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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은 ‘그날’을 기억한다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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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7호 26면

CRITICISM 음표로 기록된 세월호

[뉴시스]

[뉴시스]

2014년 4월,  
“작품을 구상하고 이제 본격적인 작곡으로 들어갈 수 있겠구나 할 무렵 세월호 참사가 일어났다. 움직이지 말고 기다리라는 방송을 믿고 극도의 불안 가운데서도 얌전히 자리를 지키다가 형용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죽어갔을 그 꽃다운 넋들… 그들의 죽음은 도대체 무엇을 위한 희생이란 말인가…. 나는 서서히 기울어지면서 바닷물 속으로 빠져가는 배를 화면으로 지켜보며, 아무것도 해줄 수 없다는 자괴감에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리고 곧 치밀어 오르는 분노로 몸을 떨었다… 준비한 곡을 나는 도저히 쓸 수 없었다. 엄청난 빚을 진 것만 같아 어떤 일이고 도무지 손에 잡히지가 않았다. 숨져간 이들을 위해 무엇이든 지금 하지 않으면 앞으로 어떤 일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다. 생각을 거듭한 끝에 원래의 계획을 바꾸어 그들의 넋을 달래는 진혼곡을 먼저 쓰기로 했다.”(정태봉, ‘진혼 II’ 작곡가 노트 중에서)

정태봉의 ‘진혼 II’ #희생자 위로에 머물지 않고 #한국 사회 비판으로 승화

이렇게 정태봉은 ‘타악기를 위한 진혼 II’를 작곡했고, 이 작품은 세월호 사건이 일어난 2개월 뒤인 2014년 6월 예술의 전당에서 초연됐다. 과연 세월호의 슬픔과 희생자에 대한 추모의 마음은 이 작품에 어떻게 표현되었을까. 음악은 어떻게 사회를 그리고 있는가.

음악이 그리는 현대사회 그리고 레퀴엠

‘음악은 사회를 반영하는 예술’이라고들 말한다. 그렇지만 의구심을 가지게 되는 것도 사실이다. 언어로 작업하는 문학이나, 시각 예술인 회화나 조각에 비해서 ‘음’이라는 재료를 사용하는 음악은 매우 추상적인 예술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음악은 오히려 이 추상성 때문에 ‘개념적 언어를 뛰어넘어’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것까지도 표현할 수 있는’ 예술로 이해될 수 있다. 미학자 루카치는 “음악이 삶에서 동떨어진 듯하면서 동시에 밀착되어 있는 기묘한 현상”에 주목하며, 음악이 고유의 속성을 유지하면서도 동시에 현실을 생생하게 그려냄을 강조했다. 음악은 자신을 둘러싼 사회와 역사를 자신의 고유한 방식으로 표현할 수 있는 매체인 것이다.

실제로 음악은 -때때로 언어와 연결되어, 때로는 순수 기악음악으로- 자신을 둘러싼 사회의 모습을 오랜 시간 동안 부단히 담아 왔다. 특히 20세기 이후 많은 작곡가들은 역사적 사건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작품을 내놓았는데, 홀로코스트의 비극을 생생하게 재현한 쇤베르크의 ‘바르샤바의 생존자’(1947년), “광주 민중항쟁이 잔혹하게 압살된 데 대한 항의”의 마음을 담아 작곡한 윤이상의 ‘광주여 영원히’(1981년), 9·11 테러의 상황을 당시 녹음된 음향자료를 활용해 리얼하게 그린 라이히의 ‘WTC 9/11’(2009~2010년) 등이 대표적이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사회적 사건이 주제로 다루어지면서 추모곡 형식의 애도가 또는 레퀴엠이라는 장르가 많이 활용됐다는 점이다. 프랑스 작곡가 델리우스는 제1차 세계대전에서 세상을 떠난 젊은 예술가들을 추모하는 ‘레퀴엠’(1916년)을 썼고, 펜데레츠키는 52개의 현악기와 타악기를 위한 ‘히로시마 희생자를 위한 애도가’(1960년)를 써서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졌다. 또 일본의 작곡가 호소카와는 2013년 일본의 동일본 대지진과 관련한 바이올린 독주곡 ‘3월 11일 도호쿠 지진 희생자를 위한 애도가’를, 중국 작곡가 쉥은 1937년 일본군의 난징 대학살 사건의 희생자를 추모하는 ‘난징! 난징! - 비파와 오케스트라를 위한 애도가’를 발표했다. 사회적·역사적 사건이 희생자를 추모하는 방식을 통해 음악으로 기록된 것이다. 정태봉의 ‘진혼 II’도 이러한 흐름에서 이해할 수 있다.

악상기호 ‘무거운 마음으로’ ‘비통하게’

이 작품은 마림바·심벌즈·탐탐·비브라폰·드럼 등 다양한 서양 타악기로 구성됐다. 정태봉은 그동안 한국의 전통 음악적 재료나 악기 등을 창작에 활용하기도 했지만, 이 작품에는 그런 한국적 요소는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타악기 연주자들은 4파트로 나뉘어 각각 개성 있는 음향을 연주한다. 그렇지만 타악기 작품 특유의 생동감이나 원초적 에너지가 크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이 곡의 제목인 ‘진혼’ 그리고 곡의 흐름에 따라 등장하는 ‘무거운 마음으로’ ‘비통하게’ 등의 악상기호가 암시하듯, 작품은 시종일관 느린 템포의 흐름 속에 무거운 분위기를 만들고 있다.

조용한 타불라 벨의 종소리가 울리며 시작되는 서주는 맥박을 연상하듯 간헐적으로 등장하는 음 진행을 통해 애도의 분위기를 형성한다. 이어 섹션II의 음향은 나지막한 타악기들의 패턴이 지속적으로 반복되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를 연상시킨다. 그렇지만 각 타악기 파트는 세분화된 리듬 패턴과 악센트로 구성되며 이것들이 복합적인 음향층을 형성한다. 짧은 패턴이 불규칙적으로 강조되기는 하지만, 음악은 전반적으로 나지막한 피아니시모(pp)로 계속된다. 때때로 긴 쉼표로 인해 음향의 흐름이 끊기는 경우가 있지만, 이와 같은 휴지부가 크게 두드러지지는 않는다. 청자는 이러한 음악적 흐름을 청취하면서 타악기의 부드러움이 강조된 독특한 스타일의 음향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마림바와 비브라폰이 등장하는 섹션III에서는 트레몰로로 연주되는 화음의 떨림을 통해 선율선이 형성되고, 비브라폰의 진행이 악센트로 강조되면서 화성적인 흐름이 뚜렷하게 나타난다. 이후 마림바가 화음적 선율선을 형성하며 감정적 표현이 상승된다. 그렇지만 섹션IV에는 선율적 타악기가 모두 후퇴하고 단선율의 리듬적 진행에 다른 타악기의 리듬층이 점차 겹쳐지면서,잔잔한 그러나 섬세한 리듬적 배합이 지속된다.

그러나 이러한 잔잔함은 다시 비통하고, 격하게 변한다. 다이내믹의 상승과 음역의 확대, 그리고 서스펜디드 심벌의 음향까지 더해지며 일종의 격앙된 ‘분노’가 표출되는 것이다. 이어 거의 모든 음향이 사라진 명상적 연결구를 거쳐, 타악기의 음향적 떨림과 고요한 트레몰로가 지속되는 마지막 섹션이 등장한다. 이즈음 음향적 색채감을 가진 선율이 등장하는데, 이는 정태봉이 작곡했던 성가 ‘기도의 노래’ 선율이다. 모든 파트가 트레몰로로 진행되는 가운데 ‘기도의 노래’가 나지막하게 울리며 이 슬픈 레퀴엠이 끝난다.

작곡가는 사건 당시의 아비규환과 절규· 고통을 드러내기보다 희생자들을 애도하는 방식으로 세월호사건을 표현하고 있다. 그래서인지 이 작품을 들으면 영혼의 정화와 치유 그리고 화해를 목적으로 하는 진도의 ‘씻김굿’이 연상된다. ‘씻김굿’은 무속인이 하얀 한복을 입고 약 12단계의 절차를 통해 죽음을 다루는 예식으로, 죽은 자가 이승에서 다 풀지 못한 원한을 풀어주고, 자신의 육체를 떠나 저승으로 무사히 갈 수 있도록 해준다. 특히 ‘넋 건지기 굿’은 객사, 그중에서도 물에 빠져 죽은 영혼을 위한 특별한 예식으로 세월호와 무관하지 않다. 노래·춤·악기 반주로 8~10시간 가량 진행되는 이 과정은 영혼과 육체를 분리하고 죽은 사람의 한을 풀어줌과 동시에 치유하며, 저승을 통과해 이승과 저승의 단절에까지 이르게 한다.

정태봉의 ‘진혼 II’에 씻김굿의 예식적·음악적 특징이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극적인 음향의 상승에서도 불협화적 음향이나 표현적 폭발이 등장하지 않으며 오로지 망자의 위로에 초점을 맞추어 나지막하게 지속되는 타악기들의 섬세한 음향은, 억울하게 세상을 떠난 희생자들의 정화와 치유를 기대하는 씻김굿의 정신을 확실히 공유하고 있다. 또한 씻김굿의 일련의 과정 역시 ‘무거운 마음’으로 위로를 시작하여 비통함과 슬픔을 표현하고 경건하게 마무리되는 이 작품의 흐름과 어느 정도 일맥상통한다. 더 나아가 ‘죽은 사람의 넋을 달래며 고이 잠들게 한다’는 이 작품의 제목 ‘진혼’(鎭魂)도 이러한 의미로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음악을 통한 위로와 치유 그리고 비판

그렇지만 ‘진혼 II’가 희생자의 ‘위로’만으로 끝나지 않는다. “이 참사의 근본 원인은 무엇인가?”라는 작곡가가 던지는 사회비판적 질문이 보여주듯, 이 슬픈 음악은 현대 한국 사회의 문제에 대해 재고를 요청하며 사회적·정치적 비판자가 된다. 철학자 이충진은 말한다. “만일 우리가 세월호 침몰을 과거 속으로 묻어 버린다면 세월호 침몰 이후 일어난 수많은 일 역시 언젠가 잊히고 사라지게 될 것이다. 그리고 만일 그렇게 된다면 세월호를 침몰시켰던 우리 안의 것들이 또 다른 세월호를 침몰시킬 것이고 우리는 영원히 세월호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될 것이다.”(‘세월호는 우리에게 무엇인가-철학의 물음’) 이 철학자의 비판적 지적을 작곡가 정태봉은 음악으로 시도한 것이다.

음악이 세월호 사건을 규명하고 구체적인 해결방안을 내놓을 수는 없다. 또한 음악은 이 사건 이면에 담긴 국가의 무책임함과 사회의 야만성을 철저하게 파헤칠 수도 없을 것이다. 그렇지만 ‘진혼 II’가 보여주듯이, 음악은 이 사건을 깊은 울림으로 기록하고 있으며, 동시에 불의의 사태를 초래했던 사건에 대한 강력한 비판의 목소리를 담을 수 있다. 이 작품을 들으며 오늘 세월호 사건을 다시 기억해 본다.

오희숙 서울대 교수
이화여대 피아노과를 졸업하고 독일 프라이부르크대에서 음악학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는 서울대 작곡과에서 이론전공 교수로 재직 중이다. 20세기 음악과 음악 미학을 연구 중이다. '쇤베르크, 달에 홀린 피에로' '음악 속의 철학' 철학 속의 음악' 등 다수의 저서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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