허물었다. 교회를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했다. 여기에는 어떠한 계급도 없고, 서로 하는 역할만 다를 뿐이라고 했다. 이러한 루터의 교회론은 유럽에서 민주적인 의회제도가 태동하는 모태가 됐다. 그러니 루터의 저항 정신은 우리로 하여금 ‘체제 밖의 사유’를 가능하게 한다.”
체제 밖의 사유, 예를 들면.
“예수님은 당시 이스라엘 실정법에 도전하신 분이다. 유대 율법에 ‘안식일을 어긴 자는 사형에 처한다’고 돼있다. 예수님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해서 있는 게 아니라,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고 했다. 예수의 하나님 나라는 체제 안의 사유가 아니었다.”
그럼 무엇인가.
"체제 밖의 사유였다. 가령 예수는 늦게 온 자나 일찍 온 자나 똑같이 한 달란트를 줬다. 세상 기준으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또 하나님 나라를 비유하면서 ‘되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을 초대해 잔치를 베풀어라. 오히려 그들이 되갚을까를 염려하라’고 했다. 우리도 이 사회가 기정사실화하는 틀을 끊임없이 넘어서야 한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그런 사유를 가르쳐 주셨다. 기존의 틀, 체제 밖에 대한 상상 말이다. 나는 그게 하나님 나라의 사상이라고 생각한다.”

인터뷰 말미에 가슴에 품고 사는 딱 하나의 성경 구절을 물었다. 이 원장은 갈라디아서 5장1절을 뽑았다. "내가 너희를 자유하게 했으니, 다시는 종의 멍에를 메지 말아라.” 이건 루터가 가장 좋아했던 구절이기도 하다. "이게 종교개혁의 정신이라고 본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근원적 한계, 실존적 한계, 종교적 한계까지 모두 자유롭게 하려고 이 세상에 오신 분이다. 종교의 노예, 제도의 노예, 먹고 사는 문제의 노예가 되지 말라고 했다. 그래서 우리가 안식일의 주인이지, 안식일이 우리의 주인이 아니라고 했다. 나는 거기에 부활의 길이 있다고 본다.”

마침 4월16일이 부활절이었다. 루터의 종교개혁과 예수의 부활은 맥이 통한다. 이 원장은 "이 시대에 종교개혁이 절실하다”며 사도 바울의 말을 인용했다.

"바울은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의 부활도 없다’고 했다. 다시 말해 우리의 부활이 없으면 예수의 부활도 없다는 뜻이다. 하나님은 우리의 희망이지만, 우리도 하나님의 희망이다.”

이정배 원장이 추천하는 책 3권

● 『노예냐 자유냐』 (베르댜예프 지음, 늘봄)=국가와 종교, 자본, 예술, 섹스에 대한 인간의 노예성을 해부한 책. 인간이 얼마나 노예처럼 살고 있는지 비판하며, 그걸 극복하는 방식으로 ‘인간의 상상력’을 강조한다.

● 『역사에 대하여』 (발터 벤야민 지음, 길) =지금까지 역사는 진보한다고 믿었다. 저자는 ‘과거를 구원하지 않으면 역사는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말한다. 과거의 무수한 실패한 자들을 소환해 구원하지 않으면 미래는 없다고 말한다.

● 『다석 강의』 (다석 유영모 지음, 현암사)=다석은 한글을 ‘천문(天文)’이라고 했다. ‘하늘의 글’이란 뜻이다. 그 나라의 언어로 신학을 하는 것이 맞다. 한국적으로 신학을 하고, 한국적으로 사유하려면 이 책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정배 원장

1955년 서울 출생. 대광 중·고에서 기독교 정신을 배웠다. 감리교 신학대에서 변선환 선생을 사사. 스위스 바젤대에서 5년간 유학하고, 유교와 기독교의 만남을 주제로 논문을 썼다. 이후 김흥호 목사를 통해 다석 유영모 사상을 접했다. 감리교 신학대 교수로 20년간 일했다. 교수직을 걸고 학내 불합리한 전횡에 맞섰다가 결국 사퇴했다. 최근에는 현장아카데미를 설립해 연구와 수행을 병행하면서 ‘작은 교회 운동’을 펼치고 있다.

백성호 기자 vangogh@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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